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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05. 2021

세 봉우리의 아름다운 동행

#66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지난 여정



하니가 아이폰을 꺼내 비경을 담고 있다. 전에 없던 습관이 돌로미티에서 생겼다.


세발자전거를 타는 점들도 있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점들도 있다. 노래를 잘하는 점들도 있고 춤을 잘 추는 점들도 있다. 남의 말은 절대로 안 듣는 점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 데나 귀가 솔깃한 점들도 있다.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점 들도 있고 짜장면을 좋아하는 점들도 있다. 글을 잘 쓰는 점들도 있고 자기 자랑 밖에 모르는 점들도 있다. 브런치를 하는 점들도 있고 마냥 놀고 자빠진 점들도 있다. 


우리가 조금 전에 서 있던 곳에 사람들이 서성인다. 개미보다 더 작아 보인다.


아름다운 점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에 해당하는 점들도 있다. 점. 점. 점.. 하루 종일 끼적거려도 다 쓰지 못할 점들이 우리 행성에 빼곡하다. 그런 점들이 어느 날 돌로미티의 대표선수 격인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 근처에서 발품을 팔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가 조망되는 언덕에 도착했다. 서서히 구름이 몰려들며 선경을 연출했다.


그리고 그 점들은 우뚝 솟아있는 세 봉우리 앞에서 당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점일까.. 그러고 보니 우리는 100호나 1000호쯤 되는 커다란 작품 속에 끼어든 붓털 한 올이 남긴 자국처럼 눈에 띌 듯 말 듯하다. 장엄한 비경을 담으며 잠시 나를 돌아본다. 


지난 여정 장엄한 비경을 담는 여행자의 자세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돌로미티의 대표 선수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가까이서 느끼지 못했던 세 봉우리가 눈 앞에 펼쳐지면서 우리네 삶의 현주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때부터 세 봉우리는 저만치서 우리를 굽어보며 길을 동행하고 나섰다. 이 같은 일은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 둘레길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세 봉우리의 아름다운 동행




   서기 2021년 2월 4일 저녁(한국은 새벽시간), 돌로미티 여행 기록이 담긴 사진첩을 열어보면서 나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오후 9시를 가리키고 있다. 1시간 후면 인적이 끊기고 자동차 소리가 멈출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통금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는 크게 나아지진 않았지만 지난해 11월에 비하면 매우 양호한 편이다. 따라서 적색경보가 발령된 지역은 전부 해제되는 한편 황색경보(Zona Arancione)와 노란색 경보(Zona Gialla) 둘로 나뉘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뿔리아(Puglia) 주, 시칠리아(Sicilia), 사르데냐(Sardegna), 움브리아(Umbria), 볼싸노(Provincia Autonoma di Bolzano)를 제외한 전 지역이 노란색 경보 지역이다. 


하루 종일 잊을만하면 구급차 소리가 삐요삐요 급하게 들렸다간 사라지곤 한다. 누군가는 응급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시내를 활보하고 있고 그들의 얼굴에는 마스크가 착용돼 있다. 21세가 최악의 감염병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주소.. 대자연에 비교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밌다. 좌측 산 중턱에 서 있는 사람을 찾아보시라.


이미 브런치 이웃이나 독자분들은 잘 알고 계시지만 지난해 하니는 이탈리아에서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도피한 상태이다. 따라서 바를레타의 집은 나 혼자 지키고 있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혼자 살고 있는 것. 이 같은 상황은 하니도 별로 다르지 않다. 다만 그녀 곁에는 아이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가야 하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저 멀리 빨간 점 하나가 있는 곳이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쉼터(Rifugio Auronzo alle Tre Cime di Lavaredo)의 모습이다. 저곳에서 또 다른 비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먹고 실기도 바쁜 세상에 나 아닌 타인(?)을 돌아본다는 건 피곤한 일일 것이다. 오죽하면 치매나 중풍 등 노인성 질환으로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요양원에 보낼까.. 요양원에는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만 지내는 곳이 아니라 엄연히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보내어진 노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분들은 그곳에서 지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나 마나 참 슬픈 일이다. 우리네 삶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나아 보여도 결국에는 한 길로 떠나는 것이다.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산길은 탱크가 지나갈 정도로 넓은 길이다. 이곳은 한 때 전쟁터(1차 세계대전)였다.


지난주 산책 겸 운동을 갔다가 다녀오면서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는 등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면서 샤워를 하고 거울 앞에 섰다. 그곳에는 백발의 한 남자가 어깨 위로 드리워진 장발의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기른 머리카락은 꽁짓머리로 묶여 있다가 샤워 후에는 산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너는 누구냐?"며 내게 묻는다. 거울 앞에 서 있는 그 남자가 개똥이라 부르고 소똥이라 부르는 게 맞는 말인지.. 새삼스럽게 자아에 대한 물음이 잇는 것이다. 그 남자가 노트북을 열어놓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삶.. 


챠오~^^ 니가 젤 잘났다..!! 아더찌 넘 방가워욤!!ㅋ ^^


나는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장엄한 풍경 앞에서 나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온 날을 뒤돌아 보면 그곳에는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니었다. 유년기에는 형제자매들이 곁에 있었고 부모님이나 조모님이 늘 곁에 계셨다. 그 이후에는 친구들과 동료들이 함께 했는가 하면 하니가 늘 함께 동행했다. 


어쩌다 그들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는 또 다른 이웃들이 내 곁에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 늘 곁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고 지내는 것이다. 이런 일은 내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 세상의 여러분들에게도 적용되는 삶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독하고 외로움을 호소한다. 사는 동안 늘 이웃과 비교하는 습관이 당신을 불행하고 만들고 있다고나 할까.. 


구름 때문에 더욱 신비롭게 느껴지는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 북벽의 장엄한 풍경


거울 앞에 서 있는 나만 바라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나 보다 더 잘나 보이는 이웃을 비교해 보는 순간 초라해지는 것이다. 왜 나만 흙수저 인가 싶을 것이고, 나만 개고생을 하며 살고 있는가 싶을 것이다. 아마도 이 같은 사정은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당신 외에도 부와 명예를 거머쥔 사람들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들 모두 겉으로는 태연해 보여도 삶의 타임라인 끄트머리에 있는 숙제에서 만큼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생로병사의 사이클은 여전히 당신을 괴롭힐 것이며 종국에는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운명이다. 그때 살아가면서 당신을 지켜준 손길을 느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 잘난 맛에 살 때는 잘 몰랐던 일이 어느 날 문득 당신의 등 뒤에서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느끼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돌로미티 어디를 가나 풀꽃들이 여행자를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를 띈다.


외롭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당신의 등 뒤에서 누군가 다시 일으며 세우고 토닥토닥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보이지 않는 힘.. 그게 신의 존재라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까.. 그게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그 누구이든.. 말도 많고 탈도 많으며 스스로 위대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에게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는.. 영원에 이르는 동행자가 있을 때 사라지지 않을까.. 


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보이지 않는 힘이라면 우주 저편까지 이어지고 있는 신의 그림자가 아닌가 싶다. 아름다움의 대명사 신의 그림자.. 가끔씩 인용하는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예술가의 십계명의 첫째 계명이 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당신께선 '우주 위에'라고 말했다. 나는 그 큰 깨달음을 얻은 그분을 존경하는 것이다. 둘째 계명은 무신론적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와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를 섬기라고 말한다. 보다 심오한 깨달음이다. 


길 위에 사람이 보이시는가.. 장차 우리도 저 길 위를 걷게 될 것이다.


우리는 겉으로 포장된 예술가가 아닐지라도 매 순간 창조적 사고를 통해서 발전해 왔으며 조물주의 속성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브런치에 글 몇 자를 끼적거리는 행위 조차 창조물이 아닌가. 당신이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 강도처럼 덤벼드는 외로움은 당신을 나락으로 빠뜨릴 것이나 섬기는 존재가 있다면.. 그 즉시 천군만마를 얻은 듯이 기뻐할 게 틀림없다. 


코로나 시대가 아니라도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거울 앞에 서서 자아를 관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즉시 천하 만물은 당신의 소유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때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은 빛을 발하며 당신을 향해 노래를 부를 것이다. 여태껏 만나지 못한 신의 그림자가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대합창을 부르게 될 것이다. 오래된 나의 생각이다. 


구름으로 얼굴을 가린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장엄한 세 봉우리가 여행자를 굽어보고 있다.


돌로미티 여행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그 속에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티끌만 한 사람들이 둘레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빼꼼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장엄하기 짝이 없는 세 봉우리.. 이곳에 서면 당신의 등 뒤에 든든한 후원자가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랄까.. 


사람들이 그냥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의 등 뒤에서 자기를 굽어보고 있는 세 봉우리를 느끼며 길을 걷는 것이다. 하니와 나도 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곧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쉼터(Rifugio Auronzo alle Tre Cime di Lavaredo)에 도착하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동행한 세 봉우리를 다시 느긋하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곳에 신의 그림자가 서려있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TRE CIME DI LAVAREDO
Scritto_il 04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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