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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03. 2021

자운영과 어머니

#4 지리산 계곡 함양 산자락에 봄이 오시면

자운영(紫雲英) 꽃 속에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어린 나를 등에 업고 다니며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을까.. 아이가 한 둘도 아니고 7남매나 되는 종갓집에서 육아는 물론 살림살이 전부를 도맡아 하셨으니 손이 멀쩡할 수가 없다. 이웃 사람들은 그런 어머니를 철인이라 불렀다. 여장부라 불렀다. 어머니는 그런 칭찬에 그저 씩 웃고 마셨다. 나는 그때마다 부끄러웠다. 



손가락 마디는 발레리나의 발가락처럼 울퉁불퉁.. 어쩌다 어머니의 손을 잡아보면 나무 조각을 만지는 듯 거칠었다. 그런 어머니께선 사시는 동안 불평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어쩌다 "여자의 팔자는 그런 거란다"며 자위하는 모습이 전부였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께서 쉬시는 모습 조차 목격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부엌을 오가시거니 장독대를 넘나 들었다. 그리고 한의를 하신 아버지의 일을 돕기도 하고 주사기 소독도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떤 때는 간단한 종기 수술과 상처를 꿰매는 일도 도우셨다. 그 바쁘신 중에 동네의 아이를 받는 산파까지 겸했다. 아침을 먹고 나면 곧바로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다시 저녁시간.. 거기에 종갓집의 제삿날까지 챙겨야 했고, 명절 때는 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셨다. 철없을 때 어머니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 어머니께서 한밤중에 조용한 다락방에서 입시 공부를 하고 있는 나를 찾아오셨다. 어머니 손에는 뚝배기가 들려있었다.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하고 있는 나를 위해 삼계탕을 끓이신 것이다. 그리고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시며 쉿~ 하고 말씀하셨다. 형제들 몰래 내게 주시는 특식이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서울에 살았고 바쁘게 지냈다. 그 사이 아이들도 무럭무럭 커 갔다. 그런 어느 날 비보가 날아들었다. 어머니가 풍을 맞아 쓰러진 것이다. 이때부터 집안은 비상이 걸렸다. 



다행인지 아버지께서 응급조치(비방)를 잘하셔서 목숨을 건졌으나, 한쪽이 불편한 반신불수의 삶을 살아가실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이때부터 지팡이를 짚고 가까운 곳을 산책하시곤 했다. 아버지께선 모든 것을 접으시고 어머니를 위해 간호를 시작했다. 부산에서 가까운 낙동강변 원동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이때부터 집안의 형제들은 교대로 어머니를 모시는 일을 계속했다. 그 기간이 무려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는 형제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어느 날 어머니를 뵙기 위해 원동으로 향했다. 나는 형제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자주 찾아뵙지 못해 형제들에게 늘 미안했다. 



그동안 어머니의 건강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산책할 수 있는 거리도 짧아지고 말은 점점 더 어눌해져 갔다. 당신의 의지와 달리 혀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종국에는 말씀을 거의 못하시고 빙그레 웃으시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신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서 어머니를 뵙고 나면 집 밖으로 나가 몰래 눈물을 훔쳤다. 



집에서 가까운 원동 들에는 자운영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에 어머니께선 당신의 몸과 사투를 벌이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거동이 불편해진 어머니를 등에 업고 자운영 꽃밭을 함께 거닐고 싶었다. 어머니께선 손을 흔드셨으나 내가 등을 내밀어 어머니를 업었다. 그리고 벌판 가득 핀 논둑을 따라 어머니와 꽃구경을 나간 것이다. 



내가 어머니를 등에 업은 건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머니는 등에 업혀 모르실 테지만 자운영 꽃밭을 거니는 내내 눈시울은 자운영꽃을 닮았다. 어머니는 좋아하시며 중얼중얼하셨다. 따로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리 없다. 당신께서는 "아들아, 고맙구나"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어머니의 몸무게가 천근도 더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무게는 내가 지은 불효막급한 죄업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를 등에 한 번 업어본 얼마 후 어머니는 파란만장한 삶을 접으시고 77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어가셨다. 나는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다. 급히 어머니를 모신 장례식장에서 만난 어머니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차가운 이마에 입술을 대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올렸다. 


당신을 공원묘지에 안장하던 날 생전 처음으로 목놓아 울었다. 산골짜기에는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화우들과 함께 지리산 자락으로 스케치 여행을 다녀오면서.. 함양 상림숲 곁에 있는 연지에서 만난 자운영꽃이 불쑥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소낙비가 주룩주룩 내렸으면 좋으련만.. 오늘 아침은 그런 날이다. 


Quando arriva la primavera nella valle del monte JIRISAN
il 03 Magg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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