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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07. 2021

전설(傳說)의 그 바닷가

-남반구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피렌의 봄

코로나가 소환해 준 의외의 선물, 전설의 그 바닷가에서..!



   브런치를 열자마자 가슴이 탁 트이는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을 마주치게 된다. 꿈같은 풍경이다. 꿈에 본 풍경 같다. 이곳은 남미 칠레의 뿌에르또 몬뜨(Puerto Montt) 앞바다 앙꾸드 만(Golfo di Ancud, 灣)의 봄바다 모습이다. 손을 담그면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아름다운 바다.. 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나의 위치는 이 도시의 지근거리에 있는 이슬라 땡글로(Isla Tenglo) 섬이다. 



하니와 나는 본격적인 파타고니아 여행에 나서기 전에 이 도시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오래전 남미 일주 여행을 할 때 빼놓고 간 자리를 다시 찾아간 것이다. 감개무량했다. 사는 동안 가고 싶은 장소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은 여간 행운이 아닌 것이다. 


하니가 저만치 앞서 걷는 가운데 이 섬에 살고 있는 주민 한 사람이 땔감을 마련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동시에 포착되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좁은 바닷길 건너 도시 사람들보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살고 있는 땡글로 섬 꼭대기애 서면 마치 하늘나라에 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탁 트인 풍광을 자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장차 만나게 될 여행지를 꿈꾸고 있었다. 하니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수평선 너머에 위치한 오르노삐렌이라는 마을이었으며, 그곳은 이 도시와 함께 북부 파타고니아로 불리고 있었다. 그곳이 장차 우라가 만나게 될 여행지인 것이다. 이 섬에 도착한 이후 이곳의 텃새 황조롱이가 이방인의 출입을 경계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녀석은 우리가 발길을 옮기는 대로 따라다녔다.(우리.. 나쁜 사람 아니거덩.. 히히 ^^)



우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저 바다 건너에 있는 미지의 여행지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 품에 안길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다만 미리 예습해둔 자료를 머리에 그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미래의 일은 늘 이런 모습이다. 서두에 코로나 시대를 언급한 것도 관련이 있다. 미래의 일은 물론 과거의 일일지라도 현대의 과학이 일구어낸 인터넷(브런치)이 없었다면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을 것이다. 



그저 가슴에만 묻어두고 누룩곰팡이 피듯 발효를 거듭하는 사이에 어느 날 이승을 떠나 저승에 가 있을 게 아닌가.. 청춘일 때는 몰랐던 일들이 안 청춘에 들어서기만 하면 회한들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것이다. 당시에는 잘 한 듯 싶어도 돌아보면 잘 못한 게 수두룩한 게 우리네 삶의 모습이었다. 단 한차례의 연습할 기회도 주지 않는 삶은 그토록 냉정해서 삶을 돌아보는 일 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동네 어귀에서 만난 녀석은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길거리 개'로 불렸지만 참 착한 녀석들이었다. 가끔씩 부슬부슬 빗방울이 날리는 가운데서도 강아지들이 어미의 젓 주위로 달려들고 있다.


세계인들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의 출현도 예측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사람들은 당황했다. 원망했다. 저주를 퍼부었다. 당신의 가족과 이웃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코로나에 대한 감정들은 묻어두어서 그렇지.. 녀석이 눈에 띌 정도만 되었어도 인간들 손에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간이 1년을 넘기면서 생각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네그로 강(Rio negro) 가에 사과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했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묘한 타협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저주를 퍼부어도 시원찮을 코로나에 대해 "코로나가 소환해 준 의외의 선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가 뭔가.. 만약, 코로나가 창궐하지 않았더라면 집콕을 하는 시간은 적었을 것이며 싸돌아 다니기 바쁜 나머지 소중한 나의 자산인 '여행의 추억'으로부터 저만치.. 저만치 멀어졌을 것이다. 



전설(傳說)의 그 바닷가




우리가 꿈꾸고 찾아갔던 북부 파타고니아의 작은 마을 오르노삐렌(Hornopirén)에 도착했을 때 봄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땡글로 섬에서 바라본 그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우리는 이곳 파타고니아의 봄을 만나기 위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Santiago del Chile)에서 빠르게 남하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숙소로부터 가까운 바닷가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우기가 막 끝나던 시기였으며 신세계의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 바다가 우리에게 전설을 남긴 바닷가였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봄바다가 브런치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첫눈에 반한 전설의 바닷가는 이러했다.


포토, 우리가 만난 전설의 바닷가




포스트에 등장한 바닷가 풍경들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면.. 이날 우리가 만난 바닷가의 풍경은 우기 때 만난 아침의 풍경으로 썰물 때의 모습이다. 멀리 안데스 산맥이 바닷가에 드리워진 구름을 걷어내고 있다. 마치 솜이불의 솜을 두른 듯하다. 그리고 그 아래에 환상적인 연둣빛(해조류 '매생이'를 닮았음)을 두른 곳이 오르노삐렌 삼각주의 모습이다. 



이곳 삼각주는 지평선 아래로 흐르는 리오 블랑꼬(Rio blanco)와 바닷가 가까이 흐르고 있는 리오 네그로(Rio negro)가 만들어낸 천혜의 걸작이다. 썰물 때였으므로 이곳에 정박해 있던 작은 어선들이 모두 뭍으로 올라온 형상인 것이다. 정중동.. 그 바닷가에 서면 마음이 차분해져 오고, 동태평양에서 전해져 오는 풋풋한 바다향기가 심신에 깊숙이 안긴다.















숙소로 돌아갈 시간




우기가 끝나가는 촉촉한 오르노삐렌 바닷가를 천천히 돌아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이 마을의 상징과 다름없는 광장(Plaza de Armas de Hornopirén) 곁에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가 있다. 뿌에르또 몬뜨에서 타고 온 버스는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승객들을 내려놓는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터미널(그냥 매표소 하나와 버스를 주차할 작은 주차장이 전부였다)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마을 중심에 있는 마트에 들러 간단한 장을 봤다.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는 숙소(민박집)를 정할 때 습관처럼 물어보는 게 있다. 취사가 가능한지 여부 등을 묻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절차는 현지에서 상식처럼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행자 다수는 인프라가 열악한 여행지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관련 브런치에서 언급했지만 당시의 숙박비는 우리 돈으로 1인당 5천 원에서 만원 정도가 하루 숙박비였다. 세상에 천국을 쏙 빼닮은 여행지에서 공짜나 다름없는 숙박비가 파타고니아 여행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비수기가 되어서 민박집주인이 아니라 여행자가 부르는 게 곧 숙박비였다. 그러니까 방을 내주는 주인의 입장에서는 떱떠릅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틀 전 이곳에 도착해 흥정한 방값은 하니와 나.. 둘을 포함해서 1만 원이라면 믿기시는가.. 일주일 동안 머무는데 고작 7만 원이었으며 이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가 느낀 북부 파타고니아의 모습은 천국 그 자체였다. 그런데.. 날만 새면 늘 봐 왔던 풍경을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아침부터 발품을 파는 우리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게 민박집 바깥양반이었다. 

그는 "저게 그렇게도 좋은가.."싶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풍경이 코로나 시대를 슬기롭게 해 준다는 걸 지금쯤 깨닫기는 했을까.. 우라가 남긴 전설의 바닷가는 이렇게 시작됐다. 다음날부터 하니와 나는 매일 전설의 바다를 가슴에 품었다. 꿈같은 일이다. <계속>



*참고로 오늘자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를 기록해 둔다. 부활절 연휴기간 동안 강력한 통제에 힘입어 최근에 처음으로 신규 확진자 수가 1만 명 이하(7.767 nuovi casi)로 떨어졌다.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지질 염원한다.(Coronavirus in Italia, il bollettino di oggi 6 aprile: 7.767 nuovi casi e 421 morti)


La Primavera dell Hornopiren nella Patagonia settentrionale del CILE
il 06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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