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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03. 2021

시간이 멈추어 선 상상불가의 도시

#2 한국인, 안 가거나 못 가는 여행지

어느 날 당신이 이 마을을 둘러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자료를 뒤적여 보니, 마싸프라는 인구 3만 수천 명이 살고 있는 곳으로 현지 방언으로는 마자프레(mas'safra, Mazzàfre)라 부르기도 한다. 1939년 6월 1일부터 현재의 이름이 자리 잡은 것이다. 무르지아 타란띠나(Murgia tarantina) 기슭에 위치한 이 도시는 떼르라 델레 그라비네 자연공원(Massafra rientra nel Parco naturale regionale Terra delle Gravine) 일부이며, 산타 엘리야 산의 (Monte Sant'Elia) 세계 야생생물 보호구역에 위치해 있는 곳이었다. 
잠시 겉모습만 둘러본 나는 궁금증이 점점 더 증폭되고 있었다. 궁금증은 내게 오래 버텨내지 못한다. 그 즉시 자동차를 돌려 마을 한복판으로 가는 입구를 찾아내고 마을을 둘러본 것이다. 예상을 너머 상상 불가한 풍경이 잠시 후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지난 여정 한국인, 안 가거나 못 가는 여행지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마싸프라의 겉모습만으로 이들 삶의 단편을 잘 알 수 없을 것이므로, 마침내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오래된 길을 찾아냈다. 그 입구에는 겉모습만으로도 오래되어 보이는 교회가 있었다. 교회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에서 이 교회의 연혁을 알 수 있었다. 교회 이름은 라 키에사 디 산타아고스띠노(La Chiesa di S. Agostino a Massafra)였다. 



한 여행자가 교회 입구에 자동차를 정차해 놓고 서성거리는 장면을 생각해 보시라. 이날은 서기 2020년 12월 31일 오후로 인적이 거의 끊겼다. 교회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으며 건축물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품들은 뛰어났다. 양쪽 출입구 계단에는 잡초가 새파랗게 자라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만약 이날이 백주 대낮이 아니라 달도 없는 깜깜한 밤이었다면 즉시 공포감이 엄습했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잡귀가 출몰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바로크 시대의 건축물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 것이다. 교회 주변은 철책으로 빙 둘러 가려져 있었지만 마싸프라 당국의 시설물에 대한 보호 손길이 뜸해 보이거나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묻어났다. 


교회의 참고 자료에 따르면 이 건축물은 16세가 중반 직후에 지어졌고, 거의 항상 매우 강렬한 삶을 살아온 아우구스티누스인(agostiniani_Ordine di Sant'Agostino)의 다양한 종교 집단을 수용했다고 한다. 건축물의 구조는 마싸프라인(Massafrese)들을 식별하는 바로크 구조라 하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아는바도 없고 알 필요까지 있을까..ㅜ 



또 최근에 복원공사가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으나 거의 버려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자료 속에는 으스스한 이야기들이 적혀있었다. 마싸프라의 전설은 전염병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를 중심에 두기를 원했다. 사실, 그 벽에는 환자의 시신이 들어있었으며 다음 돌에는 전염(il contagio) 원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기록으로 미루어 봤을 때 요즘 창궐하는 코로나 19처럼(구체적이지 않으나 흑사병 추정) 누군가 감염이 되면 집단으로부터 격리시킨 게 아닌가 싶다. 




관련 자료에는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사람들은 '하느님이 보낸 형벌'이라고 체념하며, 죽은 뒤에라도 천국에 보내달라고 기도하며 교회에 엄청난 돈을 바쳤다고 한다. 이에 따라 교회는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 같은 액막이 물건을 팔아서 베를 불렸다고 하므로,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나약한 심성을 이용해 신앙 팔이에 나선 종교인들을 잘 분별해야 했을까.



시간이 멈추어 선 상상불가의 도시




마싸프라의 한쪽에 위치한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묘한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웬만하면 자동차를 주차해 놓고 걸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집에 머물러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동네는 너무 한산하다 못해 인적이 뚝 끊겼다. 대략 1.5차선 정도 넓이의 도로는 구불구불 좁고 길에 이어졌으며, 첫 느낌에서부터 이들의 삶이 인지되기 시작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그들 선조들로부터 대를 이어 이곳에 살아왔던 것이랄까.. 신석기시대 때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맨 처음 동굴 속에서 살았을 것이며, 차차 발전을 이루어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수도나 전기가 공급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전염병이 창궐할 당시를 생각하면 이들이 쉽게 전염병에 노출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석회석 암반 위에 집을 지은 이곳에 물이 흔치 않은 곳이므로 개인의 위생 상태는 열악했을 것이란 게 짐작이 갔다. 이런 데서 패스트 같은 무서운 병이 창궐했다면 죽음의 도시로 변하는 데는 시간문제일 것. 좁은 골목길을 자동차로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 몇 대의 소형 자동차와 트랙터가 지나갔다. 그때마다 골목길이 조금 넓은 곳을 찾아 길을 비켜주며 이동하다가 거의 막다른 골목길에서 차를 돌렸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사람 사는 곳은 틀림없는데 시간이 모두 멈추어 버린 도무지 상상 불가한 도시가 나를 돌려세운 것이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아즈텍 문명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주지하다시피 아즈텍 제국(Imperio azteca)의 멸망은 서구의 침탈자(스페인군)들이 옮겨온 천연두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545년 경, 그들은  하나둘씩 고열과 두통으로 쓰러지기 시작했으며, 잠시 후 그들은 눈과 코 입에서 출혈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이 질병은 5년 동안 지속되었고, 결국에는 아즈텍 인구의 80%에 해당하는 1천5백만 명 정도의 목숨을 앗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이들의 떼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논란이 분분했으나, 고대 희생자의 치아에서 얻은 DNA를 바탕으로 마침내 과학자들은 이것이 살모넬라 엔테리카(Salmonella enterica)에 의한 장티푸스, 특히 파라티푸스(Paratyphi C)로 알려진 아종(Subspecies)이 전염병의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지었다. 파라티푸스는 감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퍼지며, 흔히 장염을 일으키는 세균성 병원체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이 세균 때문에 고대 아즈텍 문명이 사라졌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동굴을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한 마싸프라의 단면을 보면서 이들이 어느 날 전염병에 감염되었을 당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샘터 혹은 우물에서 전염이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동굴 속에서 숨어 살다 시피 하는데 교회는 이들의 삶과 무관할 정로도 화려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 한편 이 도시의 날씨를 참조하면 동굴집이 매우 유용해 보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에 속한 이곳은 이오니아해가 가까운 지중해성 기후를 가지고 있는데 겨울의 평균 온도는 섭씨 8~9도씨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여름 날씨는 최소 30도씨에서 40도씨를 초과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하므로 동굴속은 시원했을 것. 겨울에는 가끔씩 서리도 내리는 기현상을 보이므로 어쩌면 동굴은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안락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으스스한 동네를 빠져나온 나는 이번에는 작은 골짜기로 이동했다. 골짜기에 물이 흐를만한 원천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선인장들이 이곳이 얼마나 척박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선인장이 숲을 이루고 있는 작은 골짜기에는 동굴과 이들을 연계한 건축물들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더 생각해 보나 마나 이곳에 살던 주인들은 어디론가 떠났을 것이며 아이들의 환영이 오락가락했다. 이들도 한 때는 천년을 살 것처럼 죽자 사자 일을 했을 것이며, 둘도 없는 사랑의 환희에 들뜨기도 했을 테지.. 버려진 듯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시간이 박제된 마을이었다. 어떻게.. 그 흔한 개 짖는 소리도 안 들리냐..ㅜ 



박제된 시간을 딛고 선 현대의 주택들.. 동굴 곁에서 운명처럼 여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마을을 떠나면서 머릿속은 하나의 명제가 자리 잡았다. 사는 게 다 무엇인지.. 서기 2020년 12월 31일 오후의 시간 일부는 이렇게 지나갔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다들 어디로 떠나셨는지.. 아님 집콕 중이신지 텅 빈 마을을 돌아섰다.



2020년 한 해를 보내고 2021년을 맞이하기 위해 떠났던 타란토 여행 중에 만난 마을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 있었다. 이들 문화의 일면을 통해 우리는 작은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꾸러기들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마싸프라인들도 현대의 문명 혜택을 누리고 살지만, 내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에 비할 바 못되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의 모습에 비교할 수 조차 없는 낙후된 곳이었지만, 겉으로 드러난 이들 삶의 모습을 보면 결코 불행을 말할 수 없었다. 



여행자가 길 위에서 행복한 건 이런 풍경 때문일까.. 척박한 땅 위에 자란 감귤의 빛깔이 잠시 어두웠던 마음을 지우게처럼 싹싹 다 지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 가슴에 아름다움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는 것이다. 삶의 흔적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시간들.. 그들이 어두운 동굴을 딛고 살아가는 것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항구도시 타란토는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벌써부터 설렌다. <계속>


L'inizio del 2021 a Taranto, Regione Puglia in ITALIA
il 03 Genn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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