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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15. 2021

인연(因緣)

#20 남미 여행, 또레스 델 파이네 처음부터 끝까지


지난 여정(그가 내민 빼꼼한 얼굴) 끄트머리



마음으로 보고 느끼는 다른 별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잠시 파타고니아 여행의 흔적을 조금만 돌아봤다. 이렇게 시작된 여행이 어느덧 또레스 델 빠이네 정상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조물주가 빚아둔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인 이 봉우리들은 우리가 달팽이처럼 그은 기나긴 동선을 물끄러미 바라봤을 것이다.
그리고 뿐따 아레나스(Punta Arenas)에서부터 뿌에르또 나탈레스(Puerto Natales)로 이어진 동선까지 빼꼼히 얼굴을 내밀어 봤을 게 아닌가.. 하니와 나는 마침내 또레스 델 빠이네 정상에 오르고 있었다. 꿈에 그리던 현장을 가슴에 품게 된 것이다. 그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바라봤다.




인연(因緣)


   서기 2021년 2월 14일 저녁(현지시각) 무렵,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추위가 찾아왔다. 한 며칠 겨울비가 오락가락하시더니 비가 멎은 후 이번에는 바람이 불었다. 기온을 보니 영상 4°C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바람 때문인지 체감온도는 영하를 느끼게 했다.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한 채 두툼한 겨울옷을 입고 시내를 활보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정도는 겨울 날씨라 할 것도 없을 정도이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엄살(?)이 대단하다. 두툼한 옷에 목도리까지 착용하는 등 진풍경이 펼쳐진다. 그들에 비하면 나의 차림은 보다 간편하다. 요즘은 바깥출입도 많이 삼가는 편이어서 짬만 나면 오디오북을 듣거나 관심 있는 키워드를 찾아가며 웹서핑을 즐기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찾아 공부를 하기도 하며(뒤늦게 철들었음 ^^) 소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브런치 글쓰기는 습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매일 한 두 편씩 끼적거려야 직성이 풀이는 것이다. 이런 습관 때문에 나의 삶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연(因緣)으로부터 멀어지거나 정리를 하게 된다. 당신의 뜻에서가 아니라 자연의 질서처럼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나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브런치를 시작하고 난 다음부터 여러분들을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고, 이웃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인연의 고리를 새롭게 느끼게 되는 것이랄까.. 



이웃분들 중에는 굳이 당신의 나이를 밝히지 않아도 글의 느낌만으로 당신의 연륜을 짐작하게 된다. 그중에는 신세대가 있는가 하면 쉰세대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만난 분들은 세대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거나 느낄 필요도 없다. 우리는 겉모습이 아니라 속 사람.. 즉 마음으로 만나는 인연들이기 때문이다. 



가끔씩 나의 브런치에서 '마음은 늙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사라들이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그 현상을 물질과 비물질로 규정했다. 마음은 비물질이기 때문에 시간의 영향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종교인은 이런 나의 마음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마음도 늙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신이 세상에서 받은 석박사의 학위를 내세우며, 신세대들이 잘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 사용법을 잘 알지 못하거나, 배우는데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마음이 늙은 것으로 정의했다. 혹시나 하고 들어 보던 오디오북은 거기서 멈추었다. 당신의 주장 사실이겠지만 그는 마음의 현상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마음과 생각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었을까.. 



생각은 유년기 때와 노년기 때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난다. 그 차이는 다름 아닌 세상에서 겪은 경험칙과 전혀 불필요한 학교 공부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경우의 수를 내게 비교해 보면 뚜렷한 차이가 드러남을 단박에 얼 수 있다. 유년기와 소년기를 지나면서부터 사춘기 이후에 나타나는 현상들은 치열한 사회생활로 이어진다. 순수했던 자아의 모습에 세상의 오염물질이 덕지덕지 달라붙게 되면서 마음이 혼탁해지는 것이다. 



그 상태를 유지하며 결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맑고 투명해야 할 자아는 때가 잔뜩 묻은 거울처럼 변하는 이치랄까.. 나의 브런치 이름은 내가 꿈꾸는 그곳이다. 그곳은 내가 잊고 살거나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이다. 나는 죽는 날까지 내가 꿈꾸는 곳을 그리워할 것이며 장차 돌아갈 본향도 그곳이라 믿는 1인이다. 


최근 자주 인용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행 중에 만나는 풀꽃은 물론 호기심 가득한 세상 또한 나의 시선은 유년기와 소년기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이 별의별 학문을 내세울지라도 한치도 흔들림 없다. 



최근에는 천체물리학자들이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서도 씩 웃고 만다. 그들의 두뇌는 물론 상상력과 연구업적은 상상 불가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된 짓'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능력밖에 있는 우주를 꿈꾸며 빛과 같은 속도의 로켓으로 우주로 날아가면 몇 백 만년만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 태양계 바깥은 계수할 수 없는 우주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이런 노력 뒤에는 외로움이 묻어나 있었다. 그들은 외계의 별에 우주인의 존재를 바라고 있는 것 같은 이치이다. 죽음 너머의 세계를 탐하고 있는 것이랄까.. 두뇌(IQ_Quoziente d'intelligenza)가 너무 똑똑한 나머지 마음(EQ_Intelligenza emotiva)을 잊고 사는 사람들인지.. 



지능지수는 높은데 감성지수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늘 머리로만 계수하기 때문인지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열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해. 그러다가 4시가 되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을 느끼게 돼.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게 될 거란 말이야. 그러나 만일, 네가 무턱대고 아무 때나 찾아오면 난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니까..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지금은 슬프겠지만 그 슬픔이 가시고 나면(슬픔은 가시는 거니까) 넌 언제까지나 내 동무로 있을 거고, 나와 함께 웃고 싶어질 거야."



이런 경우의 수는 머리의 생각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머리로부터 인지된 생각들이 마음의 한 모습으로 오롯이 나타나는 현상이자 행복의 한 모습이다. 두뇌의 작용은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마음을 말할 때는 머리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심장 쪽 가슴의 심박수(心搏數)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비 그친 바를레타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가슴에 담으며 그들의 처지를 생각해 보고, 다시 브런치 이웃을 돌아보는 것은 나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다. 그리고 사진첩을 열어 파타고니아 여행을 떠올리는 것이다. 지난 여정에서는 우리가 머나먼 길을 이어가며 마침내 또레스 델 빠이네 정상까지 다다랐다는 것을 말했다. 



이런 여정이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하룻만에 공간이동을 통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시대(코로나 사대 빼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여행은 단지 거리를 이동하는 데 그치지 않았고, 자아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생채기를 아물게 하는 것이다. 



이런 수업(?)이 진행되면 될수록 마음은 잘 닦은 면경처럼 반들거리는 것이다. 자칫 늙은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마음을 부활시키거나 환생시키는 노력이랄까. 그때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 이 과정에서 브런치 이웃분들은 무한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입에 올리는 인연(因緣)이란 인(因)과 연(緣)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인연은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고 사물과도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하니와 함께한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 반드시 가 봐야 할 곳으로 정해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중에 한 곳이 또레스 델 빠이네라는 빼어난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 



인연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가 인(因)을 만들고 파타고니아의 대자연과 천지신명이 연(緣)을 만든 것이다. 브런치가 인을 만들고 브런치 이웃분들이 연을 만들어 장황한 나의 생각을 마음 가는 대로 끼적이고 있는 것이다. 



그녀와 함께 또레스 델 빠이네 정상까지 이어진 여정에는 무수한 볕과 바람과 물과 풀꽃이 함께 했으며 카메라가 최종 인증숏을 날렸다. 우리는 마침내 또레스 델 빠이네 정상에 서서 조물주의 걸작인 장엄한 세 봉우리와 함께 일부러 퍼 담아둔 듯한 초록빛 호수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감개무량했다. <계속>


Il Nostro viaggio Sudamerica_Torres del Paine, Patagonia CILE
Scritto_il 14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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