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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04. 2021

돌아오지 않는 화려한 봄나들이

#9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의 봄맞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다고 해도 감흥은 전혀 다른 법이지..!!



   서기 2021년 5월 3일(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하니와 함께한 화려한 봄나들이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세월 참 빠르다. 관련 브런치의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월 27일이었다. 그동안 한 달여의 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는 것이다. 세월은 그 어떤 사람들이라도 그 어떤 시대가 도래한다 할지라도 붙들어 둘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시간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싶은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찰나의 시각이 보물처럼 귀하다. 요즘 나의 형편이 그렇고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하니의 처지가 그러하다. 시간을 돌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돌린 들 당시의 감흥은 전혀 묻어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가 전에 없던 그리움을 부추기는가 하면 삶에 대한 애착심이 그 어느 때 보다 간절한 것이다.



하루하루를 덧 없이 보내는 것이야 말로 용서하지 못할 일 아닌가.. 초저녁에 열어본 사진첩 속에는 천국을 거니는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고, 지옥 같은 코로나 시대가 겹쳐 보이는 것이다. 지구촌이 코로나로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오늘 자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는 처음으로 엄청난 기록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신규 확진자 수(5.948명)와 사망자 수(256명)가 크게 줄어들거나 나아지고 있는 것이다. 전혀 예상 밖의 일이다. (Coronavirus in Italia, il bollettino di oggi 3 maggio5.948 nuovi casi e 256 morti)



돌이며 보니 하루하루가 덧 없이 지나간 것만도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열심히 브런치에 글을 썼고,  이탈리아 보건당국은 목숨을 걸고 사람들의 희생을 막았으며, 시민들은 최선을 다해 방역수칙을 지켰다. 불편함을 무릅쓰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두기를 하는 등의 조치가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는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인도와 브라질 미국 등이 그러하다. 



요즘 지구촌의 코로나 현황을 눈여겨보는 건 다름 아니다. 우리에게 하늘이 허락한 시간 동안 천국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사노라면 슬픔이나 고통의 눈물도 있겠지만, 감동과 기쁨의 눈물도 동시에 주어지는 것이다. 가능하면 전자의 경우는 누구나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것이 운명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일부러 그 같은 상황을 만드는 일은 또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니와 나는 어느 봄날 핏빛 꽃잎과 연둣빛 이파리들이 고목에 피어난 이끼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곳. 봄이 무르익을 대로 익은 빌라 일 벤딸리오(Villa Il Ventaglio)라는 곳을 방문하게 됐다. 이곳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렌체(FIRENZE) 근교의 뷔아 알디니(Via Giovanni Aldini)에 위치한 곳이다. 



이곳에는 5헥타르에 달하는 관목과 숲이 있으며 연못과 잔디로 덮인 정원이 방문객을 편안하게 하는 곳이다. 특히 이맘때 유다 나무의 고목에서 내뿜은 붉디붉은 핏빛 꽃들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어서 황홀경에 빠뜨리는 것이다. 어느 봄날, 하니와 나는 피에솔레로 목적지를 정하고 피렌체 시내 중심에서 천천히 걷다가 우연한 기회에 빌라 일 벤딸리오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반나절 꼬박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다가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조금 전 한 여성이 장의자 위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우리의 몫이 된 것이다. 정원을 한 바퀴 돌라오는 동안 출출했고 약간은 피곤하여 간단한 요기와 더불어 쉬었다 가기로 한 것이다. 



그녀가 주로 앞서 걸었으므로 포스트의 장면들은 따로 연출할 필요가 없었다. 돌아올 수 없거나 돌아오지 않는 화려한 봄나들이는 이렇게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동안 관련 포스트를 돌아보니 꽤 많은 기록이 남아있었다. 정리해 보니 이러했다.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의 봄맞이 발행 글



1. 피렌체, 볕 좋은 어느 봄날

2. 핏빛으로 물든 유다 나무 아래서

3. 피렌체의 명소 미켈란젤로의 언덕

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차장

5. 알록달록한 달걀과 민박 집 구석 구석

6. 피렌체, 감추어진 정원을 걷다

7. 피렌체가 그리워질 때

8. 아름다움은 신(神)의 그림자란다

9. 돌아오지 않는 화려한 봄나들이




돌아오지 않는 화려한 봄나들이




우리가 정원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이슬 이슬 또 어떤 때는 보슬보슬.. 하늘의 먹구름과 비 때문에 정원을 수놓고 있는 유다 나무 꽃은 보다 더 화려하고 진한 색을 내놓았다. 꿈같은 풍경..



시간을 지내 놓고 보니 더더욱 꿈만 같았던 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슬비가 잠시 그친 후 우리는 늦은 간식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장의자에 앉아 하늘을 올려보니 연분홍 보석들이 빼곡하다.



1년에 단 한차례 밖에 볼 수 없는 꽃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얼마나 청아하고 고운지 정원을 거니는 내내 귀를 간지럽혔다. 꽃의 요정과 하늘의 정령들이 머무르고 있는 화려한 정원.. 화려한 봄나들이는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을 돌려놓고 보니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자, 되돌릴 수 없는 화려한 봄나들이였던 것이다. 돌아올 수 없거니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에 알 수 없는 애잔함과 슬픔이 묻어난다. 꽃이 다시 핀다고 한들 그 꽃이 어제의 꽃이 드냐..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화려함 뒤에 머문 애잔함의 그림자가 자꾸만 나를 재촉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기다림에 지친 그녀의 음성지문에 이탈리아는 점점 더 멀어지고 지문의 선도 흐릿하게 다가온다. 코로나 시대의 별리 시간 6개월이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나대로 언제부터인가 운행이 멈춘 자동차만 흘깃 바라볼 뿐이다. 



사노라면 그렇더라.. 더군다나 내게 있어서 독거(獨居)라는 말은 쉽게 용납되지 않는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면 몰라도.. 늘 그림자처럼 동행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그림자를 상실하면, 그 보다 더한 상실감은 어디에 있겠는가.. 차라리 봄나들이에 만난 화려한 풍경이 눈에 띄지만 않았어도 애를 태우지는 않겠지..



소설이나 영화가 개연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겠지만, 우리가 써 내린 흔적들을 뒤돌아 보면 소설이나 영화 속의 주인공을 닮았다. 돌아오지 않는 화려한 봄나들이.. 일부러 연출한 것도 아니고 그저 기록만 했을 뿐인데 필름을 되돌려 보니 한 편의 다큐 작품으로 남았다. 



본문에 대한 이웃 안신영 작가님의 댓글을 인용합니다.


그리움은 끝간데 없이 머물고

촉촉한 이슬비마저 우리의 추억에 머물러

어제의 꽃, 어제의 시간이

오늘과 달라도 마음은 머무름이어라.

진한그리움은 꽃의 정령과 함께 노닐었으니

한겹 한겹 꺼내어 살피는 손길따라

핏빛 꽃잎에 스며든 마음마저 정겨울뿐이라

추억속으로 떠나봄도,

새로이 나타날 미지의 세계.

크나큰 동경은 환하게 피어날 것이라 믿어

또다시 마음 다잡아 봄이어라.



어느덧 4월은 저만치 물러가고 5월이 민낯을 슬그머니 내보이기 시작한 어느 날.. 내 앞에는 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아름다움과 함께 동행했으면 그만이지 왜 자꾸만 뒤돌아 보고 싶은지.. 인간은 참 알 수 없는 동물이다. 참 알 수 없는 생각을 지닌 신의 창조물이다. 참 알 수 없는 추억을 만드는 신이다.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을 영상으로 돌아보니 그 시절이 더욱 그립다. 불과 3년 전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영상, 돌아오지 않는 화려한 봄나들이



La primavera fiorentina del Rinascimento_FIRENZE
il 03 Magg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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