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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r 06. 2021

봄 향기품은 해넘이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노바라 수로의 망중한

그때는 왜 해넘이가 가슴에 와 닿았을까..?!!



   해넘이가 아름다운 이곳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의 노바라(Novara) 시 평원에 위치한 한 수로 곁이다. 알삐의 라고 마쬬레(Lago Maggiore)에서 발원한 강물이 퓌우메 포(Fiume Po) 강으로 흘러가는 동안 한 줄기의 물이 노바라 시의 평원을 적시고 있는 것이다. 어느 봄날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해넘이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잠시 망중한을 즐긴 것이다. 



요리사들의 하루는 매우 힘들다. 젊은 요리사들도 이제나 저제나 달콤한 휴식이 주어지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이므로 '안 청춘'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요리사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이탈리아 요리에 도전한 사람들 혹은 요리사에 도전하여 실패한 사람들은 이런 경우의 수를 모르기 때문이랄까.. 



요리사란 이른바 3D 직업군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3D란 Dirty(더럽고), Difficult(힘들고), Dangerous(위험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소한 두 곳의 경우를 생략한 힘든 직업임에 틀림없다. 한 때 TV 프로그램에 나와 재롱을 떨던 요리사의 모습에 반하여 당신의 적성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기 위해 요리사에 도전한 사람들도 봤다. 



그들 다수는 실패를 거듭하며 낙향을 했다. 특히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그들은 맨 처음 언어의 장벽에 부딪치며 곡소리를 내곤 했다. 리스또란떼의 일 보다 소통 문제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고배를 마신 것이다. 그들 중에는 한국에서 여러 개의 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고, 요리사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관련 학과를 졸업한 사람들도 있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용케도 살아남은 나는 어느 봄날 일주일에 한두 번 주어지는 달콤한 휴식 시간에 평소의 습관대로 카메라를 둘러메고 노바라 시 근교에 있는 한 수로를 찾아간 것이다. 이곳에는 원산지가 캐나다인 이탈리아 포플러 나무가 수로 곁으로 줄지어 있는 곳으로,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나뭇가지에 무수한 꽃을 내놓았다. 봄기운이 넘쳐나는 가운데 해넘이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서기 2021년 3월 6일 자정(현지시각)이 넘은 시각에 사진첩을 열어 당시의 해넘이를 보고 있자니 생떽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한 장면이 생각난다.




어린왕자


넷째 날 아침, 그가 이런 말을 했을 때에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나는 해 지는 풍경이 좋아. 우리 해 지는 걸 구경하러 가."

"하지만 기다려야 하는데."

"뭘 기다려?"

"해가 지길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처음에 그는 몹시 이상해 하는 눈치더니 나중에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


"난 아직도 우리 집에 있는 줄 알았어."



과연 그랬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미국이 정오인 때 프랑스에서는 해가 진다. 해가 지는 것을 보려면 1분 동안에 프랑스로 갈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프랑스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 조그마한 그의 별에서는 의자를 몇 발자국만 뒤로 물려 놓으면 그만이었지. 그래서 그는 해지는 풍경을 보고 싶을 때마다 구경할 수가 있었지.


"하루는 해가 지는 걸 마흔네 번 구경했어."


그리고 조금 있다가 다시 말을 이어,


"아저씨.. 몹시 쓸쓸할 적엔 해 지는 게 구경하고 싶어 져.."

"그럼 마흔네 번 구경하던 날은 그렇게도 쓸쓸했더냐..?"


그러자 어린 왕자는 대답이 없었다.




해넘이에는 쓸쓸함이 깃들어 있다. 누군가 말을 하지 않아도 해넘이는 해돋이와 다른 느낌이 봄기운처럼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나는 이날 수로 곁을 걸으며 점점 붉어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바라 평원 너머로부터 노란 달님이 얼굴을 내밀 때까지 수로 곁을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사내가 수로 곁으로 조깅을 하고 있는 풍경 속으로 다시 쓸쓸함이 묻어난다. 가로수는 물이 올라 금세라도 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데 피에몬테 주의 한 수로 곁으로 코로나 시대의 외로움까지 묻어나는 것이다. 



요즘 하루 일과는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를 보는 게 일상이 됐다. 사망자 수가 조금 줄긴 했지만 갈수록 태산이다. 3월 5일 자 신규 감염자 수는 24,036명이며 사망자 수는 297명이다. 피에몬테 주와 인접한 롬바르디아 주의 누적 사망자 수는 각각 28,577명과 9,437명이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이 숫자를 열어보시는 분들이라면 긴가민가할 것이다. 대략 사정이 이러하므로 주 밀라노 대한민국 총영사관은 교민들에게 이탈리아 → 경유지 → 한국 또는 한국 → 경유지 → 이탈리아에 입국하는 내외국인 전부에게 반드시 PCR 음성확인서 지참을 요구(3월 6일 현재)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한국에 가 있는 하니의 이탈리아 입국은 백신 접종 시기와 이탈리아 현지의 코로나 성적표 때문에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게 어느덧 해를 넘겨 4개월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아름다워야 할 해넘이 풍경이 어린왕자와 어느 비행사의 대화처럼 쓸쓸해지는 것이다.



"하루는 해가 지는 걸 마흔네 번 구경했어."

그리고 조금 있다가 다시 말을 이어,

"아저씨.. 몹시 쓸쓸할 적엔 해 지는 게 구경하고 싶어 져.."

"그럼 마흔네 번 구경하던 날은 그렇게도 쓸쓸했더냐..?"

그러자 어린 왕자는 대답이 없었다.



세상은 마음대로 안 될 때가 참 많은 것 같다. 해님 달님 별님은 변함없이 시간에 맞추어 들락날락하는데..


il Tramonto incontrato all'acquedotto novarese in Piemonte
il 06 Marz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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