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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24. 2021

집 나가면 개천국

#71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그 누가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 했던가..?!!


지난 여정(하나 더하기 하나) 끄트머리 



이 같은 일이 돌로미티의 상징 부근에서 일어난 것이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비경이 눈 앞에 나타나 여행자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이다. 맨 처음 세 봉우리에 초점을 맞추어 열심히 발품을 판 결과 쉼터 바로 곁에 상상밖의 비경(작은 호수 두 개)이 우리를 놀래키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어른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너는 복(福)도 많구나"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나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깔깔대며 웃어 넘겨준 이웃들의 표정도 평소에 사람들이 지은 복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새해 복 많이 받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복을 많이 짓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생각지도 않은 덤을 챙기는 것은 분명 복된 일이다. 돌로미티는 우리에게 복을 예비해 놓고 있었다고나 할까..




집 나가면 개천국


우리말에 개자(字)가 들어가는 게 적지 않다. 개복숭아 개참외 개수박 개살구 개나발 개망신 개죽음 개수작.. 접두사에 개만 붙이면 본래의 뜻에서 조금 빗나가거나 부정적인 뜻으로 변하거나 보다 자극적인 말로 변화하게 된다. 식물에 붙인 개자는 야생에서 혼자 자란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후자에 나타나는 개자는 매우 부정적이자 자극적이다. 거기에 어느날 광고 카피 하나가 등장했다. 집 나가면 개고생.. 이 그것이다.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집에서 느끼지 못했던 일들이 먼 길을 나서면서부터 불편 이상의 힘든 일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랄까.. 나의 경험칙에 따르면 개고생을 사서 했다. 사주팔자에 역마살(驛馬煞)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떠나 대자연을 만나는 게 너무 행복한 것이다. 



세상에는 지천에 볼 게 널려있는 것이며 그것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움으로 내 가슴에 각인되곤 했다. 집콕으로 결코 누릴 수 없는 행복이 값 없이 널려있는 것이다. 돌로미티 여행기를 끼적거리다가 웬 개수작인가 싶을 것이다.(개나발 불지 마..ㅋ) 자칫 빛 좋은 개살구가 될까 봐 미리 그 현장을 가 본다.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세 봉우리에 구름이 걷히고 있다. 우리는 곧 구름걷힌 세 봉우리를 만나게 될 것.


내가 만난 개천국


하니와 함께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리푸지오 아우론조 쉼터(Rifugio Auronzo alle Tre Cime di Lavaredo)에 도착하여 잠시 쉬고 있을 때, 우리 앞에 두 마리의 덩치 큰 애완견이 주인과 함께 트래킹에 나선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늑대를 닮은 근사한 녀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글쎄, 녀석들의 표정을 보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혀를 길게 내밀고 헥헥거리는 것이다. 어쩌면 자기들의 영역이나 다름없을 텐데.. 개들의 고생이 눈에 띄는 것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그들은 속으로 주인을 나무라고 있었을까.. 그냥 집에 가만있으면 될 텐데 왜 이렇게 사서 개고생 시키냐 싶을 것. 그런데 잠시 후 대반전이 일어났다.



녀석들이 주인과 함께 도착한 곳은 풀꽃들이 지천에 널린 곳이자 호수가 조망되는 기막힌 장소였다. 사람들이 힘들게 이곳으로 온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두 마리의 애완견은 그제야 주인의 속뜻을 헤아렸을 것이다.



엄마, 아빠.. 우리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돼요..? (애원 애원)ㅜ



엄마, 아빠.. 집에 가기 싫은 데.. 걍 여기서 살아요. ㅜ 



그들은 잠시 머물다 둘레길을 따라나섰다. 조금 전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 근처에 한 여행자가 퍼질러 앉아 돌로미티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생애를 통틀어 한 두 번 올까 말까 한 명소에 들렀던 두 마리의 애완견은 어쩌면 자기들의 머나먼 고향땅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개가 말을 할 줄 알았으면 개죽음을 무릅쓰고 이곳에서 살자고 버텼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재밌군. ㅋ)



조금 전 애완견과 주인들이 내려다본 비췻빛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이다. 8월 중순인데 가을 냄새가 묻어나고 있었으며, 작고 아담한 두 개의 호수 곁으로 사람들이 거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덩치가 워낙 큰 지역이라 카메라에 모두 담을 수 없어서(광각렌즈 없었음) 조금씩 뜯어서 맛 본 뜨레 치메 자연공원(Parco Naturale Tre Cime)의 눈 시린 풍경이다. 남성미가 넘치는 장엄한 세 봉우리도 멋있지만, 보다 차분해 보이고 여성스러운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한 여행자가 호수 곁의 길을 걷고 있다. 그도 우리처럼 집을 나서 먼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여행길은 참 묘하다. 그 힘든 여정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집을 떠나야 비로소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되는 것이다. 개고생이 개천국으로 변하는 과정이랄까.. 



하니와 나는 좀 더 먼데까지 걷고 싶었지만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남들처럼 둘레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습관처럼 말한다. 청춘이었으면.. 10년만 더 젊었으면..!



바로 코 앞에 한 젊은 여성이 호수 주변의 풍광을 살피며 쉬고 있다. 그녀의 발뒤꿈치 뒤로 보랏빛 야생화가 피어있다. 카메라의 시선은 풀꽃으로 향해있는 것이다. 그녀가 앉은자리는 천국이다. 일부러 집을 떠나 개고생 끝에 만난 새로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 이어진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TRE CIME DI LAVAREDO
Scritto_il 24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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