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엘 찰텐, 라구나 또레 가는 길
지난 여정(기억하나요 그 숲 속을) 끄트머리
그때 다시 만나게 될 부모님에게 소풍을 떠난 우리 행성의 아름다움을 낱낱이 일러바칠 게 아닌가.. 마치 소설 천로역정(天路歷程)처럼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개도 만나고 소도 만나고 냥이 집사도 만나고 닭 소 보듯 하는 이야기는 물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과 드런 사람 등 이야기는 끝도 없이 펼져지게 될 것이다.
나는 그때가 되면 내가 둘러본 세상을 아버지께 낱낱이 고할 것이다. 아버지 생전에 늘 말씀하신 호연지기를 통해 세상을 주유한 아들이 돌아왔다면 아버지 어머니께선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두 분이 못다 한 일을 나와 하니가 하고 있었으며, 어느 날 우리는 라구나 또레의 숲 속을 걷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과 조상님의 음덕에 힘입어 파타고니아에서 천국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엘 찰텐의 숙소에서 나설 때만 해도 밖은 깜깜했으며, 숙소 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언덕 너머로 붉은 기운이 가득 덮여있었다. 비에드마 호수(Lago Viedma) 너머로부터 먼동이 터 오고 있는 것이다. 숙소를 나서면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하는데 이때 걸음걸이가 약간은 버거울 뿐 산길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간단한 도시락과 물을 챙기고 라구나 또레로 향했던 것이다.
그곳은 지도에서만 엿봤을 뿐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다. 그러나 언덕길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면서 우리 앞에 나타난 풍경들은 전혀 뜻 밖이었다. 오래전에 방문했던 엘 찰텐의 숲은 나뭇잎을 다 떨군 상태였지만 다시 방문한 이곳은 나뭇잎에 물감을 입힌 듯 울긋불긋했다. 곧 우기가 찾아올 것이며 남반구의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건기가 거의 끝날 무렵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이다.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니며 칠레의 산티아고에 도착한 이래 부지런히 남하를 거듭한 끝에 도착하면서 만난 풍경이었다. 이때가 성수기였다. 아르헨티나 쪽 파타고니아를 찾는 여행자들이 넘쳐나면서 숙소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다가 우연한 기회에 숙소를 얻게 된 것이다.
민박집과 호텔은 모두 예약이 완료되어 하니는 버스 터미널에서 짐을 지키고 있었고 나는 엘 찰텐 곳곳을 찾아다니며 숙소를 찾았으나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고 마지막에 들른 민박집에서 마지막 희망을 걸었지만 그 마저도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터덜터덜 하니가 혼자 짐을 지키고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뒤를 돌아보니 조금 전에 들렀던 민박집주인이 손짓을 하며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 잠시 후 그로부터 반가운 이야기를 듣게 됐다. 민박집은 아니지만 빈 집이 있으니 한 번 둘러보고 가라는 제안이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었던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곳은 단독주택이었는데 일본인 부부가 잠시 머물고 있었으며 다음 날 떠나기로 한 곳이었다. 민박집보다 호텔 보다 더 나은 환경의 숙소를 얻게 된 것이다.
나는 뛸 듯이 기뻐하며 버스 터미널로 뛰어갔다. 주변은 어둠이 내려 깜깜한데 그녀는 혼자서 배낭과 짐보따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할 틈도 없이 숙소를 얻었다며 기뻐하며 짐을 옮겼다. 그 숙소는 라구나 또레로 이어지는 산길 밑 언덕 아래 위치해 있었다. 엘 찰텐의 소풍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때부터 오래전에 못다 이룬 꿈을 펼치며 피츠로이(Monte Fitz Roy) 주변은 물론 라구나 또레 주변에 발도장을 찍고 다녔던 것이다.
우리가 발길을 옮기고 있는 이곳은 까마득히 오래전 바닷속이었다. 장차 만나게 될 그 산중에는 온통 화석의 무덤이었다. 맑은 물이 졸졸거리며 흐르는 작은 골짜기의 납작한 돌을 들출 때마다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암모나이트 화석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곳은 바람의 땅이었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날려버릴 태세였다.
서기 2021년 까치설날 아침에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당시의 기억이 오롯이 사진에 묻어나는 것이다. 이날 라구나 또레로 가는 길에 빗방울이 후드득거렸다.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가끔씩 굵은 빗방울이 라구나 또레의 먹구름으로부터 날아다니는 것이다. 이날 우리는 우비가 없었으므로 즈윽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 되물릴 수 없어서 하니와 나는 진군을 계속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한 순간이었다. 물론 무탈하게 숙소로 돌아왔지만 고맙게도 숙소 가까운 곳에 도착했을 때 보슬비가 내렸을 뿐이다. 비록 옷은 젖었지만 숙소에서 말리는 그만 아닌가.
까치설날 아침에 바람의 땅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과 시간.. 둘 다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면서 다녀온 여행지의 기억을 통해 우리가 무사한 이유 등을 생각하며.. 이 또한 보이지 않는 조상님의 음덕에 힘입은 게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결과는 반드시 어떤 과정을 거치게 마련인데 무작정 떠난 여행지에서 숙소를 구한 일은 물론, 엘 찰텐 곳곳을 누비며 다닐 때에도 무탈한 것에 대해서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라구나 또레로 이어지는 숲길 곁에는 나목들이 춤을 추고 있었는데 바람이 할퀴고 간 자리가 선명했다. 바람이 얼마나 성깔지게 할퀴었는지.. 어떤 나무들은 그들이 잘 갖추어 입은 옷 대부분이 뜯겨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바람이 그린 풍경화였으며 걸작품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절대 그저 되는 법이 없다. 한 점의 미술 작품을 그릴 때 쏟는 열정은 아무것도 아닌 셈이랄까..
그 산중에는 신의 그림자가 가득했다. 신의 그림자는 바람과 시간처럼 형체가 없다. 다만, 당신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아름다운 형체로 남기고 있을 뿐이다. 하니와 나는 그 전람회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들이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다시 우리 설날을 코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기적 같은 일들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 삶에 음덕을 끼친 이웃과 조상님께 감사드리는 아침이다.
Il tesoro nascosto di El Chalten in Patagonia_LAGUNA TORRE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 patagonia ARGENTINA
il 10 Febbraio 2021,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