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남반구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피렌의 봄
사노라면 인과응보의 매우 간단한 법칙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때도 있지..?!!
연재 포스트(해넘이가 펼치는 마법의 향연) 중에서
이렇게 싸돌아 다니다가 숙소로 돌아가면 숙소의 주인 내외가 난로 곁에서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두 사람의 표정에는 "뭐 볼 게 있다고 저렇게 싸돌아 다니는가" 싶은 표정이 묻어난다. 그들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늘 봐 왔던 풍경에 너무 값싸게 길들여진 것인지.. 목수일을 하는 바깥양반이 집으로 귀가하는 즉시 난로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마법은 그런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평범해 보이는 일들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신기하고 재밌는 법이다. 세상을 사노라면 쉽게 길들여지는 것과 길들여지지 않는 일들이 생긴다. 쉽게 길들여진다고 해서 친근감이 오래도록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후자의 경우가 생겨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의 인연은 달님과 해님의 조화와 마법으로 행불행을 결정하는 게 아닐까..
하루 두 차례.. 해 질 녘이 되면 이 세상에서 전혀 만나지 못한 진풍경이 갯가 삼각주에 펼쳐지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이런 풍경을 설명하면 믿기거나 상상이 가능할까..
서기 2021년 4월 21일 저녁나절(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사진첩을 열었다. 파타고니아 여행의 첫 번째 관문이자 차마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삐렌 마을의 봄 풍경을 펼쳐놓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생전 이런 풍경을 처음 만났으며, 하니와 나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바닷가를 서성거리거나 썰물 때의 오르노삐렌 삼각주를 다녀오곤 했다.
파타고니아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통과의례를 경험한 특별한 여행지였다. 우리는 조물주가 무대장치를 해놓고 스스로 연출하는 마법 속에 빠져든 것이다. 그때 인과응보의 매우 간단한 법칙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어느 날 우리에게 찾아든 것이다. 먼 나라 여행지에 발을 들여놓을 때, 여행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라고나 할까.. 그 과정을 뒤돌아 보기로 한다.
포스트에 삽입된 여행사진들은 촬영순서대로 편집되었다. 오르노삐렌 삼각주에 썰물 때가 되면 삼각주 위로 마차가 등장한다. 마차에는 부자(父子) 두 사람이 타고 있다. 처음에는 이들을 잘 몰랐지만 이곳에 머무는 동안 두 사람은 삼각주 한쪽 작은 오두막 집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홀아비와 아들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터전은 삼각주였는데 그들은 썰물 때 리오 네그로 강과 리오 블랑꼬 강에서 떠내려온 나무를 채집했다. 그 나무들을 오두막집으로 날라 땔감으로 만들어 마을에 내다 파는 것이다. 또 밀물 때가 되면 안데스 산기슭이나 강가에 나가 땔감을 구해오곤 했다.
두 부자를 알게 된 것은 우리가 삼각주를 가로질러 하이킹을 떠나면서 친해진 것이다. 우리가 여러 번 삼각주를 다녔으므로 만날 때마다 인사를 건네며 가까워졌는데.. 아버지보다 아들내미의 표정이 매우 밝았다. 자료사진에 등장한 마차의 구조를 잘 살펴봐 주시기 바란다. 말 한필이 끄는 마차의 구조는 자동차 바퀴에 판 스프링(충격 흡수용 지지대)을 올려놓고 그 위에 짐칸을 만들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채집한 목재들을 짐칸에 실어 운반하는 것이다. 마차의 바퀴와 판 스프링의 높이가 높은 이유는 썰물 때 강바닥에 드러난 굵은 돌 위로 잘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삼각주의 모래 개펄에서는 별 문제가 없지만, 강을 건널 때는 강바닥의 돌 때문에 큰 충격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게 우리에게 닥친 통과의례의 시작일 줄 꿈에도 몰랐다. 우리는 어느 날 숙소에서 안데스산 자락 아래에 위치한 리오 블랑꼬 강까지 하이킹 겸 소풍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 마차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곳에는 무릎 이상까지 차오르는 샛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강을 건너기 위해 "마차에 태워달라"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흔쾌히 승낙을 하며 우리는 마차 위로 올라 강을 건너고 다시 내리게 됐다. 마차가 생각보다 많이 덜컹거렸지만 이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잠시 후였다. 소풍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강변에서 마차를 기다렸다.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강물에 손을 담갔더니 얼음을 풀어놓은 듯 차가웠다. 신발을 벗고 걷기가 망설여졌다.
그때 저만치서 마차가 다시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마차를 보니 짐칸 꼭대기까지 땔감이 가득했다. 다시 한번 더 부탁을 했다.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텅 빈 짐칸이 아니라 땔감 위에 엎드려야 탈 수 있는 형편이었다. 하니와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땔감 위에 자리 잡았다.
자리를 잡자마자 마부는 즉시 "이럇!" 하며 말을 재촉했다. 말은 힘이 얼마나 센지 아름드리 바위돌과 자갈을 거침없이 통과했다. 마차가 마구 흔들렸다. 마차 꼭대기 위의 엉거주춤한 자세가 허물러 뜨리기 직전으로 위험을 느꼈다. 샛강 폭은 10미터 남짓했지만 100미터처럼 느껴질 정도로 위험을 느낀 것이다. 나는 그 짧은 시간에 "그만! 그만! 마차를 좀 세워주세요"라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하니가 그런 나를 '무슨 일인가' 하고 흘깃 살폈다. 마차는 강을 건너자마자 즉시 정지했다. 부자는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웃음 속에는 "마차를 처음 타는 겁쟁이 같다"는 생각이 그들의 표정에 묻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잠시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운 것일까..
내가 마차 위에서 소리를 지르던 그 순간에 누군가 나의 허리를 잘라내는 듯한 혹은 척추 속으로 기다란 침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엄습해 왔던 것이다. 강을 건너자마자 엉거주춤한 자세로 마차에서 내려 허리춤을 매만지며 "고맙다"라고 인사를 건넨 나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희한한 일은 그다음이었다. 마차에 내리자마자 통증이 단박에 사라진 것이다.
서두에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말했다. 무슨 일이든 문제가 발생하거나 좋은 일이 생길 때는 반드시 원인이 따르는 법이다. 인과응보란 불교에서 비롯되었다. 당신이 지은 선악의 업보가 죗값이나 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복을 많이 짓고 선업과 공덕을 많이 쌓으면 그만한 대가를 받게 되며, 반대의 경우 악행을 일삼으면 죗값을 치르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일어난 끔찍한 통증은 전자인가 후자인가..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다. 어쩌면 후자 같기도 하고..ㅜ 한국의 인천공항을 떠나 직항 편으로 호주에 도착하고 다시 뉴질랜드를 거쳐 칠레의 산티아고 공항까지 이동하는 데는 비행기가 짐을 날랐다.
그다음부터 나의 등 뒤에는 60리터짜리 배낭과 20리터 이상 되는 보조가방과 하니의 그림도구가 담긴 커다란 짐가방이 들려있었다. 배낭을 앞 뒤로 메고 손에는 짐가방이 들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묵직한 카메라가 어깨에 가로질러 매달려있는 것이다. 상상이 가시는가..ㅜ 거의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무게가 나의 척추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르노삐렌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별 탈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을 떠날 때 숙소에서 배낭에 짐을 챙겨 넣으며 허리를 굽히는데.. 허리가 삐끗하며 마차 위에서 느꼈던 통증이 재발되는 것이다. 이런 일은 꼬자이께에 도착할 때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지다가 마침내 꼬자이께서 주저앉고 말았던 것이다. 관련 포스트에서 언급한 바 후유증은 대단했다. 거의 한 달 동안 꼼짝도 못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신유의 체험을 하며 지금까지 멀쩡하게 잘 지내는 것이다. 내게 다가온 새로운 세상의 통과의례는 그렇게 지나갔다.
포스트의 여행사진은 통과의례가 진행되던 중에 촬영된 것으로 무리한 강행군이었다. 벌건 대낮에는 쉬엄쉬엄 다닐 법도 한데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싸돌아 다니는 게 일상이 되었던 여정이었다. 이제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를 열어볼 때가 됐다. 나는 포스트를 작성하는 동안 행복하고 끔찍했던 여행의 추억을 소환하며 암울한 코로나 시대를 잊고 사는 것이다.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하니로부터 메신저가 울렸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통화는 1시간은 기본이다. 그동안 잘 먹고 잘 사는지 확인해 보고, 음식은 골고루 잘 먹는지 등에 대해서 통화가 진행된다. 그때 등장하는 이야기 소재가 파타고니아 여행의 추억 등이다. 통화를 하면서 그녀에게 미안했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거나 사진첩을 열어 여행기를 끼적거리면 코로나 시대를 잊을 수 있지만, 그녀의 하루 일과는 생각보다 따분한 것이다. 자나 깨나 이탈리아로 오고 싶은데 아직까지 백신 접종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코로나 상황은 물론 전 세계의 코로나 상황을 통화가 끝날 때쯤 생중계방송을 하는 것이다.
오늘 자 이탈리아의 신규 확진 수(13.844명)와 사망자 수(364명)는 아주 미세한 하향세를 긋고 있지만 여전하다.(Coronavirus, il bollettino di oggi 21 aprile: 13.844 nuovi casi e 364 vittime) 이와 같은 추세라면 자칫 금년 한 해를 다 보낼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만으로 끔찍했던 먼 나라 여행의 통과의례와 코로나 시대가 자꾸만 겹쳐 보인다.
La Primavera dell Hornopiren nella Patagonia settentrionale del CILE
il 21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