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06. 2021

해돋이 지켜본 달님을 보내 드리고

#6 한국인, 안 가거나 못 가는 여행지

이오니아 해의 해돋이는 어떤 모습일까..?!!



태양계의 하루는 조석으로 늘 같아 보이지만 매일 다른 모습이라는 걸 머리가 굵어지면서 알게 됐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빛의 현상은 태양으로부터 출한지 대략 8분 20초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 포착된 것이다. 그 빛은 태양의 흑점 변화(온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나 작은 변화에 대해서는 기온 정도로 느낄 뿐 언제나 동일해 보일 것. 그러므로 매일 우리가 보고 지나치는 일출과 일몰의 현상은 각기 다른 현상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니 하루를 마감하는 일몰은 또 하나의 생명체처럼 여겨지고 참으로 안타까운 임종의 시간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그님이 숨을 거두는 장엄한 일몰 현장에서 자동차의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음악의 볼륨을 크게 높였다. 


혼자 바라보는 이오니아 해 너머의 긴 호흡.. 자칫 눈시울이 뜨거워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여정 그님의 마지막 숨소리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한 때는 연말연시가 되면 부푼 풍선처럼 터질 듯이 기뻤다. 뭐가 그렇게 좋았던지 하릴없이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기도 했다. 해가 바뀌면 한 살 더 먹게 되고 곧 어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어 아이들이 누릴 수 없는 것들을 차지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그때는 왜 그렇게 시간이 안 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웬걸.. 서서히 철이 들고 난 다음부터는 세월의 속도가 고삐 풀린 망아지를 닮았다. 도무지 붙들 수 없는 시간들.. 어느 날 내 앞에 2021이라는 숫자가 다가오기 시작했지.




해돋이 지켜본 달님을 보내고




천년고도 이오니아 바다 너머로 타란토가 아침을 열고 있다. 새해를 알리는 먼동이 터오고 있는 것이다. 이날 나는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했다. 차박으로 잠시 눈을 붙였지만 뭐가 그렇게 궁금했는지 잠을 설치고 있는 것이다. 저만치 높은 하늘에는 달님이 은빛 뽀얀 가루를 쉼 없이 흩뿌리고 있었다. 



이오니아 바닷가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밤새 폭죽 소리가 지축을 흔들더니 깊은 잠에 빠져들고 바닷가를 서성이는 한 남자 머리 위로 달빛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밤은 길었다. 동짓날 보다 더 길게 느껴졌던 그 밤이 지나고 먼동이 터오면서 해돋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해돋이는 당초 예상과 달리 타란토 위로 솟구치는 게 아니라 이오니아 바닷가의 한 숲 속으로부터 솟구쳐 올랐다. 그곳은 타란토 주둔 해군부대가 위치한 곳으로 출입이 제한되었을 뿐만 아니라 휴대폰 조차 제한되는 공간이었다. 



이날 아침 타란토의 날씨는 썰렁했다. 바깥 온도는 영상 4도씨.. 바닷가의 한 콘크리트 시설물 위에서 해돋이를 맞이했다. 누군가 동행하여 함께 바라봤으면 좋을 테지만.. 그럴 때도 있는 것. 해님이 숲 속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면 타란토를 떠날 작정이었다. 집으로 빨리 돌아가 쉬고 싶었다. 



세상일이 다 그렇듯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천년고도의 타란토 위로 솟구친 해돋이를 마지막으로 지켜본 후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해돋이 직전의 일출에 비친 이오니아 해는 신비로웠다. 일출보다 더 아름다운 달님이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붉은 기운을 잔뜩 머금은 이오니아 바다 위로 달님은 밤새 나와 함께 해주었다. 바뀐 건 은빛 고운 가루가 아니라 붉게 물든 눈시울을 닮았다. 



달님과 해님.. 그리나 나.. 참 묘한 조합이었다.



자동차를 돌려 타란토 시내로 향했다. 양력설 첫날에 만난 시내버스 한 대..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타란토 시내를 가로질러 타란토 기차역까지 돌아본 후 아피아 가도(Via Appia)에 들어섰다. 아피아 가도는 로마 공화정 시대에 지어진 도로이며, 고대 로마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도로로 유명하다. 이 도로는 로마에서 시작되어 뿔리아 주의 브린디시(Brindisi)까지 이어진다. 


참고자료 출처: 위키피디아 브린디시 



로마는 군대를 재정비하고 다시 전투를 준비할 수 있는 기지에 의존했다. 이 기지는 전장에서 바로 공격할 기회를 기다릴 수 있도록 많은 수의 로마 병사를 수용할 수 있었다. 이런 기지들은 수도인 로마에서부터 연결되어 출입이 쉽고 물자 공급이 수월한 좋은 도로를 필요로 했다. 이 때문에 기원전 4세기 중반, 아피아 가도는 군사적 물자 교류를 위한 중요 수송로로 건설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피아 가도 대신 고속도로를 닮은 국도가 브린디시 까지 연결되어있다. 아피아 가도는 당시에는 적절했을지 모르겠다만, 오늘날은 매우 느린 길이자 기록에만 남아 역사적 장소로만 기억될 뿐이다. 타란토에서 브린디시까지 이어지는 국도에는 그나마 자동차 통행이 거의 없었다. 새해 첫날 풍경은 그랬다. 



대략 1시간 남짓 국도를 달리는 동안 내 곁을 스쳐간 자동차들은 몇 대 되지 않았다. 그런 한편, 국도 주변에 널린 유적을 가리키는 이정표들 때문에 램프로 빠져나갈까 말까 몇 번이고 망설였다. 그러나 1박 2일의 일정으로는 무리가 따랐다. 밤새 달님과 노니는 사이 피곤이 몰려든 탓이다. 잠시 쉬었다가 2박 3일로 일정을 바꿀까 싶기도 했지만 그런다고 가만히 앉아있을 남자가 아니었지..ㅜ 



브린디시에 도착하자마자 시내를 둘러보니 도시의 규모와 역사에 비해 소박해 보이거나 약간은 누추해 보이기도 했다. 새해 첫날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으며 텅 빈 도시에 주차할 공간조차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다음 기회에 둘러보기로 하고 브린디시 외곽의 벌판으로 나가봤다. 이오니아 해의 바닷가로부터 시작된 아피아 가도의 끄트머리에 아드리아 해가 있었으므로 그곳으로 가 보기로 했다.



포토, 브린디시에서 만난 기분 좋은 벌판








브린디시 벌판을 가로질러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 나를 돌아보니 도시는 적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란토 시내에서도 그랬지만 도시의 직선들은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고나 할까.. 브린디시 시내를 빠져나오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했다. 이 또한 청춘들과 다른 안 청춘의 느낌이자 생각일까.. 



나의 선택은 옳았다. 브린디시 평원을 가로질러 아드리아해에 도착하는 즉시 체기가 내려가는 듯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나의 유년기를 추억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유적과 바다를 만나게 됐다. <계속>


L'inizio del 2021 a Taranto, Regione Puglia in ITALIA
il 05 Genn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그님의 마지막 숨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