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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04. 2021

두 얼굴의 이탈리아 남부 타란토

#3 한국인, 안 가거나 못 가는 여행지


사람 사는 곳은 모두 다 똑같은 것일까..?!!



2020년 한 해를 보내고 2021년을 맞이하기 위해 떠났던 타란토 여행 중에 만난 마을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 있었다. 이들 문화의 일면을 통해 우리는 작은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꾸러기들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마싸프라인들도 현대의 문명 혜택을 누리고 살지만, 내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에 비할 바 못되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의 모습에 비교할 수 조차 없는 낙후된 곳이었지만, 겉으로 드러난 이들 삶의 모습을 보면 결코 불행을 말할 수 없었다. 
여행자가 길 위에서 행복한 건 이런 풍경 때문일까.. 척박한 땅 위에 자란 감귤의 빛깔이 잠시 어두웠던 마음을 지우게처럼 싹싹 다 지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 가슴에 아름다움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는 것이다. 삶의 흔적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시간들.. 그들이 어두운 동굴을 딛고 살아가는 것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항구도시 타란토는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벌써부터 설렌다. 


지난 여정 시간이 멈추어 선 상상불가의 도시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내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에서 타란토로 가는 여정 가운데 들린 마싸프라는 나에게 시사하는 바 컸다. 현대인들이 불행을 말하고 있는 데는 빈부귀천에 따른 상대적인 비교와 생각일 뿐 당신의 처지에 맞게 살아가면 불행이 찾아들 틈이 없는 것이랄까. 


타란토로 떠나기 전 뒤적여본 이 도시의 자료는 실로 엄청났다. 해안선이 활처럼 휘어진 항구 지형은 두 개의 천연 석호(潟湖_우리나라의 영랑호를 닮은)를 가지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첫 번째 이유였다. 


마싸파라에서 타란토로 이어지는 여정을 지도에 담았았다.(타란토의 지도를 참고 바란다.) 타란토는 대략 20만 명이 살고 있는 곳으로 뿔리아 주의 주도로 매김 한 바 있었다. 뿔리아 주만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의 부산에 해당하는 곳이랄까.. 마싸프라에서 잠시 머문 나는 곧 타란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 얼굴의 이탈리아 남부 타란토


타란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맨 먼저 눈에 띈 것은 내 고향 부산을 쏙 빼닮은 항구였으며 요트들이 줄지어 선 이오니아 해의 풍경이었다. 미지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직 2020년의 일몰을 보려면 넉넉한 시간.. 타란토로 들어가려면 뽄떼 디 삐에뜨라(Ponte di pietra)를 건너야 했다. 



이 돌다리는 석호와 바다를 이어주는 역할을 할 뿐, 다리 아래로 배가 지나다닐 수 없는 나지막한 구조였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낯선 풍경이 여행자 앞에 불쑥 나타났다. 타란토의 이정표였다. 



위 자료사진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이정표는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이정표 너머로 퇴색된 낡은 도시의 풍경이 나타났다. 이 도시의 첫인상이 묻어난 것으로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을 하면 오래된 도시의 중심을 만날 수 있었으며, 도시를 한 바퀴 돌아 나오면 길은 석호의 두 어항(漁港)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하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는 주차할 장소를 물색하며 이곳 시민 한 사람으로부터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곳은 주차비를 물지 않아도 되는 지역이었다. (공짜는 환영..^^) 그리고 오른쪽을 가리키는 항구 쪽과 왼쪽의 어항을 천천히 둘러봤다. 



도시를 소개하는 자료 속에서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살렌토(Salento)라고 불리는 북서쪽 끝과 타란티노 아르꼬 이오니꼬( Arco ionico tarantino)라 불리는 해안 지역의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곳이 타란토였다. 그러니까 이 도시는 석호 안쪽과 바깥쪽을 구분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타란토 어항 풍경


먼저 돌아본 곳은 석호 안쪽으로 위치한 어항이었다. 연말연시 새해 연휴를 맞은 어항은 썰렁하다 못해 파리 한 마리도 날지 않았다. 부산의 남항 일부를 닮은 어항에는 출어를 기다리는 어선들이 길게 늘어서 정박해 있었다. 석호를 채운 바닷물은 맑고 투명했으며 바닷속에는 다 까먹은 홍합 껍데기가 수북했다. 이 도시 앞바다 캐라디 섬(Isole Cheradi)에서 채취한 홍합들이 제 역할(?)을 하고 바다에 버려진 것이다.



어선들은 발이 묶인 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 어항 근처의 풍경을 돌아보니 오래되어 퇴색한 서양화를 보는 듯했다. 좀 더 격하게 표현하면 때 국물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것이다. 비 오시는 날 개구쟁이들이 흙장난을 하고 집으로 막 돌아온 것 같은 풍경. 과연 이곳이 한 때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군사적 요충지가 맞나 싶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 도시는 기원전 8세기 때 스파르타인들에 의해 '타라스'란 이름으로 세워졌고(Fu fondata dagli Spartani nell'VIII secolo a.C. col nome di Taras), 이오니아 해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무역으로 풍요를 누리던 마그나 그레치아(Magna Grecia)의 가장 중요한 도시이자 고대 세계에서(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한 곳이었다. 



그런가 하면 아르끼타, 아리스또세노, 리비오 안드로니코(calibro di Archita, Aristosseno, Livio Andronico)와 같은 지식인들(나는 이들에 대해 아는 바 없음..ㅜ)을 탄생시킨 곳이자 문화, 경제, 군사 중심지로 자리매김한 곳이었다. 



또 타란토의 시인 레오니드(Leonida)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에라클리데 (Eraclide di Taranto)는 물론 그리스 전역에서 이름을 떨친 전설적인 선수인 이코와 타란토의 선수라고 불리는 선수들도 포함한 유명한 곳. 



지금은 이탈리아에 속한 도시지만 오래전 이곳은 그리스 식민지의 패권을 거머쥔 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남부의 고대 그리스 식민지의 주거지로 맹위를 떨친 곳이랄까.. 그렇게 한 때 부귀영화를 누리던 곳에 때 국물이 묻어나는 것이며 초라한 행색으로 한 여행자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돌다리 너머 오른쪽 방향의 풍경은 어떨까..



타란토 항구의 표정




이번에는 다시 맨 처음 자동차를 주차해 둔 곳으로 되돌아와 항구를 바라봤다. 해가 서서히 저물며 묘한 풍광을 만들어 낸 그곳에는 근사한 리스또란떼와 요트들이 줄지어 정박되어 있었다. 조금 전 어항에서 만난 풍경과 사뭇 다른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타란토는 로마의 세력이 팽창하면서 마지막으로 무너진 도시이며, 궤르라 삐리께(Guerre pirriche) 전쟁으로 명명된 5년간의 분쟁이 이들의 부귀영화를 막고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남부 이탈리아와 로마 자체에 엄청난 문화적 영향력을 계속 행사했다고 전한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이 도시 출신의 뀐또 오라지오 플라꼬(Quinto Orazio Flacco)외 지역 작가들의 집단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곳이기도 했다. 노르만 시대(Nel periodo normanno)에는 타란토의 수도가 되었고, 377년의 역사 동안 살렌토의 거의 모든 것이 타란토에 묻어났다. 



타란토란 지명의 유래는 이 지역 시골에서 매우 흔했던 리코사 타란뚤라(Lycosa tarantula) 종(種)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땅에 사는 거미의 일종이다. 따라서 타란뗄라( tarantella)와 타란띠스모(tarantismo)은 물론 타란뚤라(tarantola)라는 단어는 오늘날 테라포시다에 가족(famiglia Theraphosidae)의 유명한 거미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다고 전한다. 



또 이 도시는 큰 바다와 작은 바다를 낀 도시로 '두 바다의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자료를 번역하는 동안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런 한편,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에서 이오니아 해를 낀 이 도시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게 됐다. 어느 시대에나 영원한 부귀영화는 없었으며 빈부귀천은 그 시대의 혼돈에 따른 작은 조화의 한 단면일 뿐이었다.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오늘날의 타란토의 위상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타란토의 옛 영화는 이 도시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흔적만 남겼을 뿐이다. 그 세월이 어느덧 2천 년을 넘겼고, 오늘날은 유럽 최고의 철강산업 단지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고, 일바의 아스날 해군의 주요 군사기지 역할(La città è sede dell'Arsenale marittimo della Marina Militare, dell'Ilva)을 하고 있었다. <계속>


L'inizio del 2021 a Taranto, Regione Puglia in ITALIA
il 04 Genn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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