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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an 31. 2021

그 언덕에 서면 봄이 오신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봄소식

개여울이 없으면 어디로 갈까..?



   서기 2021년 1월 30일 정오경, 나는 집에서 가까운 바닷가의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모처럼 볕이 쨍쨍했으며 눈이 부실 정도였다. 바람은 잦았으며 아드리아해는 무슨 일이 당장이라도 일어날 듯 잠잠했다. 언덕 위에 도착하자마자 기대했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입춘을 앞둔 이맘때면 봄소식을 전해주는 풀꽃들의 대합창이 시작 되는 것이다. 언덕 위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면 오랜 기다림 끝에 다가서는 봄의 전령사가 누구인가 단박에 알 수 있다. 기다림과 그리움.. 



   하니가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떠난 지 어느덧 해를 바뀌어 100일을 향해 간다. 별리의 현장에서는 까마득히 먼 시간처럼 여겨졌지만 우리를 갈라놓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녀와 거의 매일 이어지는 통화 속의 음색에도 봄이 묻어났다. 그녀는 바쁘다. 바빠졌다. 다시 이탈리아행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날짜도 잊지 않았다. 지난해 2월 23일.. 우리는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Aeroporto internazionale Leonardo da Vinci)에서 재회했다. 입국장에 들어서는 그녀의 얼굴에는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과 중국의 코로나 상태는 매우 위중한 상태였다. 그때만 해도 이탈리아는 코로나로부터 안전지대처럼 여겼다. 공항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입국장을 빠져나온 그녀는 당장 마스크를 벗었다. 입국장 어디를 둘러봐도 한국처럼 심각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 또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로마에서 바를레타까지 이어지는 기차 속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한국에서 겸사겸사 볼 일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녀 곁에 다시 코로나가 말썽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대략 한 달 뒤, 이탈리아는 난리가 아니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곳곳에서 봉쇄 조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탈리아에 살고 있던 교민들이 앞 다투어 한국으로 피신할 때였다. 



   하니를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내야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주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특별기 편에 신청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바를레타에서 로마로 가는 교통편이 없었던 것이다. 허탈했다. 혹시나 하고 바를레타 기차 역으로 가 보니 그곳은 아예 문을 걸어 잠갔다. 죽으나 사나 이탈리아에 머물러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질 때문에 잔병을 달고 사는 하니는 코로나의 표적이 될까 봐 무서워했다. 



따라서 집콕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며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생각해 낸 묘수가 사람들을 피해 바람을 쐬는 일이었다. 바를레타 근교의 올리브 과수원이나 포도밭 주변을 산책 겸 운동을 했다. 그곳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꽃양귀비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그녀는 너무 좋아했다. 



날마다 이 같은 일은 반복됐다. 바를레타 주변을 한 바퀴 돌아오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거의 매일 소풍을 다닌 것이다. 하지만 같은 장소를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방문하면 재미가 떨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찾아낸 곳이 걸어서 10분도 채 안 되는 지근거리에 있는 바닷가 언덕이었다. 나는 지금 그곳에 서 있는 것이다. 



그녀와 함께 코로나를 피해 바람을 쇠던 곳. 나지막한 언덕 위로 찻길이 나 있고 곁에는 풀꽃들이 피어있는 곳이다. 저 멀리 아드리아해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바닷가 도로변에는 500년도 더 넘은 종려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곳이었다. 인적이 드문 장소를 산책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이게 전부였다. 코로나가 우리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잠시 후 8월 어느 날 우리는 돌로미티로 여행을 떠났으므로 감개무량했다. 지옥에서 천국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예 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돌로미티로 향했다. 그때가 9월 말 경이었다. 그때 돌로미티에 첫눈이 내렸다. 하늘은 무심치 않았다. 인생 후반전은 그렇게 반전되는가 보다 생각했다. 



웬걸.. 돌로미티에서 집으로 돌아온 직후 우리는 다시 창궐하는 코로나 앞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최악의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봄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때부터 하니를 한국으로 도피시키는 작전을 세웠다. 


사람들을 피해 그녀를 한국으로 보낼 계획을 수립한 후 곧바로 실행애 착수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에서 스위스를 거쳐 다시 독일의 프랑크 푸르트 공항까지 이어지는 왕복 3000킬로미터를 달린 것이다. 그때가 지난해 10월 25일이었다. 



언덕 위에 서서 잠시 돌아본 100일 동안 우리 곁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그녀가 다시 돌아올 날을 계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언덕 위에서 바라본 풀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바닷가에서 소월의 시 개여울을 가슴에 떠올리고 있었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볕이 따사롭게 좋은 날.. 풀꽃들의 대합창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들의 서곡은 곧 돌아올 그녀를 위한 봄의 전령사들의 합창이겠지.. 이번에는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싶은 생각이 번쩍 든다.


-(풀꽃들이 합창을 멈추고 일제히)와 아더찌다. ㅋ 방가워요. 그런데 숙모님은 언제와요. ^^

-그래, 너무 반갑구나 아가들아. 비바람이 그쳤으니 저 바다 건너서 곧 오시겠지..

-그럼 그때 같이 오시는 거죠? 아더찌! ㅋ 

-당근이쥐! 숙모가 니들을 너무 보고 싶어 한단다. ^^


Su quella collina arriva la primavera_La Spiaggia di Barletta
il 31 Genn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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