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02. 2021

할미꽃에 깃든 우리 할머니

#10 서울에 봄이 오시던 날

할머니 할머니 우리 할머니..!!



서울에 봄이 오시던 날 지난 편(점순이 아빠의 일탈(逸脫)) 끄트머리



영감탱이는 소리치며 두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자 점순이와 엄마가 허겁지겁 달려와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주인공의 손이 영감탱이의 사타구니에 가 있는 것이 아닌가. 평소 어여뻐해 주었던 점순이의 속마음이 이때 들통나기 시작했다. 아빠와 한통속이었던 것이다. 점순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머니나! 이 망할 게 아빠 죽이네!'


하며 주인공 귀를 잡아당기며 영감탱이 편을 드는 것이다. 망연자실한 주인공.. 이게 소설 <봄봄>의 대단원의 풍경이다. 어느 날 영감탱이는 점순이를 미끼로 한 순진한 농촌 총각을 꼬드겨 3년이 넘도록 부려먹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발표 시기는 1935년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가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라고 했으므로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하던 시점에 쓴 소설이다. 이 작품의 중심 내용은 안타까운 기다림이었지만, 일제에 짓눌렸던 우리 선조님들을 슬프도록 힘들게 만든 장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할미꽃에 깃든 우리 할머니


   한 무리의 할미꽃이 3월의 볕을 쬐고 있는 이곳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대모산 자락의 풍경이다. 입춘이 지나고 나면 나는 꼭 이곳을 들르곤 했다. 그곳은 나만의 천국이었다. 양지바른 이곳은 딱 이맘때 할미꽃이 새빨간 꽃잎을 내놓는다. 무심코 지나치면 도무지 찾기 힘든 할미꽃.. 이곳의 정확한 장소는 표기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일부 사람들이 야생화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관상용으로 보지 않고 식용(약용)으로 취급하는 예가 잦아졌다. 할미꽃도 그중 하나였으므로 '대모산 자락' 정도로 표현해 둔다.


   

   서기 2021년 3월 1일 오후(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날씨가 화창하다 못해 눈이 부시다. 이미 봄이 곁에 오셨다가 저만치 달아나고 있는 풍경인 것이다. 3월이 오시면 사람들로부터 들뜬 마음이 솟아야 정상일 것이다. 겨우내 찌뿌듯했던 마음들이 봄볕에 마구 날뛰어야 할 것. 하지만 세월은 늘 평탄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왜 4월을 잔인하다고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만,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시대의 3월은 여전히 잔인하다. 잔인하다 못해 희망까지 꺾어놓을 기세이다. 



오늘 자,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를 보면 학부모님(?)들이 급 실망할 정도로 감염자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 기온은 15°C.. 추위에 민감하다던 코로나가 방한복을 둘렀는지, 기세가 한풀 꺾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대모산 자락으로 향하는 때 날씨는 3월임에도 여전히 쌀쌀하다. 글을 쓰는 지금 서울의 기온을 열어보니 영상 1°C.. 3월 초 대모산 자락의 기온도 비슷하다. 다만, 이곳은 양지바른 곳이자 바람이 적당히 차단된 곳이므로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금잔디를 두른 이곳에 가면 나는 할미꽃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거의 기다시피 한다. 어떤 때는 아예 잔디 위에 엎드려 할미꽃과 눈을 맞추는 것이다. 이때부터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접어드는 것이다. 비록 그 시간이 길지 않더라도 세상에는 나와 피사체가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다. 



새하얀 솜털을 뽀송뽀송 두르고 볕을 쬐고 있는 할미꽃의 자태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물아일체는 물론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드는 것. 이런 느낌은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자, 나이도 어리지 않은 어느 쉰세대 1인이 이렇개 놀고 있으면 조금은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 


위 자료사진은 하니(표지 사진 아래)의 수채화 작품에 등장한 주인공이다.


아무튼 서울 시민들 중(그것도 강남에 사시는 분들)에 당신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서 할미꽃을 만나보신 분들은 극소수이거나 아예 없을 게 분명하다. 사람들은 당신이 살고 있는 행성의 가치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린왕자의 독백처럼 여전히 역사와 지리 수학과 문법 공부로 다져진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산전수전 공중전 땅굴전까지 다 겪어본(오해 없기) 나는 이곳에 서면 자연스럽게 할머니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할미꽃의 외모와 달리 꽃의 이름 때문이다. 할미꽃으로 부르게 된 사유는 시간이 좀 더 흘러야 한다. 뽀송뽀송한 솜털과 새빨간 꽃잎을 내놓은 할미꽃은 어느 날부터 씨방을 털어내며 새하얀 머리카락을 날리는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할미꽃'이라 이름 지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시는가..) 할미꽃은 입춘이 오시기 전 잔디밭 혹은 눈 밑에서 숨을 죽이며 납작 엎드려 있다가 입춘이 오시는 즉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그때 만난 할미꽃들이 어느 날 브런치에서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주로 백발을 머리에 인 할미꽃을 만나게 될 것. 그래서 꽃말까지 '슬픈 추억'이라는 등 슬픔으로 도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경우의 수도 있었지. 나는 되려 이맘때쯤이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더 이상 붉을 수도 없는 아름다운 할미꽃을 만나며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할미꽃이 매개체가 되어 아스라한 추억을 돌아볼 수 있는 행운이 내 앞에 나타나는 것. 



유년기의 우리 집 가족 구성은 할머니를 정점으로 아버지와 중부님 두 분 그리고 슬하에 우리 형제들과 사촌들이 득실대고 있었다. 할머니는 바쁘셨다. 손자들이 득실 거리는 집안에서 사랑을 나누어야 할 손길이 분주해야 하는 것. 나는 다행히도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한 욕심꾸러기였다. 하필이면 종가에 주로 머무셨던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는 기회가 많았던 것이다. 



설날부터 정월대보름을 지나 초파일이 오시면 으레 할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가까운 사찰로 등을 달러 가곤 했다. 어떤 때는 할머니가 내미신 작은 보따리 속에 잔칫집 음식이 있었다. 손자 생각에 다 잡숫지도 않은 채 가져다주신 것이다. 또 형제들의 잘못으로 사랑의 매를 벌 때도 할머니는 구세주셨다. 성경에서 말하는 '출애굽기'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린 녀석들에게 해방감을 맛보게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할머니에 대한 좋은 생각만 있었던 게 아니다. 어느덧 세대차가 나면서 꾀가 늘어난 손자 녀석들이 고자질로 부모님과 할머님을 저울질하는 만행(?)을 부리기도 하는 것. 그러나 할머니께선 꿈쩍도 않으셨다. 참빗으로 정갈하게 가르마 탄 머리에 곱게 늙으신 얼굴과 어깨가 좁은 할머니는 미인이셨다. 


겉 모습 뿐만 아니라 며느리를 헤아리는 속 마음은 얼마나 넓으셨던지, 어머니에 대한 칭찬은 마를 날이 없었다. 고부갈등이라는 수식어는 할머니 앞에서 애시당초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두 분의 모습을 생각하면 고부(姑婦)간이 아니라 자매(姊妹)같이 느껴질 정도이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할머니의 회갑 때 초상화 모습이 오롯이 남아있다. 당시에 보기 드문 컬러로 그린 초상화는 회갑인 데도 불구하고 요즘 표현으로 '한 미모' 하고 계셨다.( 할아버지께서 한 눈에 반하셨을 거 같다는 생각.. )그런 할머니께서 어느 날 중부님이 지어주신 수의를 어루만지시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좀 더 오래 사시라고 지어주신 수의의 효능은 82세까지였다. 조선시대 때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모두 경험하시고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목놓아 울었다. 세상에는 늘 행복한 일도 늘 불행한 일도 없는 법이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가 가장 불행한 때가 아니었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때는 어느 봄날.. 할미꽃이 피었다가 백발을 날릴 그 무렵이었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할머니의 근엄 하고 인자하시며 아름다운 초상화가 영정사진으로 바뀐 뒤.. 어느날 내가 할머니가 서 계셨던 자리에 와 있는 것이다. 차분하고 넉넉한 모습으로 세상을 돌아보며 사셨던 당신을 돌아보며 빠알간 할미꽃을 보고 있자니.. (이게 뭐람..! ㅜ) 눈시울만 빨개져 오는 게 아닌가. 속으로 나지막하게 할머니를 불렀더니 할머니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대답하신다.



"오냐, 고맙구나 사랑하는 내 손자야. 먼 나라에서 잘 있지..^^"

"네, 할머니.. 너무 보고 싶어요! ㅜ"


Ecco come arriva la primavera_il Monte DEMO, Seoul COREA
il Primo Marz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