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한국인, 안 가거나 못 가는 여행지
지금, 나는 어디쯤 가고있을까..?!!
사람들이 쓰고 만든 역사와 유물들은 다 부질없는 짓일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우리들의 기억에만 희미하게 남아있거나 유적으로 남은 것들이.. 이곳 오트란토 지역의 살렌토 해안 전망대에 오롯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 또한 머지않아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지워질지도 모를 일.. 그 곁 습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식물들이 얼마나 대견한지..
파도는 무시로 해안을 들락거리며 아드리아해의 바닷바람을 퍼 나르고 있었다.
나는 바다를 향해 우두커니 서 있는 전망대가 몸씨 궁금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다 꺼져가는 그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점점 더 늦어지고 있었으며, 오후 햇살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주차해 둔 자동차를 옮겨 습지로 다가서니 그곳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 몇몇이 보이기 시작했다. 황량해 보이는 듯 아름다운 풍경이 언덕 위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 여정 그 바닷가에 남은 그림자 하나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2021년 초하루 연휴가 이어지고 있는 이곳은 인적이 거의 끊겼다. 자동차 몇 대가 주차공간에 있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습지 곁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는데 묘한 이끌림이 나를 붙들어 세운 것이다. 저만치 우두커니 바라를 바라보고 있는 전망대 또르레 떼스따 델 갈리꼬 때문이었다.
습지로 불리는 이곳 해안은 황톳빛이 묻어났으며 물웅덩이가 곳곳에 남아있었다. 나는 전망대 끝까지 다가서서 그를 만나고 싶었다. 오래된 건축물들은 겉모습과 다른 시간의 흔적이 묻어있었으므로 시간여행에 안성맞춤이었다. 자세한 역사를 모를지라도 고궁에 들르면 괜히 편안해지는 느낌 같은 것.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느 날 전부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그들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는 것이다. 전망대에도 그런 흔적이 남아있을 게 틀림없었다. 나는 조금 전 들렀던 언덕이 바라보이는 바닷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드리아해는 무시로 잔잔한 파도를 실어 날랐으며 오후 햇살은 봄볕처럼 따사로웠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 만약 파도마저 잠들었디면 어린왕자가 살던 별처럼 너무 심심했거나 외로웠을까..
어린왕자
나는 이내 그 꽃에 대한 것을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어린 왕자의 별에는 전부터, 꽃잎이 한 겹만 있는 아주 소박한 꽃들이 있었는데, 그 꽃들은 별로 자리도 차지하지 않았고 누구를 귀찮게 하는 일도 없었다.
그들은 하루아침 풀 속에 나타났다가는 저녁에 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꽃은 어디서 불어왔는지 모를 씨에서 어느 날 싹이 텄는데, 다른 싹과는 같지 않은 이 싹을 어린 왕자는 무척 주의해서 살펴보았다.
어린 왕자는 바오밥나무의 새로운 종류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어린 나무가 이내 자라기를 멈추고 꽃봉오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굉장한 봉오리가 맺히는 것을 본 어린 왕자는 거기에서 어떤 기적적인 것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꽃은 그 푸른 방 속에 숨어 언제까지고 아름다운 단장을 하기에만 바빴다.
그리고 빛깔을 정성껏 고르고 옷을 찬란히 입고 꽃잎을 하나씩 다듬곤 했다. 양귀비 모양으로 꾸깃꾸깃한 채 나오기가 정말 싫었던 것이다. 꽃은 그 아름다움의 고비에 다다랐을 적에야 나타나고자 했다. 그러나 무척 티를 부리는 꽃이었다. 그 신비로운 단장이 그러니까 며칠이고 계속됐다. 그러더니 어느 날 아침, 해가 돋을 무렵에 활짝 피어났다. 그런데 그렇게도 맺고 끊는 듯이 치장을 하고 난 꽃이건만, 하품을 하며 겨우 이런 말을 했다.
"아아! 이제야 겨우 잠이 깼습니다. 용서해요. 머리가 온통 헝클어져 있어요."
그때 어린 왕자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나는 해와 동시에 일어났어요."
하고 꽃은 조용히 대답했다.
어린 왕자는 그 꽃이 과히 겸손하지는 않다고 짐작했다. 그러나 몹시도 어린 왕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꽃이었다. 조금 있다가 꽃이 말을 이었다.
"지금이 아마 조반 시간이지요? 내 생각을 좀 해주시겠어요?"
어린 왕자는 무척 어리둥절해하며 찬물 한 통을 갖다 꽃에 뿌려주었다.
그리하여 그 꽃은 약간 수줍은 허영심으로 이내 어린 왕자의 마음을 괴롭혔다. 가령 어느 날, 제가 가지고 있는 가시 네 개 이야기를 하며 어린 왕자에게 이런 말을 한 것 따위가 그것이다.
"호랑이들이 발톱을 내밀고 오겠다면 오라 그래요!"
"우리 별에는 호랑이가 없어요. 그리고 호랑이는 풀을 먹지 않아요!"
이렇게 어린 왕자는 대꾸를 했다. 그러니까 꽃은 상냥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풀이 아니에요."
"용서하십시오."
"나는 호랑이는 조금도 무섭지 않지만 바람과 마주치는 건 질색이에요. 바람을 막는 병풍은 없으세요?"
'바람 마주치는 게 질색이라...... 풀치고는 운이 좋지 못한데. 이 꽃은 까다롭기도 하군.' 하며 어린왕자는 생각했다.
"저녁에는 고깔을 씌워 주세요. 당신 집은 대단히 춥군요. 설비가 좋지 못해요. 내가 있던 곳은……."
그러나 꽃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 꽃은 씨의 형태로 온 만큼 다른 세상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속이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하다가 들킨 것이 부끄러워선지, 꽃은 잘못을 어린 왕자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두세 번 기침을 했다.
"병풍은 어쩌셨어요?"
"가지러 가던 참인데, 당신이 얘기하고 있어서……."
그러나 꽃은 그래도 어린 왕자에게 가책을 느끼게 할 양으로 기침을 더 세게 했다. 그리하여 어린 왕자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착한 뜻을 가졌으면서도 이내 그 꽃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을 심각하게 생각해서 몹시 불행하게 되었다. 하루는 어린 왕자가 내게 이런 속사정을 말했다.
"그 꽃이 하는 말을 듣지 말았어야 할 걸 그랬어. 꽃이 하는 말은 절대로 듣지 말아야 해. 꽃은 그냥 보고 향기를 맡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 꽃도 내 별에 향기를 떨치고 있었지만, 나는 그걸 즐길 수가 없었어. 그 발톱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무척 약이 올랐지만, 사실은 가엾은 생각이 들었어야 했을 텐데."
또 이런 속내 이야기도 했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를 못했어. 그 꽃이 하는 말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는 일을 보고 판단해야 할 걸 그랬어. 그 꽃은 내게 향기를 풍겨 주고 환하게 해주고는 했어. 도망을 하지 말았어야 할 걸 그랬어. 그 어쭙잖은 꾀 뒤에 애정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 꽃들은 서로 어긋나는 말을 무척 잘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너무 어려서 꽃을 사랑할 줄을 몰랐어!"
전망대에 다가서서 이곳저곳을 살피는 동안 안타까움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나폴리 왕국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건축물을 아끼고 사랑했을 게 틀림없다. 최소한 500년 전에 건축된 구조물이 지금은 곧 허물어질 태세였다. 그러나 한 땀 한 땀 수놓듯 쌓아 올린 건축물은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이 건축물을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을까..
무엇이든 시간이 말한다. 죽자살자 사랑했던 사람들도 어느 날 운명의 시간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제한된 시간 속에서 뜨겁게 사랑하는 것처럼.. 내 앞에 우뚝 서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고 있는 이 전망대 또한 주인을 잃고 버려진 채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이방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가 나를 기다려온(?) 시간이 어느덧 500년을 더 넘겼으므로,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단 말인가. 어린왕자를 만난 생떽쥐페리도 어느 날 사막에 불시착을 하지 않았다면 당신의 존재에 대해서 까마득히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1900년 대 초, 귀족 집안 출신인 그가 비행기를 타고 스스로 잘난 맛에 빠져 살았을 때.. 그의 자아는 한 번도 흐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추락을 경험한 이후로 자기 속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랄까..
우리도 언제인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떠나왔던 별을 향해 돌아갈 것. 그때 당신이 가지고 갈 세상의 부귀영화는 1도 없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그 어떤 것들도.. 다만, 당신이 그토록 행복했던 유년기의 아름답고 앳된 기억들이 안드로메다 곁으로 소환될 것이다. 티 없이 맑고 밝은 빛의 에너지가 먼 여행을 나서는 것이다. 하니는 그런 모습을 구전으로 전해온 어른들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죽으면 하루 3 천리씩 멀어진데요.."
어느 날 당신 곁에 있던 사람들이 점점 더 멀어지다가 결국에는 잊히게 된다는 말이다. 그게 3천 리인지 모르겠다만, 지내놓고 보니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 날 보이지 않게 됐다. 새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아드리아해 바닷가 전망대 곁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한 오래된 돌 벽돌을 어루만지듯 자세히 살펴보니, 세상의 흥망성쇠가 벽돌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풍경이다.
참 묘한 인연이 새해 벽두에 내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눈만 뜨면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 헤헤거리기도 하고 찌질 대기도 한다. 그 세월이 몇 년 동안 지속될 것인가.. 사랑만 하고 살아도 너무 짧은 시간.. 무심코 낭비해 버린 시간들이 버려진 듯 홀로 서 있는 어느 건축물에 오롯이 묻어나는 것이다. 그가 내게 말한다.
"사랑이 끝나는 순간까지 당신을 향한 사랑이 멈추지 말아야 한다."
Torre Testa del Gallico di Brindisi_Regione Puglia in ITALIA
il 18 Genn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