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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14. 2021

닥치고, 조용히 눈을 감자

-촌스러운 감자가 귀족으로 변신할 때

감자요리 어디까지 먹어보셨나요..?!!


   피에솔레(Fiesole) 언덕 위에 서면 저 멀리 피렌체 시내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빨간 기와를 머리에 인 르네상스의 고도가 가물가물.. 어린 미켈란젤로가 그림 수업을 끝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재잘대며 시내를 배회하는 모습이 절로 상상되는 곳. 내게도 이 도시는 너무 낯익어 조금만 멀어지면 그리움이 허리춤을 붙들 정도이다. 천신만고 끝에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하고 죽기 전에 살고 싶었던 도시에 마침내 둥지를 튼 것이다. 인생 후반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나는 이곳에서 마늘의 영혼을 만났으며 나의 브런치에 이렇게 썼다. 


이 리스또란떼의 셰프는 (나 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요리학교의 대선배였으며, 수셰프(sous chef)의 경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이미 이탈리아 요리에 발을 들여놓은 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을 넘기고 있는 베테랑들이었다. 어느 날 내게 수셰프가 마늘을 들어 보이며 호주머니 칼로 마늘을 반쪽으로 잘라 단면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프란체스코, 이곳이 마늘의 영혼(Anima)이라는 곳입니다"라며 우쭐댄 것이다. (당시 나의 이름은 프란체스코..) 우쭐댈만했다. 그때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요리학교의 특강에 이어 요리사의 요리에 대한 마음 자세가 이렇구나 싶은 생각을 다시금 가슴에 새기게 되는 것이다.  마늘 한쪽을 통해 요리사와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현장이자, 어느 날 마늘 몇 쪽을 테이블 위에 놓게 된 배경이었다. 참 재밌는 요리의 세계이다.


집 앞 현관에서 키우는 향신초 멘따(Mentha)가 파릇파릇~한 잎사귀를 내놓고 있다. 녀석들은 무시로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현관문을 열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인사를 건네는 귀연 녀석들이다.


수셰프(sous chef)는 어느 날 나를 즈음이 놀라게 했다. 창고에서 가져온 감자 몇 개를 껍질을 벗기고 뜨거운 물에 삶아 내더니 주섬주섬 뒤적뒤적.. 그리고 건져낸 감자는 볼에 담아 포르케따(Forchetta,포크)로 여러 번 꾹꾹 눌러 으깨었다. 감자를 삶는 과정만 생략하면 단 몇 분만에 내 앞에서 감자는 놀라운 변신을 했다. 으깬 감자 위에 향신초 띠모(timo, thyme)를 한 두 꼬집 흩뿌리고 난 다음 소금 몇 꼬집을 볼 위로 날렸다. 그리고 올리브유를 두 큰 술 정도 넣고 주걱으로 이리저리 섞었다. 



그다음 꾸끼아이오(Cucchiaio, 숟가락) 두 개로 성형을 하여 접시에 담았다. 셰프는 성형된 감자 요리를 요리 접시 위에 보기 좋게 올린 다음 눈여겨보고 있는 나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 보인다. 그러면서 "프란체스코, 감자는 그 어떤 요리에도 다 잘 어울립니다.(Francesco, le patate si adattano a tutti i piatti.)"라고 말했다. 

서기 2021년 3월 13일 주말 저녁(현지시각), 사진첩을 열어 그동안 짬짬이 모아둔 감자 요리 관련 사진들을 챙겨보니 당시의 기억이 새롭다. 위 자료사진들은 그 과정을 담은 것으로 번호표를 매겨두었다. 촌스럽기 짝이 없게 생긴 감자가 귀족으로 변신할 때 과정을 리체타로 남긴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친 것일까..



1. 감자 적당량을 삶거니 쪄서 큼직한 볼에 담는다. 이날 나는 감자 5개를 삶았다. 크기나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 많이 먹고 싶으면 양을 늘리거나 줄이면 된다. 나는 향신초 띠모를 사용하지 않고 자주 먹고 있는 매우 청양고추(Peperoncini)를 잘게 다져 넣었다. 청양고추에는 일반고 추보다 10배나 높은 비타민C가 함유되어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비타민C는 감기 예방, 면역력 향상 및 피로 해소 등에 도움이 된다. 코로나 시대에 눈여겨 보야할 식재료인 것이다. 거기에 풍미를 돋우기 위해 삶은 계란 하나를 잘게 다져 넣었다. 식미껏 더 넣어도 상관없다. 그다음 소금을 몇 꼬집 흩뿌렸다. 간은 적당하게 맞추시면 된다. 감자는 다른 식재료에 비해 소금을 더 넣어도 무방하다. 그리고 질 좋은 뿔리아산 올리브유 5 큰술을 넣었다.

2. 그리고 포르께 따로 꾹꾹 눌러가며 이리저리 잘 섞어준다.

3. 대략 잘 섞어진 감자와 양념들의 모습을 담았다.

4. 그다음 주걱으로 뒤적뒤적 꾹꾹 엎치락뒤치락.. 밀가루 반죽처럼 상형을 완성했다.

5. 이렇게 완성된 감자를 성형 도구를 이용해 7개를 접시에 담았다. 이날 한꺼번에 해치웠다.

6. 감자 모양은 작은 그릇 컵 등 아이들의 장난감과 빠스티체리아에서 사용하는 몰드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7. 사용하고 남은 감자는 볼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거나 비닐봉지에 먹을 만큼 나누어 보관하면 좋다. 또 감자의 양이 많을 경우에는 봉지에 나누어 담아 냉동실에 넣어두고 해동해 먹어도 무방하다. 요즘 이탈리아에는 저장감자가 많이 출하되고 있다. 하지감자가 출하될 때까지 먹는 저장감자는 매우 싱싱하고 맛도 일품이다. 냉장고에 여유 공감이 있다면 감자의 영혼이 돋아나기 전에 냉장고에 저장해 두면 기막힌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변신을 거듭한 감자요리의 맛은 어떨까.. 오래전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작은 동네 그룹을 만들어 놀았던 기억이 난다. 나의 역할은 보컬이었다. 드러머가 빠지면 대신 드럼을 두들기곤 했다. 이렇게 단련된 보컬은 어느덧 회식장의 무대에 서서 일동으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참 잘 놀았다. 악기가 사용되는 클럽에서는 한 곡당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동료들 혹은 상사가 내가 부르는 노래에 값을 치렀다. 참 잘 놀았었다. (흠.. 그게 언제 적 일인가..ㅋ) 당시 여러분들이 좋아했던 노래 중에 가수 정미조 씨의 <그리운 생각>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가사는 이랬다. 


그립다 생각나면 조용히 눈을 감자/잃었던 조각들이 가슴에 피어난다/아득히 가버린 그 사람 지금은 없어도/마음을 조이며/기다리는 기쁨도 있다~/추억은 아프다고 그 누가 말했을까/그립다 생각나면 조용히 눈을 감자


그립다 생각나면 조용히 눈을 감자/읽었던
 조각들이 가슴에 피어난다/아득히 가버린 그 사람 지금은 없어도/마음을 조이며/기다리는 기쁨도 있다~/추억은 아프다고 그 누가 말했을까/그립다 생각나면 조용히 눈을 감자


나의 노래가 좌중의 흥미를 끈 것은 딱 한 군데 다른 창법에 있었다. 질러줘야 할 대목을 비틀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그립다 생각나면 조용히 눈. 을. 가암짜라는 끝 대목을 이렇게 불렀다. 그립다 생각나면 조용히↗→ 눈. 을. 감자 ^^ (감이 오시는지 모르겠다. ^^) 참 잘 놀았던 그 시절의 감자(?)가 내 앞에 등장한 것이다. 감자만 보면 그때가 기억나는 거 있지..ㅎ 



닥치고, 조용히 눈을 감자




감자요리를 앞에 두고 잠시 딴 데로 빠져봤다. 독자님들이나 이웃분들이 즉시 '닥치고' 감자요리 리체타를 다그치는 듯.. 자료사진은 위에서 만들어 두었던 감자요리를 이용해 '이탈리아 수제비'로 불리는 뇨끼(Gnocchi)를 만들어 봤다. 내가 사는 뿔리아 주 사람들이 즐겨먹는 뇨끼를 나만의 리체타로 완성한 것이다. 응용에 따라 무한 변신이 가능한 요리이므로 눈여겨봐 두시기 바란다. 



닭 육수(돼지 사골이나 쇠고기도 무방) 적당량을 끓이면서 만들어둔 감자요리를 적당량(되직하게) 투입하고 뇨끼가 익을 때쯤에 계란 1개를 잘 풀어 넣는다. 걸쭉한 크림이 노랗게 색깔이 변한다. 간은 소금간만으로 충분하다. 알아서 입맛에 맛게.. 그리고 삶은 노른자를 으깨어 올렸다. 그다음 맨따로 장식을 하고 폭풍 흡입..! 그리고 등장한 오늘의 주인공 닥치고 조용히 눈을 감자.. 요리!!



잘 으깨어 보관한 감자요리를 한 움큼 손에 넣고(손을 반드시 씻고..) 돌돌 말아 공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잣을 먹을 만큼 잘게 다져 흩뿌렸다. 그곳에 멘따 잎으로 장식을 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던 촌스러운 감자가 귀족으로 변신을 완료했다.



이렇게 만든 감자요리는 숟가락으로 포르케타로 젓가락으로 덜어먹거나 떠먹을 수 있다. 부드러운 식감과 목 넘김이 이루 형용할 수 없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입안 가득 한 입 떠먹으면 이게 감잔가 싶을 것이다. 맛은 이러하다. 조용히 눈을 감자..!! ^^



조용히 눈을 감게 만드는 감자요리는 삼겹살 등 돼지고기 쌈은 물론 어느 음식과도 찰떡궁합이다. 우리가 먹는 감자탕이나 닭볶음탕 등 감자를 이용한 요리에 너무 잘 어울린다. 나홀로 씩 웃어가며 써 내려간 글이 어느덧 통금시간에 머물고 있다. 




    서기 2021년 3월 13일 현재,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는 참담하다.(Covid Italia, bollettino oggi 13 marzo 2021: 26.062 nuovi(새로운 감염자 수) casi (5.809 in Lombardia) e 317 morti(사망자 수), tasso di positività quasi al 7%) 감염자 수가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요즘 이곳저곳에서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적색경보지역은 바실리까따 주(Basilicata), 깜빠니아 주(Campania), 몰리제 주(Molise)로 지정됐고, 황색경보지역은 (Abruzzo,Emilia Romagna, Friuli Venezia Giulia, Lombardia, Marche, PA Bolzano,PA Trento, Piemonte,Toscana, Umbria, Veneto) 괄호안과 같다. 또 노란색경보지역은(Calabria, Lazio, Liguria, Puglia, Sicilia, Valle Aosta)로 지정됐다. 내가 갈고 있는 지역(Puglia)은 3등급에 해당한다. 


이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요리천국 이탈리아가 해내지 못하는 일을 대한민국이 K-방역으로 잘 방어해 내고 있는 것이다. 자나 깨나 건강에 유의하시고 잘 챙겨 먹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소중하니까..!


Quando le patate si trasformano in nobilita_BARLETTA
il 13 Marz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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