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의 봄맞이
궁금하다. 신은 어디에 계실까..?!!
연재 포스트(피렌체가 그리워질 때) 중에서
농경사회에서는 농작물 때문에 하늘을 바라봤지만 현대사회에서는 하늘이 흩뿌리는 비가 노래가 되고 시가 되었으며 문학이 된 것이랄까..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땐 그렇게 처연하고 슬프게 들렸던 노래가 점차.. 점차 가슴을 울리지 못하는 것이다. 노래가 유행을 뒤따르지 못했던지 감성이 메말랐던지 둘 중에 하나 아니면 안 청춘의 현주소일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의 날씨는 여러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태양계의 작고 아름다운 행성 지구에 찾아든 얄미운 녀석 때문에 사람들의 일상이 거의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누려왔던 문명사회의 단물이 하나둘씩 말라가고 있는 현상이 생겨서..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랫말처럼 뭔가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배어나는 것이다. 마치 이별의 전주곡처럼 낮이든 밤이든 무시로 찾아드는 그리움이 코로나 시대의 한 현상인 것일까..
서기 2021년 4월 21일 아침(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화창한 날씨를 보이고 있다. 얼마나 화창한지 눈이 부시다. 날씨는 끝내주게 화창한데 아침부터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잊을만하면 한 대씩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시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매우 위급한 환자가 생겼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구급차의 진가는 갈수록 퇴색되었다. 코로나 시대가 만든 나쁜 습관에 길들여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삐요삐요하면서 요란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이틀 전에 이렇게 썼다.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신규 확진자 수(12.074명)와 사망자 수(390명)가 이틀 전 보다 조금 더 올라간 것이다. (Covid Italia, bollettino di oggi 20 aprile: 12.074 nuovi casi e 390 morti: Campania (1.750 contagi), Lombardia (1.670) e Puglia (1.180) Giù ricoveri e terapie intensive)
이럴 때 신(神)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곳은 피렌체, 감추어진 정원을 걷다 편에서 미리 소개해 드린 바 핏빛 꽃잎과 연둣빛 이파리들이 고목에 피어난 이끼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곳. 봄이 무르익을 대로 익은 이곳의 명칭은 빌라 일 벤딸리오(Villa Il Ventaglio)라는 곳이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렌체(FIRENZE) 근교의 뷔아 알디니(Via Giovanni Aldini)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요즘 나의 브런치에서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코로나'이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도배하고 있는 것처럼 나의 브런치까지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코로나는 신의 영역 바깥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와 신앙심이 무색하기 때문인 것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신이 인간을 버리지 않았다면.. 등등 종교의 기원과 사람들이 의지하는 종교를 두루 살펴보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사람들을 서로 다투게 만드는 묘한 것이자 사람들을 외눈박이로 만드는 선과 악의 묘약이 든 것 같다. 그러니까 나의 주장 사실을 그냥 재밌게 봐주시기 바란다.
하니와 함께 죽기 전에 한 번 꼭 살아보고 싶었던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는 우리의 소원을 이룬 곳이다. 피렌체서 둥지를 틀고 살아본 것이다. 이 포스트에 등장하는 풍경들은 그때 만났던 것으로 피렌체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피렌체의 모습은 주로 도시 중심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주도인 피렌체 근교의 아름다움을 잘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또 관광차 짧은 일정으로 다녀가면 차창밖의 풍경을 보는 듯 휙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아무튼 나는 피렌체를 '미켈란젤로의 도시'로 고쳐 부른다. 르네상스를 일군 수많은 예술가들 중에 당신이 유독 눈에 띄는 것이며, 그는 그림이나 조각 건축 등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과 달랐다.
그의 일화에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미켈란젤로의 유년기와 소년기는 아버지가 친족들이 우려할만할 정도로 한 곳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의 이런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을 피렌체 공국의 공무원으로 만들고 싶었다. 괜히 예술 운운하면서 깝죽대다가 밥도 못 먹을 형편에 취할까 봐 내심 걱정이 된 것이다. 그러나 끝내 그의 고집을 꺽지 못하자 하늘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피렌체의 유명한 화가로부터 그림 수업을 받으면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 보이며, 당시 피렌체를 장악하고 있던 메디치가가 그를 후원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죽을 때까지 당신이 사랑한 조각과 미술과 그림 등 불세출의 명작을 남기게 된 것이다. 만약 그가 당신의 출세를 위한 생업으로 전전했다면 그저 평범한 화가나 조각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남달랐으며 예술가의 진정한 모습인 '창조의 세계'를 가슴에 안고 살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 누가 대리석 속에 갇혀있는 천사를 발견했겠는가 말이다. 그는 그 천사를 온전하게 구출해 내고 싶었던 것이다. 조물주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을 당신이 해내게 된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예술혼으로 신의 세계를 재연해낸 것이랄까..
사람들이 종교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피할 수 없는 운명 때문이며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그 이유라 할 수 있다. 그 본보기를 보여준 사람이 예수님이다. 이른바 하느님의 아들도 죽는다는 사실을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보여준 것이다. 그런 한편 당신의 삶을 통해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란 것이다.
신앙의 목적 중에 구원은 죽음을 초월하는 일이 담겨 있다. 당신이 믿는 신으로 하여금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고자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세세토록 살아남고 싶은 마음이 신앙심의 근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과정에는 통과의례가 반드시 행해지게 된다. 먼저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 담을 쌓아야 하고 그다음에 새로운 세상에 부합하는 전환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특정 종교의 조직에 부합되는 통합의 절차를 거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특정 종교의 교인이 되려면 이런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종교인이 되는 것이다. 사이비 교주도 별로 다를 바 없다. 어쩌면 타에 의한 강제적 절차가 종교의 통과의례인 것이다. 그에 비해 불교는 자발적 경향이 짙다. 아니 자발적이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자기 의사에 반하는 절차가 따른다면, 후자의 경우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절차를 거치는 것이랄까..
그렇다면 그들이 믿는 신앙의 대상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하늘에 법당에 성황당에 산신각에 무당집에 로마에 그리스에.. 이른바 하느님의 실체는 모호한 것이다. 보다 과학적인 종교이든 기록에 따르는 종교든 나무를 믿던 동물과 돌을 숭배하든 신앙의 대상이 불분명한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속에서 천사를 구출해낸 작업이 위대하고 신의 대리인처럼 여겨지는 게 그냥 된 게 아니다. 신이 그에게 허락한 일을 대리인으로 행하며 불세출의 예술가로 거듭나게 만든 것이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서 조각을 잘한다고 해서 글을 잘 쓴다고 해서 사진을 잘 찍는다고 해서 그들 전부를 일러 예술가라고 말하거나 스스로 예술가를 자칭한다면 그 사람이 예술가일까..
또 특정 종교를 열심히 믿고 따른다고 해서 모두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내놓고 보니 그런 일은 특정 종교에 통과의례를 겪은 다음부터 그 종교를 지키는 신자에 불과했다. 나의 필요에 따라 행한 신앙심이 어느덧 종교의 맹신자가 되어있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면 "너나 잘하세요"라며 신앙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인가부터 남미 최초 노벨문학상 수장자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Gabriela Mistral)의 <예술가의 십계명>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성직자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니며 스님도 아닌 문학가였으며 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런 그녀가 교만해지기 쉽고 두려움에 떨며 자칫 우울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을 향해 신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다. 그저 마음속에 있던 신을 직접 눈으로 느끼게 해 준 사건(?)이 예술가의 십계명 중 첫째 계명에 드러나 보인 것이다. 이랬지..
예술가의 십계명 _가브리엘라 미스뜨랄
첫째, 우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둘째, 무신론적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와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를 섬기라.
셋째, 아름다움을 감각의 미끼로 주지 말고 정신의 자연식으로 주어라.
넷째, 방종이나 허영을 위한 구실로 삼지 말고 신성한 연습으로 삼아라.
다섯째, 잔치에서 너의 작품을 찾지도 말 것이며 가져가지도 말라. 아름다움은 동정성이며 잔치에 있는 작품은 동정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너의 가슴속에서 너의 노래로 끌어올려라. 그러면 너의 가슴이 너를 정화할 것이다.
일곱째, 너의 아름다움은 자비라고 불릴 것이며 인간의 가슴을 기쁘게 해 줄 것이다.
여덟째, 한 어린아이가 잉태되듯이 네 가슴속 피로 작품을 남겨라.
아홉째, 아름다움은 너에게 졸림을 주는 아편이 아니고 너를 활동하게 하는 명포 도주다.
열째, 모든 창조물 중에서 너는 수줍어할 것이다. 너의 창조물은 너의 꿈 보다 열등했으며 동시에 경이로운 신의 꿈인 자연보다도 열등하기 때문이다.
4월이 더 무르익을 수도 없을 만치 아름다운 계절이다. 어디를 가도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다. 이맘때 누구든지 당신의 가슴에 아름다움이 안기기만 하면 신을 품게 되는 것이다. 특정 종교에 입문한 신앙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신이 안긴 것이며 천국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신은 요란한 사람을 통해 강림하는 게 아니라 미켈란젤로나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처럼 소박한 사람들을 통해 큰 깨달음을 안겨주는 것이다. 이분들이 진정한 신앙인이자 예술가들이다.
La primavera fiorentina del Rinascimento_FIRENZE
il 21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