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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24. 2021

사람과 꽃길

#62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했을까..?!!



마치 집 앞 동네를 거니는 듯 수월한 등산로인 것이다. 거기에 주변 경관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포스트를 준비하는 동안 가슴이 설레는 것도 좀체 보기 힘든 비경 때문이었을까.. 어느 날 산행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이 아이와 함께 이곳을 찾으면 그 아이의 유년기는 엄청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지닐 뿐만 아니라,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인자요산(仁者樂山)의 가슴을 가지게 될 게 틀림없다. 
하니가 저만치 앞서 가는 가운데 돌로미티의 풀꽃들이 함께 따라다녔다. 빼어난 풍광과 비경을 갖춘 이곳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는 이때까지도 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머리만 내밀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디서 몰려들었는지 어느덧 등산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리는 곧 첫 번째 쉼터인 리푸지오 라바레도(RIFUGIO LAVAREDO)에 도착해 준비해온 따끈한 커피를 마시게 될 것이다. 

  


 지난 여정 아이들도 가는 3천 미터급 등산로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하니와 나는 첫 번째 쉼터(Rifugio)에 들러 커피와 함께 간단한 요기를 했다. 그리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 몸이 풀리면서 아침 일찍 껴 입은 옷을 보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줄지어 모여들었다. 이때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한 무리의 새들이 쉼터 주변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정중동의 풍경이 순식간에 깨어지며 산중에 활기를 더했다.




사람과 꽃길


행운을 부르는 길조였을까.. 돌로미티의 텃새(나는 까마귀로 불렀다)로 보이는 이들은 장차 만나게 될 두 번째 쉼터까지 따라다녔다. 그리고 돌로미티 여행을 끝마치고 첫눈이 올 때 다시 찾은 빠쏘 지아우(Passo Giau)에서도 만난 반가운 새였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길조 혹은 하늘의 전령사 등으로 새를 지칭하는 것은 우스운 일일 것이다. 인간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발명해 놓고 사람들을 지구 반대편으로 실어 나르는 세상이며 노트북 앞에 앉아서 세상을 한눈에 들여다보는 세상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휴대폰의 등장으로 천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세상에 무슨 길조이며 전령사인가 싶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시대 이후로 전무후무한 편리를 누리고 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편리를 누리는 가운데서도 아날로그의 삶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길조와 하늘의 전령사들이 사라진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이랄까..



현대가 인간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준 대신 앗아간 게 있다면 호기심 혹은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한 때 사람들이 꿈꾸던 희망이 사람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판에 박힌 정형화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형편은 제3세계의 오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보화 시대의 산물을 누리며 인생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인간 세계 최고의 가치인 행복이 '돈만 있으면 해결된다'는 믿음이 팽배해진 세상에서, 하느님은 무엇이며 조물주는 무엇이며 천지신명은 또 무엇인가.. 어쩌면 석가모니와 예수 조차 설 자리를 잃어버린 건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그 어떤 말씀보다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세상.. 노트북이나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게 된 세상에서 까마귀 몇 마리 날았다고 길조 운운하는 건 정말 우스운 일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는 동안 오감으로 느끼게 된 세상은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나비와 누렁이 참새와 고양이는 물론, 우리 행성에 살고 있는 온갖 육축들이 다 그저 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1인인 것이다. 어떤 일이 발생할 때는 그에 걸맞은 법칙이 따른다는 것을 공부해온 사람들이.. 정작 당신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일에는 무관심한 것이랄까. 



우리가 공부했던 하인리히 법칙(Piramide di Heinrich)에 따르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른바 1 : 29 : 300 법칙은 하나의 결과가 도출될 때까지 좋거나 나쁜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큰 사고는 물론 행운이 따르는 일이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고, 작은 일들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는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 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 A Scientific Approach>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법칙이지만, 우리 선조님들이나 조상들은 이런 법칙 등에 대해 신화가 남긴 이야기 이상으로 자연스럽게 깨달으며 대자연 앞에서 늘 겸손해하며 살았던 것이랄까.. 



주지하다시피 하인리히 법칙은 산업재해 사례 분석을 통해 하나의 통계적 법칙을 발견했다. 예컨대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망자가 1명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걸 '1:29:300 법칙'이라 부른 것이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것. 



놀라운 발견이자 우리의 삶 혹은 자연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예라고나 할까.. 나는 돌로미티의 대표선수 격인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는 물론 돌로미티 산군을 돌아보는 내내 나의 주변에 등장하는 자연의 현상에 주목했다. 뿐만 아니라 유년기 때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풀꽃은 물론 자연의 현상이 신기할 정도였다면 누가 알까.. 



그깟 풀꽃이 대체 뭐길래라고 반문할 수도 있으므로 하인리히 법칙을 소환해 봤다. 이 포스트를 읽는 당신이 행복해지려면 행복할 수 있는 준비를 1:29:300 법칙에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행복할까.. 노트북과 휴대폰이 없으면 불행할까.. 등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행복하려면 행복할 수 있는 조건 300개를 만들고 다시 추려서 29개로 만든다면 최종적으로 1개의 행복이 완성되는 이치랄까.. 



수많은 사람들이 돌로미티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동안 사람들은 발아래에 펼쳐진 오묘한 풀꽃들의 세상을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고개를 들어 어마 무시하게 큰 세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감탄을 자아내는 것이다. 정작 그 봉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풀꽃들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유튜브 등 인타넷에 올라와 있는 자료사진에는 아름다운 야생화들을 사랑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나도 그중 1인이라 자부한다. 



그분들은 나처럼 행복하기 위해 300번 이상 행복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며, 다시 29번의 과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하나의 모습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만약 이 산중에 풀꽃과 텃새가 없었다면 어땟을까.. 아마도 사람들은 있으나 마나 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한편 잘 생각해 보면 어딘가 허전한 구석이 발견될 것이다. 



허공을 가르는 텃새와 발아래 엎드린 앙증맞은 풀꽃들이 없으면 얼마나 황량한 풍경으로 변하겠는가.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되었다면 돌로미티 산군은 그저 돌산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네 삶이 꽃길이 되려면 그에 걸맞은 행위가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게 되면 날마다 기적을 체험할 것이며 "행복에 겨워 죽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게 될 게 틀림없다.



하니가 저만치 앞서 걷는 가운데 그녀의 발 밑에는 우리나라 설악산 등에서 발견되는 금강초롱꽃을 닮은 보라색 꽃들과 이름 모를 풀꽃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변하지 않는 보라색(Viola)은 특별하다. 한 때 민초들은 사용하지 못한 색깔이자, 귀족들 중에서도 왕이나 그에 걸맞은 계급의 사람들이 외투 등에 사용한 색깔이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법칙에 따르면 아름다운 단색의 색깔로 태어난 풀꽃은 귀티가 묻어나는 것으로 이 산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음덕을 쌓았으면 감히 넘보지 못하는 빛깔로 태어났을까..



하니는 조금 전 귀티 나는 풀꽃의 마중을 받으며 꽃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네 삶에서 꽃길을 걷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돌로미티 산중에서 꽃길을 따라 걷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용케도 그곳에 가면 꽃길이 길게 이어질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무심코 지나치는 듯 곁눈으로 훔치고 다닌 것 같은 모습이 기다랗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가 한눈에 조망되는 첫 번째 코스의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부터 두 번째 쉼터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통해 돌로미티의 백미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산중에서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개미만 하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 이어진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TRE CIME DI LAVAREDO
Scritto_il 23 Genn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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