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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13. 2021

봄비 오시는 해남 땅

-설날에 열어본 남도 여행(하편)


하늘과 땅과 사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인간의 길은 맨땅이다. 어쩌다 하늘로 솟구쳐 본들 때가 되면 다시 디뎌야 할 땅. 그 땅에 길게 그어둔 선 하나. 진도를 다녀오는 길에 해남 땅 황산면 연당리의 땅이 너무 아름다워 차를 돌렸다. 하니는 마치 아이들처럼 보챘다. 국도에서 빠져나와 농로를 가던 중에 만난 우중충한 하늘은 하루 종일 빗방울을 날리고 있었다. 붉은 황토와 새파랗게 핀 보리밭 사이로 맨질맨질 길게 이어진 길. 그 길 옆에는 숱한 친구들이 봄비를 맞으며 파릇파릇 떨고 있었다. 하늘은 하늘대로 땅은 땅대로 사람은 사람의 길을 따라 유유자적했던 삼월 초하룻날 연당리의 봄이다. ( 기록, 2014년 3월 초하루)






봄비 오시는 해남 땅




   서기 2021년 2월 13일 아침(현지 사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는 이틀 동안 겨울비가 추적 추우적 내리고 있다. 한밤중에 잠시 나가본 바깥은 음산한 기운이 도시 가득하다. 입춘을 지나 봄을 재촉하는 비치곤 꽤 많은 양이 도시를 적시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컴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고 웹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먼 나라의 설 연휴는 이렇게 기억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세월 참 빠르다. 그 사이 달아나 버린 설 연휴 기간에 내가 열어본 사진첩 속에는 남도에서 만난 비에 젖은 동백꽃과 붉은 황토밭이 펼쳐진 해남 땅 황산면 연당리의 땅이다. 



하니와 함께 떠난 이곳은 그녀가 수채화를 열심히 그리고 있던 시절이어서 스케치 여행을 겸한 여행길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풍경을 만나 개구쟁이와 말괄량이처럼 사이좋게 철퍼덕 거리며 곳곳을 누비며 다녔다. 그게 언제 적인가.. 



그게 어느덧 8년 전(2014년)의 일이다. 그러나 사진첩을 열어 당시의 풍경을 바라보면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풍경을 바라봤는지 단박에 연상된다. 기억은 참 놀라운 일이다. 우리의 기억 저편에는 남들이 하지 않거나 만나지 못한 풍경을 찾아내는 일을 선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땅끝마을을 찾아 나서면 남들 다 가는 전망대 같은 곳은 패스! 땅끝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궁금한 것이다. 그곳에 가야 서울에서 눈만 뜨면 봐 왔던 콘크리트 구조물이나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직선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찾아낸 명소 해남 땅 황산면 연당리가 그런 곳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황토밭에는 미처 자라지 못한 봄동 배추가 주인 몰래 한아름 크기로 자라난 곳이다. ㅁ엇 보다 눈길을 끈 것은 붉은 황토였다. 황토와 봄비를 맞은 초록빛 보리밭이 환상의 풍경을 자아내는 것이다. 또 그 곁으로 가을걷이가 끝난 배추밭에는 배추가 겉옷을 함부로 벗어던진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속 알맹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비에 젖고 있었다. 



하니는 이곳을 다녀온 직후부터 평소의 습관에 따라 수첩에 메모 하나를 추가했다. 메모 내용은 '해남배추'이자 김장철에 사용할 해남 절임배추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토는 땅속의 해독제로 알려져 있다. 황토에서 발생하는 원적외선이 세포 생리작용을 활발히 한다는 것. 



그리고 열에너지를 발생시켜 유해 물질을 방출하는 광전 효과(정화력, 분해력)가 있으므로, 황토는 인체의 독을 제거해주는 해독제로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황토 침대 혹은 황토 찜질방 등이 널리 알려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수채화 캔버스에는 비에 물씬 젖은 해남 땅의 풍경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설 연휴가 끝날 무렵 열어본 사진첩 속에서 그녀의 흔적을 추억하는 동시에 내 머릿속은 온통 해남 절임배추가 어른 거린다. 사람들은 이런 걸 향수병(鄕愁病)이라 했다. 내 고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낳아준 조국의 풍경 속에는 어쩌지 못하는 동질감이 숨어있는 것. 유년기와 소년기 때 자주 봐왔던 풍경이나 학습한 내용 등이 해남 땅 황산면 연당리에 오롯이 묻어는 것이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었는 땅..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도 없고.. 혹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들 이날 만났던 여유로움을 찾아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대신 이곳에서 자란 배추를 절여 만든 겉절이 김치나 김장김치를 한 입 베어 물면 무슨 소원이 다 필요할까.. 봄비 오시는 해남 땅에 그녀와 배추가 겹쳐 보인다.


Album fotografico di viaggi nella Haenam Sud Corea 2014
il 13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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