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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19. 2021

감추어진 그의 뒷모습

#17 한국인, 안 가거나 못 가는 여행지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누가 그의 속을 알겠는가..?!!



어느 날 당신 곁에 있던 사람들이 점점 더 멀어지다가 결국에는 잊히게 된다는 말이다. 그게 3천 리인지 모르겠다만, 지내놓고 보니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 날 보이지 않게 됐다. 새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것이다. 아드리아해 바닷가 전망대 곁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한 오래된 돌 벽돌을 어루만지듯 자세히 살펴보니, 세상의 흥망성쇠가 벽돌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풍경이다. 
참 묘한 인연이 새해 벽두에 내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눈만 뜨면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 헤헤거리기도 하고 찌질 대기도 한다. 그 세월이 몇 년 동안 지속될 것인가.. 사랑만 하고 살아도 너무 짧은 시간.. 무심코 낭비해 버린 시간들이 버려진 듯 홀로 서 있는 어느 건축물에 오롯이 묻어나는 것이다. 그가 내게 말한다. 


"사랑이 끝나는 순간까지 당신을 향한 사랑이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난 여정 사랑이 끝났을 때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그는 아드리아해 바닷가에 길게 늘어선 전장(戰場)의 상흔으로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당장이라도 호흡이 끊어질 듯한데 간신히 힘을 모아 귀에 들리지도 않을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당부를 하는 것이다. 간간이 파도소리가 그의 목소리를 막기도 했다. 임종의 순간에도 그가 지키고 살았던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내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감추어진 그의 뒷모습




나는 전망대 뒤를 돌아 아드리아해가 잘 조망되는 곳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그곳에는 세월에 녹아버린 바위들이 죽어 자빠진 물고기들처럼 허연 배를 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 적인지 비린내 조차 나지 않을 만큼 바짝 말라있었다. 만약 바다에서 실려온 짠물 냄새만 없었다면 박제된 물고기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멀리서 바라봤던 전망대의 겉모습은 그런대로 쓸만해 보였지만, 그의 뒤를 돌아 바닷가 언덕에서 바라본 그는 상처투성이였다. 쓰러져도 오래전에 쓰러졌어야 할 그는 중상을 감추고 태연하게 나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나는 그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자세히 들여다보며 오던 길로 돌아섰다.



어린 왕자


나는 어린 왕자가 철새들의 이동을 이용해서 그의 별을 빠져나왔으리라고 생각한다. 길을 떠나던 날 아침, 그는 자기 별을 깨끗이 챙겨 놓았다. 그리고 불을 뿜는 화산을 정성 들여 쑤셨다.


어린 왕자에게는 활화산이 두 개 있었다. 이 화산은 아침 식사를 끓이는 데에 매우 편리했다. 그에게는 꺼진 화산도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마따나,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꺼진 화산도 쑤셔 주었다. 화산들은 쑤셔 주기만 잘하면 폭발하지 않고 조용히 규칙적으로 불을 뿜는다. 화산의 폭발이란 굴뚝의 불과 같은 것이다. 물론 지구에 사는 우리들은 너무도 작아서 우리의 커다란 화산을 쑤셔 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화산 폭발로 해서 많은 곤란을 당하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좀 쓸쓸한 마음으로 나머지 바오밥나무 싹도 뽑아 주었다. 다시는 돌아오게 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늘 해오던 이런 일이 그날 아침에는 유난스럽게도 그립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꽃에 물을 주고 고깔을 씌워 잘 보호하려고 했을 때에 그는 마침내 울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잘 있어!"


그러나 꽃은 대답이 없었다.


"잘 있어!"


하고 그는 다시 한번 말했다. 




꽃은 기침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감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바보였어. 용서해 줘. 그리고 아무쪼록 행복하도록 해!"


하고 마침내 꽃은 말을 했다. 어린 왕자는 꽃이 까탈을 부리지 않는 것이 이상스러웠다. 그는 고깔을 손에 든 채 어쩔 줄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꽃이 이렇게 조용하고 아늑한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응, 나는 네가 좋아."


하고 꽃은 말했다.



"너는 그걸 도무지 몰랐지. 그건 내 탓이었어. 그렇지만 너도 나나 마찬가지로 어리석었어. 아무쪼록 행복해라. 그 고깔은 내버려 둬. 이젠 쓰기 싫어."


"그렇지만 바람이……."


"난 그렇게 감기가 몹시 든 것도 아니야. 찬 바람은 내게 이로울 거야. 나는 꽃이니까."


"하지만 벌레들이……."



"나비를 보려면 벌레 두세 마리쯤은 견뎌내야 해. 나비는 참 예쁜 모양이던데. 그렇지 않으면 누가 나를 찾아 주겠어. 너는 멀리 가 있을 거고. 큰 짐승들은 조금도 겁날 것이 없어. 나는 발톱이 있으니까."


그러면서 꽃은 천진스럽게 제 가시 네 개를 가리켰다. 그리고 말을 이어,


"그렇게 우물쭈물하지 말아요. 속이 상해. 떠나기로 작정했으면 뚝 떠나는 것이지."


그 꽃은 우는 꼴을 어린 왕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렇게도 거만한 꽃이었다.





돌아서면서 자세히 살펴본 그의 모습은 초라해 보였지만 여전히 근엄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어떨 때는 ㅇ후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기도 했고 풀꽃들이 곁에서 시중을 들거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우리는 종종 살아남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으로 당신의 속마음을 숨기려 애쓴다. 그렇게 하면 보다 나은 삶이 영위되는 것일까.. 그의 등 뒤에서 해묵은 아드리아해의 거친 바람이 할퀸 자국은 선명하다 못해 이제 더 이상 흘릴 피도 없어 보였다. 그는 돌아서는 내게 희미한 목소리로 작별을 고했다.


"잘 가시게나 친구..!"



나는 그를 향해 "만나서 반가웠어요"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이게 반가운 일인가..



하지만 당신이 내게 일러준 삶의 진정한 가치를 가슴에 담고 그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사랑이 끝나는 순간까지 당신을 향한 사랑이 멈추지 말아야 한다."


Torre Testa del Gallico di Brindisi_Regione Puglia in ITALIA
il 19 Genn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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