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돌로미티, 9월에 만난 첫눈
그분들이 다시 오셨다..!!
시간을 지내놓고 보니 그때 이미 시간은 내 가슴속에서 멈추어버렸던 것이다. 첫눈에 덮인 풀꽃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첫눈이 내린 세상을 두리번거리는 앙증맞은 꽃 한 송이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안농, 아가야..!! ^^
-(방가방가 ^^)안넝하세요. 삼촌 ㅋ
다시 첫눈이 오시면 이곳으로 가 볼 수 있을까.. 다시 그런 기회가 찾아들까.. 내일은 오늘의 연장선에 불과하지. 사흘 후면 해가 바뀌는 것도 알고 보면 달력이 바뀔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늘 열심히 준비하면 내일이란 선물이 주어지는 법. 사진첩을 열어놓고 다시 첫눈을 기다린다. 평생 꿈꾸어왔던 신세계는 그렇게 다가왔다.
지난 여정 다시 첫눈을 기다리며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의 꿈은 각양각색이며 천 차 별 만차 별이다. 그 가운데 나의 꿈은 소박함 이하였다고나 할까.. 누가 봐도 보잘것없는 꿈은 때 묻지 않은 자아를 되찾는 것이며, 그것은 대자연 속에 묻어나는 한 풍경이었다. 그 풍경이 어느 날 돌로미티의 한 고갯마루 능선에서 발견된 것이다. 일부러 찾아다닌 것도 아닌데 첫눈을 쫓아 여기까지 당도하면서 까마득한 유년기가 소환되는 것이다.
하니와 함께 돌로미티의 빠쏘 지아우 고갯마루 능선을 배회하는 도중 까마귀를 닮은 검은 새 무리들이 우리 주변을 얼씬거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금세 생각이 달라졌다. 녀석들은 지난여름 19박 20일 동안 돌로미티 여행을 하는 동안 이곳에 머무를 때도 똑같이 무리 지어 우리 주변을 배회한 새들이었다.
하니가 저만치 능선 위로 다가갈 때쯤 나는 녀석들의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며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이곳의 텃새가 분명해 보였다. 텃새란 철을 따라 옮기지 않고 거의 한 곳(지방)에서만 사는 새로 유조(留鳥, 이동하지 않고 연중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새)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인 새들이 까마귀, 까치, 꿩, 비둘기, 부엉이, 올빼미, 참새 등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새들 중에는 까치와 까마귀이며 흔히 봐 왔던 새들이다. 그중 까치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며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특정 지역에 머물면서 낯선 사람이나 동물이 그들의 영역에 들어서면 마구 짖어대는 것이다. 마치 카카오톡의 메신저 같이 짖어댄다.
까똑 까똑 까까똑 까똑..!!
요즘 도시에서는 별 뜻도 없이 발견되지만, 농경사회에서 까치들은 외부의 손님들이 찾아올 때 울어 댓 기 때문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들이 손님을 알아챌 리가 없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됐다. 텃새들은 평소에 봐 왔던 주변 인물이 아니라면 일단 경계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까치의 습성을 잘 알았을 우리 선조님들은 이들을 좋은 소식을 알려준다는 길조쯤으로 여긴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간 흐른 후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천덕꾸러기로 변했다. 각종 농작물을 쪼아대는 바람에 유해조수로 전락한 것이다. 그런 반면에 까마귀는 까치와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진 조류이다.
어떤 사람들은 까마귀의 빛깔과 울음소리 등으로 까치와 대립되는 흉조로 여긴다. 그러나 조류 중에서 부모를 섬기는 유일한 길조로 선조님들이 감나무 맨 꼭대기에 달린 감을 따지 않고 놔두는 이유는 늙으신 부모를 위해 그 감을 물어가 공양할 것을 도와주기 위함이란다. 우리가 새를 멸시하여 '새대가리'라 부르는 건 매우 잘못된 표현으로 선조님들의 효심을 엿볼 수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선 설날만 되면 까마귀의 성격을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버지 생전에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이 대세였으며 父子有親(부자유친)의 덕을 까마귀를 일러 말씀하신 것이다. 그 뜻이 '사랑'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까치가 그들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면 소리를 지르며 경계하는 것과 달리, 까마귀는 진심으로 그들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침입자(?)들을 알아보는 것일까..
까마귀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우리 삶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정 지역에 까마귀가 나타나 울면 그곳에 초상이 났으므로 까마귀가 '영혼을 인도한다'라고 생각해 영적인 새로 추앙하기도 했다는 것. 오죽하면 동향(同鄕)인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고향 까마귀'라고 일컬었을까..
하니와 내가 돌로미티의 빠쏘 지아우 고갯마루 앞 능선을 걷는 동안 까마귀를 닮은 새들이 무리 지어 주변을 날아다녔다. 까마귀의 정체성에 따르면 이들은 우리를 단박에 알아보고 반가운 마음에 우리 주변을 맴돌았을 것이다. 그들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침입자가 아니라 손님으로 여기며 반가운 뜻을 담아 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한 해가 다 저물어 간다.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꿈꾸는 그곳 브런치를 사랑해 주신 이웃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말씀드린다. 새해에는 한 분 한 분과 다시 만날 때 "그분들이 다시 오셨다"며 길조의 모습으로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다. 아울러 새해에는 모든 일에 서광이 비치길 바라며, 무엇보다 늘 건강하시고 가내 무탈하시길 소원하는 바이다.
In attesa della prima neve che cade di nuovo_Gli Uccelli e Noi nelle Dolomiti
il 30 Dicem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