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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13. 2021

너무 아름다우면 슬픈 법이지

-설날에 열어본 남도 여행(중편)

봄비가 오시지 않았다면 덜 애잔했을까...


3월 초하룻날, 남도의 땅끝 해남의 송호리 해수욕장에서 언덕 하나를 넘자 자동차를 가로막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빗방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동백꽃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렸다. 봄비가 오시지 않아도 지고 말았을 테지만, 무슨 까닭 모를 슬픔을 간직했던 것인 지... 차에서 내려 천천히 다가선 낙화 현장. 너무 아름다워 슬픔이 뚝뚝 묻어난다. 아직 지지 않아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텐데.. (기록, 2014년 3월 초하루)





자동차가 멈추어 선 곳은 횡단보도 비러 앞. 팽나무 숲과 동백숲이 울창한 작은 도랑 너머로 선홍색 꽃잎이 자지라 졌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땅은 촉촉이 젖었고 나무 이파리들도 비에 젖어 반들반들하다. 차를 도로 가장자리에 주차해 놓고 낙화 현장으로 다가가 보았다.



새빨간 선홍색의 동백꽃이 무리 지어 낙화된 곳은 돌로 만든 축대 앞이었으며 축대 너머로 마늘밭이 몇 채의 민가와 함께 비를 맞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세상에..!!)



서울에서 남도의 땅끝 해남의 송호리 해수욕장을 찾은 건 행운이었는지.. 흔치 않은 풍경 앞에서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 한편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슬픔이 뚝뚝 묻어나는 것이다. 너무 아름다우면 슬픈 법일까..





너무 아름다우면 슬픈 법이지




   서기 2021년 2월 12일 저녁나절(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티에서 이틀 연속으로 오래된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우리나라 설날을 그리워하는 행위가 사진첩에 묻어난 것이랄까. 다시 이어진 하니와의 통화를 끝마치고 당신과 함께 떠났던 남도의 봄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한편 우리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동백꽃의 낙화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동백꽃처럼 화려하게 지지 않는다. 꽃잎을 가장 아름답게 내놓은 다음 약속이나 한 듯 바닥으로 떨어진 모습과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인간계와 자연계..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머뭇거리기 일쑤다. 잘 살아보기 위해 매일 자지고 볶고 싸우며 시시덕거리다가 어느 날 사람들로부터 잊혀 간다. 요즘은 인생의 타임라인에 추가된 파일(?)도 발달한 문명과 비례해서 많아졌다. 먹고 살아가는 일이 만만치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금수저라면 몰라도 흙수저인 사람들은 아이를 낳자마자 서너 살 때부터 엄마 손에 이끌려 어린이집으로 향하게 된다. 유아원과 유치원으로 이름 붙여진 그곳에서 유모를 담당한 교사들이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게 된다. 아이들은 이때부터 부모님과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이별 연습을 하는 것이랄까.. 이렇게 시작된 아이들의 사회생활은 대략 20년 넘게 길게 이어진다. 



유아원과 유치원을 거친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6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냥 6년의 시간만 보내는 게 아니다. 방과 후에는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음악수업이 이어지고 태권도 도장으로 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영어는 물론 과외수업이 이어진다. 이렇게 시작된 사회생활은 중학교 진학 후부터 보다 혹독해지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성적순위 매기기 싸움에 뛰어들게 된다. 원치 않는(나의 경우) 일들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일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지면 다행이다. 대학교에 입학하는 즉시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부지기 수다. 성적 때문에 일어난 불상사이다.



그들은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취업준비에 몰두하게 된다. 취준생이라는 이름이 대학교 졸업 후에 붙은 이름표이다. 어디까지 이건 여학생들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남학생들은 군대생활을 해야 한다. 정확히 만 24세에 대학을 졸업했다면 2년 여의 세월을 의무적으로 군대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군대를 전역하면 사회생활이 쉬울까.. 

대학에서 전공으로 배운 실력만으로 반듯한 직업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나 다름없다. 그래서 금수저나 흙수저 타령이 나오는 게 아닌가. 용케 직장을 구하면 이때부터 결혼 적령기라는 딱지가 따라붙는다. 매월 300만 원씩 월급을 받는 직장도 흔치 않지만, 다행히 부모님의 도움으로 300만 원을 받는 직장에서 월급 전부를 저축하면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이렇게 모은 돈은 10년이면 3억 6천만 원에 이르게 된다. 결혼 적령기를 33세로 잡았을 때 당신이 저축한 돈은 1억 8천만 원이다. 연봉 3천만 원 대의 직장인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 이 돈으로 결혼을 해야 하며 집 장만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로부터 자주 입에 오르는 저출산, 결혼의 고령화가 그저 된 게 아니다. 

연봉 5천만 원이나 1억 원은 아무나 되는 일이 아닌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이렇게 됐다. 6070세대가 월세방을 전전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자수성가하는 시대는 저만치 멀어진 것이다. 만약 직장이 서울에 있다면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세금(?)을 추가로 물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보다 심각하다. 교육제도는 다르지만 학교 공부를 끝내고 할 일을 찾아도 수입이 변변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딸(신부)을 둔 집안에서 아들(신랑)을 우습게 여기는 차마 웃지 못할 풍토도 생겼단다. 우리나라의 고부지간의 갈등처럼 이 나라에서는 '아들과 장모 간의 갈등'이라는 문제까지 생겨난 것이다. 신랑이 신부의 재산을 노려 결혼을 했다는 등의 경우의 수까지 등장하는 것이다. (정말 욱껴!.^^)



이곳의 지인 마르코(가명)는 아직 미혼이다. 비혼 주의자가 아닌 그는 나이 40세에 이르기까지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맘마 보이'가 넘쳐난다고 말한다. 이런 배경에는 돈벌이가 시원찮거나 자립심이 크게 뒤떨어져 여전히 엄마의 조력이 필요한 경우이다. 사사건건 엄마로부터 결제(?)를 받아야 하고 통제를 받는 동안 점점 맘마 보이로 빠져들며 독신의 길로 빠져드는 것이랄까.. 



뻔한 이야기를 길게 끼적거린 이유가 있다. 현대인의 수명은 대략 80세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마르코의 경우 혹은 결혼 적령기를 놓친 남자들은 대략 인생의 절반을 사회생활 준비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라가 자주 인용하는 불혹(不惑)은 나이 40세를 부르는 말이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서서히 눈을 뜨게 되므로 남녀관계도 서로 계산을 하게 되는 것이랄까..   



라틴어 명언에 "사랑하면서 동시에 현명하기는 신에게도 어렵다."라고 했지만, 이들은 신의 영역까지 넘어선 것인지 속절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설 연휴에 낙화한 동백꽃을 앞에 두고 말이 많아졌다. 한 때 어른들께 세배를 하러 온 친척들이나 이웃들에게 덕담이라며 "결혼 언제 할 거야?"같은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까마득한 이야기이다. 요즘 면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돌어서는 즉시 '꼰대'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아무렴 어떤가.. 내가 사랑하는 인간계의 일면을 잠시 돌아봤다. 





태양계의 한 행성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우주 공간에 빼곡히 널린 별들과 또 다른 은하계를 참조하면 크기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천문학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태양계 조차 먼지 한 톨에 불과할 정도라니 크기만으로는 도무지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수많은 별들 중에 생명을 잉태한 별이 몇이나 될까..



과학이 최고로 발달한 현재까지 생명을 가진 곳은 유일무이하게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뿐이며 태양계가 생겨난 이후로 최소한 40억 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생명들이 태어나고 사라졌다. 그 가운데 한 생물이 우리 인간이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 부활(復活) 혹은 환생(還生)을 말하고 있다. 삶이 다하면 다시 부활하거나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고 말하는 것. 인간으로 태어나기 쉬운 일인가..



사람들이 죽음을 얼마나 두려워했으면 당신을 구원해 줄 종교에 매달릴까.. 부활과 환생의 대척점(對蹠點)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생명의 현상은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이랄까.. 우리 행성에서 인간으로 태어나는 일은 하늘의 축복이라 생각하는 1인이다. 신이 그 인간에게 허락한 시간은 대략 80세.. 



태어나서 80년 동안 살면서 우리 가슴에 안긴 감동의 풍경은 얼마나 될까.. 먹고사는 일은 녹록지 않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진 의무 같은 일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아름다움을 누리며 행복해질 권리이다. 어느 날 남도에서 만난 동백꽃 무리가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것도 우리네 삶이 오롯이 비친 거울 같은 모습 때문이었다.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


Bellissimi fiori quando sono bagnati sotto la pioggia
il 12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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