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한국인, 안 가거나 못 가는 여행지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브린디시 바닷가의 사랑학 개론..?!!
브린디시 벌판을 가로질러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 나를 돌아보니 도시는 적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란토 시내에서도 그랬지만 도시의 직선들은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고나 할까.. 브린디시 시내를 빠져나오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했다. 이 또한 청춘들과 다른 안 청춘의 느낌이자 생각일까..
나의 선택은 옳았다. 브린디시 평원을 가로질러 아드리아해에 도착하는 즉시 체기가 내려가는 듯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나의 유년기를 추억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유적과 바다를 만나게 됐다.
지난 여정 해돋이 지켜본 달님을 보내 드리고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일몰과 일출을 지켜보는 동안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피곤이 가중되고 있었다. 어디서라도 주차를 해 두고 잠시 눈을 부치고 싶었다. 그런 심정을 알기라도 하듯 평원이 끝나는 지점에 낯익은 아드리아해가 등장한 것이다. 갑자기 시원한 사이다를 들이켠 듯한 느낌은 또 뭐람.. 바닷가에서 파도소리를 듣는 즉시 수평선 끄트머리에 등장한 작은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위치를 참고하건데 그곳에는 필시 어떤 유적이 있을 거라는 짐작이 갔다. 그 즉시 자동차를 돌렸다. 아드리아해가 나를 불러 세운 것이다.
그곳은 또르레 뿐따 뻰네(Torre Punta Penne 또는 Torre di Punta Penne )라 불리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었다. 이 전망대는 나폴리 왕국 당시 축조된 것으로 브린디시 뿐따 펜네 델 세르로네 자연공원(Parco naturale comunale di Brindisi Punta Penne Punta del Serrone)에 위치해 있었다. 도시 전체는 거의 평원이었고 높은 지역은 해발 15미터의 작은 언덕이 전부였다.
이 도시의 인구는 9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였으나 아드리아해 동쪽에 위치한 천혜의 환경 때문에, 한 때 뿔리아 주 혹은 이탈리아의 상업적 문화적으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그런 이유 등으로 통일 이탈리아가 세워지기 전 1943년부터 1944년까지 이탈리아 왕국의 임시정부가 이곳에 세워지기도 한 것이다.
자동차를 돌려 내가 간 곳은 브린디시 시 외곽 북쪽에 위치한 한 전망대이자 브린디시 항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한 때 소초(小哨)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낡은 구조물을 발견한 것이다. 자연공원 입구에 주차를 해 두고 먼저 그곳을 둘러보고 싶었다. 공원 입구로부터 대략 100미터 남짓 떨어진 그곳에 도착하자 발칙한 상상력이 동원됐다. 뼈대만 남아 곧 허물어질 듯한 소초에 근무 중인 병사들의 환영이 보이는 것이다. 그들의 (한국식) 대화는 이랬다.
-김일병..
-네, 일병 김일병!
-오늘 밤 달빛은 유난히도 밝지..?
-네, 일병 김일병. 그렇습니다!
-야, 목소리 좀 낮춰
-(목소리 낮추며 사알 살..)네에. 일병 김일병! 알겠습니다.ㅋ
-그리고 관등성명 좀 빼라. 우리 둘 뿐인데..
-알겠습니다. ^^
-새로 부임한 중대장 알지?
-네, 압니다.
-그 양반 허우대는 멀쩡한데 아직 독신이라는 거..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냐?
-그러게 말입니다요.
-대위 계급장 달면 애인이 있거나 결혼을 했을 텐데.. 고자.. 질 하지 마
-ㅋ 알겠습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김일병한테 예쁜 여동생인지 누나가 있다던데..
-사진 좀 보여줄래?
-(뒤적뒤적) 여기요.
-와 이뿌다아.. 대낮에 보면 홀딱 반하겠는 걸..ㅋ
-중대장한테 소개해 주면 어떨까..
-아니 되옵니다. 최병장님이면 몰라도요. ㅜ
-짜아식 아부는..ㅋ
이때 소초의 무전기에서 나지막하게 신호가 삐리리 울린다.
-네, 소대장님 00 소초 최 병장입니다.
-잘 들으라. 방금 중대장님이 각 소초로 순찰 떠나셨다. 자리 잘 지키기 바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 잠시 후 소초 부근에서 플래시 불빛과 함께 당직 사병과 함께 중대장이 나타났다.
-추웅성! 00 소초 근무 중 이상 무!!
-충성! 별일 없지?
-네, 병장 최병장!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야 당근이쥐. 바다 위에 개미가 있을라고..ㅋ
-(차렷 자세로 서 있던 김일병에게) 자네가 김일병인가..
-네, 일병 김일병! 맞습니다아!!
-흠.. 군기가 마음에 드네.. 듣자 하니 누나가 송혜교 뺨친다던데..
-네, 일병 김일병! 아닙니다. 소문일 뿐임다.
-그럼 누가 내게 잘 못 고자.. 질 했남?
-(속으로 뜨끔한 김일병이 최병장 눈치를 보며) 그런 거 같습니다아~
-누나.. 나한테 소개해주면 안 되겠나?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각해 볼 거 뭐있남. 당장 군대생활 펼 텐데.. 하하
-최병장 근무 잘하기 바란다.
-추웅성!! 네 잘 알겠습니다.
중대장이 다녀간 후 최병장이 김일병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야.. 난 니가 누나 소개해 주는 줄 알고 숨 넘어가는 줄 알았지 뭐냐..ㅜ
-그럴 리가요. 헤헤
곧 허물어질 듯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벗어나자 용설란(Agave)이 아드리아해의 바닷바람을 두르고 1월 초하루의 볕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자연공원에는 인적이 드물었으며 바닷가에는 오래된 퇴적층이 세월의 무심함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바다가 좋았다. 바닷가를 돌아 전망대로 가는 길에 유인원을 닮은 퇴적층이 눈에 띄었다. 참 특별해 보이는 형상이다.
브린디시 시는 한 때 아드리아해 너머 그리스와 밀접한 무역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새해 일출을 만났던 타란토와는 지리적인 장점 등으로 매우 대조적이었다고 한다. 기원전 266년에는 로마에게 정복당하고 그리스와 동양을 잇는 중요한 항구로 자리매김했다는데.. 그곳은 다음 기회에 다시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 도시는 로마 시대 때 황금기를 맞이했고, 브린디시와 로마로 이어지는 아피아 가도(Via Appia)의 중요한 도시이기도 했다.
새해 첫날.. 태곳적 시간을 끌어안고 있는 고즈넉한 바닷가 풍경.. 나는 어느새 전망대가 보이는 곳까지 다가섰다. 잠시 후, 세월을 이기지 못한 오래된 낡은 전망대 위에 서서 아드리아해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자란 듯한 오솔길 곁 풀섶에 쪼그리고 앉아 영롱한 이슬을 머금은 희귀한 녀석들을 만났다.
L'inizio del 2021 a Taranto, Regione Puglia in ITALIA
il 08 Genn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