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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03. 2021

흙 없는 마을의 기상천외한 놀이터

#8 파타고니아 깊숙이 숨겨진 작은 마을 깔레타 토르텔


지난 여정(흙 없는 마을의 낮과 밤) 끄트머리 



우리 방에서 욕실이나 화장실로 이동하거나 주방으로 발을 옮길 때마다 삐거덕거린다고 했다. 촘촘히 공사를 잘해 두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틈새가 벌어지고, 그 위로 적당한 무게가 올라서니 묘한 울림이 생기는 것이다. 나무로 만든 도로 위를 걸을 때와 전혀 다른 소음이 집안 곳곳에서 묻어나는 것이다. 



누군가 욕실에서 샤워를 하면 샤워 동작까지 상상될 정도로 나무로 만든 집은 옆 칸의 소음까지 잘 전달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민박집주인 내외는 거실에서 대화를 나눌 때도 소곤소곤 말소리를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밤이 오시면 딴 나라 신세대가 묵고 있었던 2층에는 아래층과 다른 층간 소음이 쉰세대를 괴롭혔다. 가끔씩 뚜벅뚜벅하는 소리가 들리다가 어떤 때는 삐거덕 거리는 소음이 매우 거칠게 폭풍처럼 지나가는 것이다. 그때마다 하니와 나는 눈을 맞추고 씩 웃으며 묘한 상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흙 없는 마을의 밤 풍경은 특별하다. 아니 매우 특별했다.



흙 없는 마을의 기상천외한 놀이터


   우리는 숙소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며 깔레타 또르텔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대략 570여 명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의 중심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던 것이다. 또 여행자가 숙소에 콕 박혀있는 것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무슨 핑계를 만들어도 싸돌아 다녀야 본전(?)을 뽑을 게 아닌가.. 

하니와 나는 집 주변을 돌아보고 난 다음 나무로 만든 바닷가 도로를 따라 걸었다. 참 별난 도로였다. 나무로 만든 도로 위를 걸으면 적당한 쿠션을 느낄 뿐만 아니라 어떤 곳은 가늘게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때 저만치 앞서가던 한 가족을 만나게 됐다. 누렁이를 연상케 하는 목줄 없는 반려견 한 마리와 네 식구.. 나는 그들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양해를 얻어 기념촬영을 했다.



   위 자료사진을 보면 뒷줄 오른쪽에 있는 분이 이 가족의 엄마이며 좌측에 서 있는 여자 아이가 삼 남매의 맏이이다. 그리고 앞줄 왼쪽에 서 있는 녀석이 막내이며 그 곁 오른쪽에 있는 아이가 그의 형이다. 세 남매는 많이 닮았다. 나는 이들 중 막내가 제일 맘에 들었다. 

녀석은 대략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데 매우 건강한 모습이다. 살도 포동포동 짧은 다리에 머리통은 웰케 큰지.. 아무튼 건강하게 보였다. 나는 녀석을 통해 나의 유년기를 떠올리며 씩 웃어 보이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흙 없는 마을에서 아이들은 어디서 논단 말인가.. 의문은 잠시 후에 풀렸다.



흙 없는 마을 중심으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들




사진 한 장 한 장을 클릭해 보면 대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과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는 동네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동차나 자전거가 없는 마을의 이색적인 풍경들이 뷰파인더를 자꾸만 자극한다.



흙이 없는 마을이라고 했지만 피오르드 위에는 소량의 흙이 존재하고 마을의 집들은 그 위에 지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나무로 지은 집들은 풀꽃들과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지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며 매우 자연스럽니다.



길 없음.. 마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만난 특별한 통로는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길.. 관련 포스트 처음에 언급된 보트들은 리오 코크랑(Rio cochrane) 강 하류 삼각주를 돌아 이곳 마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놀이터를 만나게 됐다. 아래 나열된 사진들 속에 그 장면이 포함돼있다. 하니는 저만치 앞서 걷고 있다.



흙 없는 마을의 기상천외한 놀이터




위 사진들 중에 인동초 꽃이 만발한 곳에 숙소(Hostal)가 보인다. 마을 중심으로 가는 길에 만난 숙소로 그나마 외관이 가장 뛰어난 곳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우리가 묵는 숙소로부터 너무 떨어져 있어서 굳이 이곳까지 올 이유는 없어 보였다. 또 어떤 집들은 땔감을 사용하지 않고 LPG를 사용하는 집도 보였다. 선착장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문화혜택을 입은 곳이랄까..



나는 이곳에서 두 아이가 조용히 놀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꽤 넓은 장소에 나무데크로 만든 작은 운동장이 마을 중심 부근에 있었던 것이다. 나무로 만든 운동장.. 기발한 아이디어이자 자구지책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바닷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장소에는 말 그대로 기상천외한 놀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짜잔..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일 정도이다. 나무로 만든 도로 위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그곳에 나무로 만든 미끄럼틀과 시이소와 그네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으로 올 때 만난 막내 녀석이 절로 떠오른다. 녀석은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곳까지 진출하여 친구들과 함께 놀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놀이터에는 인적이 없었다. 콘크리트 건물은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정서는 얼마나 맑고 고울까.. 서울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통째로 이곳에 옮겨다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디.



드디어 마을 중심에 도착했다. 당시 마을 중심에는 국제전화를 할 수 있는 작은 부스가 있었으며 이 마을을 간장 하는 사무소와 여러 시설들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있었다. 모든 게 미니어처를 보는 듯 작은 가운데 칠레의 영웅 베르나르도 오이긴스(Bernardo O'Higgins)의 흉상이 바닷가 나지막한 언덕에 서 있었다. 




그는 칠레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고 사령관이자 정치인이었다. 영웅들이 그러하듯 그가 칠레의 영웅이 될 때까지 여정은 쉽지 않았다. 페루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공부를 마친 그는 미국 독립의 자유주의적 사상을 고수하는 한편, 아버지로부터 정치에 입문하는 것을 거절당한 후, 칠레로 돌아와 1810년 9월 18일 까빌도비에르를 시작으로 혁명 운동의 지도자들과 협력하였다. 



그 후  칠레 군대에 입대하여 호세 미구엘 까르레라 장군(José Miguel Carrera )의 사임으로 지휘권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이 땅을 정복하고 있던 스페인군을 물리치고 리르까이 조약(il patto di Lircay (1814))에 서명하도록 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칠레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오늘날과 다른 변형된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늘나라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 흙 없는 마을에도 교회가 있었다.



흙 없는 마을에 코로나도 없다


나 또는 우리하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그를 기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쟁취한 청정지역 파타고니아가 슬슬 부러워지는 것이다. 성격상 타인과 비교를 하거나 함부로 부러움 따위를 가지지 않는 내게 파타고니아는 꿈의 땅이었다. 내 조국이 너무 비좁아 터진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매일 통화를 하는 하니와 대화 내용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가 코로나 때문이다. 



정말 지겨운 녀석이 코로나였다. 얼마나 지겨운가 하는 건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포스트 제목도 처음에는 흙 없는 마을에 코로나도 없다..고 했다가 고쳐 쓰게 됐다. 지긋지긋한 녀석이 통화 중에 계속 묻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속히 나아지기도 해야 할 텐데..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도 전 국민 혹은 세계인들이 집단면역을 형성하려면 적지 않은 세월이 필요한 것이다. 



최소한 2021년은 다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하니와 통화를 시작하면 노트북을 열고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는 물론 세계의 코로나 성적표를 펴 놓고 장황하게 브리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자(현지시각)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에 따르면 2월 중순부터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감염자 수는 1만 7천 명을 넘어섰으며 사망자 수 또한 343명으로 집계됐다. 이에 비할 것도 없지만 대한민국은 코로나 청정국이나 다름없지만 사람들의 체감 열기는 여전히 답답한 것.



전화기 너머에서 하니의 한숨 소리가 배어 나온다. 이탈리아행 비행기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청춘이면 모를까 안 청춘들의 하루는 1년을 맞먹는다. 아무리 빨라도 4월은 지나야 하늘길이 열릴 수 있을까.. 그런 기대감 속에 사진첩을 열고 흙 없는 마을의 중계(?)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깔레타 또르텔이 위치한 흙 없는 마을의 코로나 성적표를 보니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이 마을에는 코로나도 없는 청정지역인 것이다. 생전 처음 부러움을 느낀 이유였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막내 녀석이 자꾸만 생각난다.


Non c'è terra nel villaggio_Caleta Tortel, Patagonia CILE
il 02 Marz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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