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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10. 2021

무명의 흔적만 남다
_TORRE PUNTA PENNA

#9 한국인, 안 가거나 못 가는 여행지

그들은 모두 다 어디로 떠난 것일까..?!



요즘 잠자리에 들 때면 '책 읽어주는 어플'을 들으며 잠든다. 작은 글씨로 된 책장을 넘기는 건 선호하지 않는 일이자 오래된 일이다. 아이들을 위해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이든 고전이든 그 무엇이든 검색만 하면 어플들이 주르르 쏟아진다. 뿐만 아니라 자주 검색하는 어플은 포털의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휴대폰에 소개되는 희한한 세상이다. 그 가운데 잠자리에 들 때 자주 열어보는 어린 왕자의 대화는 나를 유년기로 데려다주며 미소를 머금다가 잠이 드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세상으로부터 배운 지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 아닐까..


"아저씨, 나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지난 여정 어느 바닷가에서 만난 귀공자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나는 잠시 풀꽃들을 바라보다가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브린디시 시(La citta' di Brindisi)의 한 바닷가에서 오래된 한 전망대를 향해 걸음을 이동하고 있었다. 이 건축물은 뜨로레 뿐따 뻰나(Torre Punta Penna (Brindisi))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뾰족한 펜을 닮은 탑'이라는 뜻.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 바다 쪽으로 길게 내민 부리 모양의 육지 '곶'을 연상케 한다. 우리나라의 포항시에 위치한 호미곶(虎尾串)또는 동외곶(冬外串)또는 장기곶(長鬐串)을 상기하면 되겠다. 먼 데서 바라본 전망대가 마침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때부터 궁금증이 폭발하는 것이다.



무명의 흔적만 남다 _TORRE PUNTA PENNA




처음 보는 이런 풍경 앞에서는 맛있는 요리를 탐하듯 천천히 찬찬히 눈으로 먹고 입안으로 들어가기 전 입술에서부터 애무하듯 맛을 느낀다. 음식을 먹을 때는 무엇이든 와락 덤벼들면 우선 허기를 때울 망정 음식의 맛을 느낄 틈 조차 없는 것이다. 



요리를 대하는 자세는 이렇듯 돌쇠 혹은 마당쇠처럼 덤비면 배탈이 나거나 전혀 음식 본연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풍경을 원초적 본능 정도로 치부할지 모르겠다만,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밖에 모르는 동물(?)처럼 여길지도 모를 일. 나는 낯선 건축물 앞에서 6하 원칙을 앞세우는 한편 요리를 대하듯 천천히 찬찬히 맛을 음미해 보기로 했다.



전망대에 도착하자마자 눈길을 끈 것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었다.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돌계단은 사람들의 왕래 때문이 아니라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풍상에 녹아내려 움푹 파였다. 아래서 상하좌우 겉모습을 관찰한 결과 사람들이 들어가 본 흔적이 남아있었다. 어떤 녀석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스프레이로 낙서를 해 놓은 것을 보면 브린디시 시 당국 조차 별로로 여기는 유적이라나 할까. 



나는 이 건축물의 용도와 시기가 궁금했다. 따라서 주말(현지시각) 저녁 상당 시간을 관련 자료 찾기에 나섰다. 이곳의 안내판에 기록된 작은 실마리를 통해 방대한 자료를 뒤져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건축물의 조성 시기와 배후의 인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건축물은 1568년(16세기) 나폴리 왕국의 페드로 데 똘레도 (Pedro Álvarez de Toledo y Zúñiga)의 명에 의해 만들어졌다. 주지하다시피 나폴리 왕국(Regno di Napoli)은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나폴리를 거점으로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존재하였던 왕국이다. 오늘날 이탈리아 반도의 남부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지닌 나라였다. 



이 건축물은 페드로 아퐌 드 리베라 (Pedro Afan de Ribera)의 칙령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공사는 벽돌공 지오반니 빠리세(Giovanni Parise)에게 맡겨진 것이다. 그는 당시 브린디시의 건축물 다수를 건축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 건축물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자료를 뒤지고 또 뒤진 끝에 다시 실마리를 찾아 나섰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등대가 전망대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힘들게 찾은  자료사진은 브린디시 웹 사이트에 올라와 있었다. 오래된 전망대 옆에 우뚝 솟아있는 등대.. 둘의 공통점이 단박에 머리를 스쳤다. 


16세기에 지어진 전망대의 역할은 나폴리 왕국의 영토를 지키는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등대 역할까지 한 것이라고나 할까.. 전망대와 등대가 서 있는 곳은 해안선이 온통 바위투성이이자 수심이 낮은 바닷가였다. 이탈리아 남부 지역을 항해하는 선박의 길라잡이가 되기 충분한 지역에 전망대와 등대가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등대는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고, 세월을 견디지 못해 녹아내린 낡은 전망대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브린디시에는 이곳 말고도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면(곧 만나게 될 것이다) 절벽 위에 또르레 테스타 (Torre Testa)와 또르레 구아체또(Torre Guaceto)가 있었다. 그들은 상호 통신을 주고받았다고 전한다. 선박을 위한 등대 역할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됐던 것이다. 



이날 나는 난간이 없는 좁은 돌계단을 통해 전망대 위로 올라가 봤다. 약간의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혹시라도 추락이라도 한다면 누가 나를 도와줄 것인가..ㅜ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조심조심 더 조심한 끝에 전망대 위에 올라서자 드 넓게 펼쳐진 아드리아해가 1박 2일의 여독을 몽땅 날려버렸다. 



대략 500년 전 이곳에 근무하던 어느 백성들이 전망대 위에 올랐을 때 느낌이 단박에 전해진 것이다.


그리고 바닷가를 내려다 보니 그곳에는 등대가 서 있는 자리에 폐허로 변한 건축물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궁금증을 더한 건 전망대 꼭대기에 원형으로 만들어둔 시설물이었다. 덮게도 없는 이 시설물은 비가 오시면 빗물이 통째로 실내로 쏟아져 들어왔을 텐데.. 왜 뚫어놓은 것일까..



전망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그곳에도 원현의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으며 천정은 뻥 뚫렸다. 건축물 내부로 채광을 한 장치로 보기에는 어설퍼보였다. 건축물 구조상 천정에서 굳이 채광을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자료를 다시 뒤적여 봐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나 혼자만의 결정을 내리게 됐다. 각 전망대 사이에는 잘 훈련된 매가 통신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지만, 위급한 시기에는 불을 피워 올리는 봉화대가 안성맞춤이었다. 전망대 윗층 천정에 검게 그을린 흔적도 한몫 거들었다.



봉화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통신수단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봉화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시설물인 것이다. 봉화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에는 그저 불을 피워 누구를 오라던지 보내던지 단순한 표시였지만 이후에는 적의 규모나 현재 상황 등에 따라 각기 다른 5가지 정보 전달법이 생겨났다고 한다. 남의 나라 바닷가에서 재밌는 풍경을 만난 것이다.


 

원형의 구조물 곁에는 언제 뿌리를 내렸는지 무화과나무가 자라나고 있었다. 당시를 호령하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진채 흔적만 남은 자리를 딛고 일어선 것이다. 나폴리 왕국의 페드로 데 똘레도는 사후에 피렌체의 두오모에 묻혔다. 그때 기준이라면 그는 천국으로 갔고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흔적은 또르레 뿐따 뻰네에 남아있는 것이다. 재미 들린 나는 다시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계속>


Torre punta penna, La citta' di Brindisi_Regione Puglia in ITALIA
il 09 Genn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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