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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30. 2021

비현실적 풍경 속 행복한 부자 마차

#11 남반구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피렌의 봄

이상과 현실 혹은 상대적 박탈감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저 멀리 마차 한 대가 평원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은 남미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삐렌 삼각주의 모습이다. 썰물 때가 되면 삼각주는 황홀한 색깔로 변하게 된다. 썰물이 시작되면 비현실적 풍경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전 처음 만난 신비로운 빛깔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하니와 나를 바닷가로 불러내는 것이다. 그때 삼각주를 가로지르는 마차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마차가 푸른 물을 건너가는 곳은 리오 네그로(Rio negro) 강의 하류 모습이다. 마치 도랑 같은 모습인데 맑은 물이 쉼 없이 흐르는 곳이다. 이 강은 썰물 때가 돼야 삼각주 위로 드러나는 것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풍경이 오롯이 펼쳐져 있는 곳..



하니와 나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여러 날 동안 마차를 지켜보게 됐다. 멀리 안데스산과 피오르드와 삼각주가 조화를 이루며 황홀경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우리는 마침내 마차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기록을 이렇게 남겼다.



연재 포스트(내가 좋아한 행복한 부자의 마차) 중에서



하니와 나는 숙소에서 잠을 자는 시간을 빼면 거의 하루 종일 바닷가와 갯가를 서성거렸다. 우리는 마치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듯 생전 듣보잡 풍경이 펼쳐진 삼각주를 좋아한 것이다. 그런 한편 정중동의 삼각주 위에는 잊을만하면 작은 동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동선을 긋는 주인공은 말 한 필과 부자(父子)였다. 



그 부자는 이곳 삼각주에 떠내려 오거나 밀려든 땔감을 채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게 널따란 삼각주와 멀리 보이는 안데스 산자락에 쓰러진 나무들이었다. 우리는 볕 좋은 날 삼각주를 가로지르는 리오 네그로 강과 부자의 마차가 동선을 긋고 있는 삼각주 위로 나가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나와 맨 먼저 만난 말 한 필.. 나중에 알고 보니 백마는 마차를 끄는 수컷의 배필이었다. 마차는 주로 수컷이 끌고 다녔는데 가끔씩 암컷과 교대를 하는 것이다. 그때 암컷을 삼각주에서 풀을 뜯으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참 평화로운 풍경이 삼각주 위로 펼쳐지는 것이다. 



하니와 나는 숙소를 떠나 어느덧 리오 네그로 강가로 나왔다. 리오 네그로(Rio negro)란 말은 스페인어로 '검은 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남미에는 이런 이름을 가진 강이 숱하다고 말한 적 있다. 검은 물이 흐르는 강이 아니라 강물이 너무 맑아 강바닥을 훤히 비추면서 생긴 이름이다. 
강 하류는 썰물 때가 되면 강의 원형이 드러나고 밀물 때가 되면 물속에 잠기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리오 네그로의 본색은 이때 드러나며 안데스 산맥과 잘 어우러지는 한 폭의 파노라마를 연출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오늘의 주인공 행복한 부자의 마차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동안은 먼발치에서 만났지만 이번에는 바로 코앞에서 두 사람을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사를 건네며 반가워했다. 



두 부자와 우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사흘 째 되던 날 이번에는 삼각주 위에서 재회하게 됐다. 그리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목격되거나 만나면서 우리는 친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비현실적 풍경 속 행복한 부자 마차




우리를 늘 궁금하게 만들었던 연초록 빛깔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마침내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바닷가에서 바라볼 때 리오 네그로 강가 삼각주 위에서 늘 신비스러운 연둣빛을 자랑하던 정체는 매생이를 닮은 해조류였다. 



특이한 점은 이 삼각주는 밀물이 되면 해조류가 살아남고, 썰물 때가 되면 파릇한 잔디가 공생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갯가에서 삼각주 위로 펼쳐지는 비현실적 풍경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풍경은 공상과학 소설 혹은 영화에나 있을 법하며, 누군가 연출해 놓은 듯 머리에 하얀 눈을 인 안데스 산맥과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다.



말 한 필에 의지해 삼각주를 가로지르던 두 부자는 늘 이곳 리오 네그로 강을 건너 다니곤 했다.



이날도 두 부자는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오두막집을 출발하여 강을 건너 우리가 서성거리는 장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저 멀리 삼각주를 가로지를 때나 가까이서 만날 때 모습은 한결같았다. 



그리고 마차에 동승하고 있는 소년의 얼굴은 늘 해맑은 모습으로 어두운 그림자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사노라면 이런 부자에 대한 시선이 약간은 어두울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은 두 사람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이유 등으로 소년에게 어머니는 부재했고, 그의 아버지 곁에는 아내가 없는 것이다. 평소에 늘 함께하던 사람이 부재하면 상대적 박탈감이나 상실감은 얼마나 클까..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가족 중에 누군가 곁에 없을 때 혹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등 늘 함께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면, 일정기간 동안은 우울의 늪에서 헤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두 부자가 겪은 세월은 체념을 하게 만들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乖離感)을 지혜롭게 극복했던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세상은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늘 준비해 놓고 있다가 어른들의 말씀처럼 "산 사람은 살아가게 마련이다"라고 일깨워 주곤 하는 것이다. 



요즘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삶이 이들의 형편과 다르지 않다. 이른바 코로나 시대가 만든 '나홀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 만난 두 부자의 삶이 가슴에 다가오는 것이다. 어느 날 전혀 원치 않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고 녀석은 1년을 넘게 지구촌을 들쑤셔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피해자를 양산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고, 이런 시대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희생자 수는 300만 명이 넘으므로, 원치 않는 이별을 한 유가족들은 나의 상실감은 비교가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잠시 희망을 잃었으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한시적으로 견우와 직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여전히 행운을 누리게 되는 것이랄까.. 



사람들은 가끔씩 이런 현상에 대해 적절한 비유를 하곤 한다. 예컨대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의 삶의 단편이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없어서 쓰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넉넉한 사람은 '있어도 쓰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어차피 사용하지 못할 재화에 대해 각자의 마음은 하늘과 땅 차이.. 전자의 경우는 궁핍을 느끼게 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여유가 넘치게 되는 것이랄까.. 



소년은 나를 보자마자 인사를 건네며 웃어 보였다.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우리 곁을 지나쳤다. 소년은 저만치 멀어지면서 자꾸만 우리를 향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쩌면 소년은 하니를 보며 부재하고 있는 어머니 모습을 떠 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 사람 곁에는 당신들을 다독거려 줄 어머니 혹은 아내가 부재한 공간이 너무도 컸을까..  


머리에 솜털 같은 하얀 띠와 눈을 두르고 오르노삐렌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산은 오르노삐렌 화산(Volcán Hornopirén)의 장엄한 모습이다.


하니와 생이별을 하고 난 다음부터 그녀의 빈자리가 커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6개월의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우리 둘을 갈라놓고 있는 것이다. 곁에 있을 때 전혀 느끼지 못했던 상실감이 도둑처럼 찾아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빈자리는 이제 6개월에 지나지 않지만 6년 혹은 평생을 혼자 지낼 수밖에 없는 운명의 사람들은 속이 새까맣게 타지않았을까..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께선 불행하게도 아버지와 숙부님, 세 분을 낳으신 후 당신의 남편과 헤어져야 했다. 그리고 평생을 청상과부(靑孀寡婦)의 삶을 사시며 남편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곁에 있어도 아무 쓸데없을 것 같은 천덕꾸러기 같은 남편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리운 법이다. 남들처럼 돈도 잘 벌지 못하고 결혼할 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겠다던.. 그 남자 사람의 꼬드김에 빠져 사는 동안, 남편은 그야말로 "이 넘의 웬수!" 처럼 보일 것이다. 반면에 새색시 때 이브처럼.. 아니 그 보다 아름다웠던 아내님이 어느 때는 방귀를 터 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어, 매력이란 1도 없는 '여편네'로 전락하는 것이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지.. (히히 ^^) 


이상과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그래서 사람들은 "곁에 있을 때 잘 좀 하지"라며 속을 박박 긁어놓는다. 삼각주를 가로지르는 두 부자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내려놓은 단상이다. 삼각주 반대편의 리오 네그로 강의 발원지에서는 새하얀 솜털 구름을 머리에 두르고 있다. 우기가 안데스 너머로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꿈같은 풍경이며, 신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이다.




오늘 자(4월 29일)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


신규 확진자 수(14.320명)와 사망자 수(288명)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하향세를 유지하고 있다. (Coronavirus: contagi Covid di oggi in Italia. Dati bollettino del 29 aprile: le regioni Oggi 14.320 nuovi casi e 288 morti.)

La Primavera dell Hornopiren nella Patagonia settentrionale del CILE
il 29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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