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리산 계곡 함양 산자락에 봄이 오시면
나는 기념할 거야 브런치 999와 은하철도 999..?!!
관련 포스트(잃어버린 고향과 기시감(旣視感))중에서
사진첩 속에는 언제쯤 이곳에 와 본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때가 언제였을까.. 싶은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지리산 자락 함양의 한 시냇가에서 막 새싹을 내놓기 시작한 느티나무 고목과.. 나지막한 쓰레트 지붕과 기와지붕을 머리에 인 작은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 희한한 일이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 자꾸만 내 옷자락을 잡아끄는 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을 사람들은 기시감(旣視感, 데자뷔, Déjà Vu )이라고 표현했다. 기시감이란, 처음 보는 대상이나, 처음 겪는 일을 마치 이전에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을 말한다고 정의해 놓고 있다. 그러니까 당시 내가 겪고 있던 느낌은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이란 말일까..
내가 살고 있는 현세대에서는 그럴 수 있을 거 같지만 까마득히 오래 전의 기시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싶은 것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풍경이나 이곳을 바라보며 느낀 어른들에 대한 생각이 그런 것이다. 나의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기억은 그렇다 쳐도 오래 전의 일이 소환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는 이틀 전에 발행한 브런치의 글(수채화 여행,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에 남긴 이웃분들의 생각(댓글)에 동조하고 나섰다.
서기 2021년 4월 22일 저녁나절(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바를레타에는 하루 종일 보슬비가 오락가락하셨다. 빗방울이 진눈깨비처럼 한 두 방울씩 날리더니 여우비처럼 보슬 부슬 그리고 추적추적 지 맘대로 오락가락하시더니 해가 저물자 아드리아해의 보석 바를레타는 어느샌가 흠뻑 젖었다.
나도 바빴다. 우산도 없이 몇 방울의 비를 맞아가며 도시를 가로질러 산책 겸 장을 봐 온 것이다. 혹시나 하고 장에 들른 이유는 딸기 때문이었다. (입덧을 하는 것도 아닌데 딸기는 웰케 땡기는 거야.. ^^) 장 보러 가는 마음은 꼭 응가 보러 가는 맘과 비슷하다.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 다르다는 말과 닮았다는 말이다.
장에 가기 전 "딸기만 사 와야지"하고 마음먹었지만 결국 딸기는 기본 대파와 배와 키위와 빵까지.. 양손 가득 장을 봐온 것이다. 이렇게 장을 봐오면 코로나 시대엔 평소보다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하게 된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땀이 삐질삐질.. 샤워를 하고 있는데 메신저가 울렸다.
희한한 일이지. 내가 샤워를 하고 있거나 밥을 먹는 시간을 어떻게 알았는지 삐리리리리 메신저가 울리는 것이다. 그냥 신호만 울리데 놔둘까.. 싶다가도 하니에게 조금이라도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샤워실에서 나와 메신저에 대답한다. 물론 홀라당..(상상금지..ㅋ) 그리고 "응, 샤워 중이야"하고 대답하면 "알써"하고 조금 있다가 통화를 하자며 띠릭 끊는다. 그리고 머리를 말리고 몸을 말린 다음 세탁기를 돌린다.
나의 하루 일과는 대략 이렇게 끝나는가 싶지만 다시 휴대폰을 들고 그녀와 통화가 이어진다. 코로나 시대는 나를 수다쟁이로 만든다. 언제부터인가 전화기를 붙들면 그녀가 소리칠 때마다 들리는 메아리처럼 나는 메아리가 되어 당신이 졸릴 때까지 수다 수다..
그 수다 속에는 빠지지 않는 양념이 있다. 한국의 코로나 현황을 보고 받는 즉시 나는 지구촌을 수두(水痘, chicken pox)처럼 물들인 코로나비루스를 중계하며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고 또다시 일깨우는 것이다. 매일 열어보는 코로나 현황표를 보면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 varicella-zoster virus)가 만들어낸 빨간 물집처럼 지구촌은 온통 코로나 19의 확진자 수가 점점이 찍혀있는 것이다.
매일 이들을 살피다 보니 주요 국가들의 현황은 머리에 꼽고 있는 것이다. 불명예 1위 미국부터 인도 브라질 등등.. 먼저 오늘 자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를 살펴보면 신규 확진자 수(16.232명)와 사망자 수( 360명)는 크게 변동이 없다. (Bollettino Covid Italia oggi 22 aprile: 16.232 nuovi casi e 360 morti.) 이탈리아는 여전히 코로나 19 확진 수 10위권(8위)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위 그룹 불명예 3위까지 시선을 돌려보면 끔찍하다. 지난 4월 8일부터 21일까지 집계된 14일 동안 미국의 확진자 수는 941.263명이며 사망자 수는 10.378명이다. 인도는 3.002.200명에 17.795명, 그리고 브라질은 같은 기간 내 929.590명에 40.699명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눈여겨봐야 할 통계수치이다.
유럽은 물론 지구촌이 코로나 때문에 생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그녀와 통화가 길어지면 놀라움과 함께 삶에 대한 애환이 묻어나는 것이다. 통화가 끝날 무렵이면 하루라도 빨리 이탈리아로 돌아가고 싶은 애절함이 묻어나면서, 나의 기나긴 강의가 마침표를 찍으며 종강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가 창궐하는 국가별 특징은 불결하다거나 자유와 방종을 모르는 사회집단이거나 동물성 음식을 주로 섭취한 나라들이더라"라며 당신이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식물성 발효 음식과 봄철 나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며 다독거리는 것이다. 그러면 "졸려, 끄너요!"하고 말한다. 코로나 시대가 만든 참 희한한 일이 매일 되풀이되는 것이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 나타날만한 일이 자고 나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랄까..
이 영화의 작가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에 따르면 "은하철도 999에서 '999'는 미완성을 뜻합니다. 1000은 어른이 된다는 걸 의미하죠.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철이는 저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하철도 999'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은하철도 999의 내용을 브런치에 기록한 건 다름 아니다. 오늘 발행되는 브런치의 글이 어느덧 999회를 맞이한 것이다. 그의 말처럼 999란 수는 미완성을 의미하고, 한 편을 더 쓰면 발행 글이 1000을 의미하므로 어른이 되는 것이랄까.. 영화의 주인공 철이는 마치 어린 왕자처럼 어른이 되기를 싫어하는 느낌이 나와 닮았다. 다시 유년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것이다.
나는 언제쯤 이곳에 와 본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때가 언제였을까 싶은 생각을 하며 동구 밖에서 서성이다. 마을로 들어섰다. 느티나무 목신이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인데 마을은 텅 빈 채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체로 이런 상황에 접하면 저만치서 누렁이가 왈왈거리거나 닭들이 꼬꼬댁거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 1인만 동네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마을이 통째로 봄볕에 졸고자빠진 것이다. 동구 밖에서 서성거릴 때 이 마을이 친근감이 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친근감이 든다는 것은 소통의 결과가 아닐까..
입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파장으로 가능한 소통은 목신으로부터 발현된 듯하다. 당신은 이 마을의 유구한 역사를 모두 꿰차고 있으니 아무 때나 내게 속삭이는 것이다. 그가 동구 밖에서 내 발길을 붙든 것도 간절함이 묻어있었어. 사람들이 대를 이어 이곳에 살아오고 있어도 가슴이 메마르면 냇가의 우물만 오락가락할 뿐인 거야.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 그런 것 같아. 마음으로 봐야 보이는 것이거든.
사람들은 마음에 없는 막연함으로 애정을 표현하곤 하지. 그런데 동구 밖에서 바라본 오래된 느티나무의 목신은 달랐어. 개똥이 점순이 민자 분이 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는 거야. 개똥이가 딱지치기에 눈이 멀었다는 것과, 점순이는 아직 사춘기에 접어들지 못한 촌놈을 꼬드긴 것과, 민자는 엄마 몰래 얼굴에 분을 찍어 바르곤 했지, 분이는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주전자 주둥이로 막걸리를 빨아먹곤 했지. 철수는 김 노인네 복숭아 밭에서 복숭아 서리를 했고.. 히히 ^^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고 목신이 전했다. 그리고 이제 이 아이들은 다 커서 시집가고 장가가고 돈도 벌고 일만 뼈 빠지게 하고 그렇게 지내는 동안 새끼들이 주렁주렁.. 어떤 친구는 마누라 바가지에 또 어떤 친구는 좁쌀영감에 시달린단다. 그중에 이탈리아서 살고 있는 친구도 있어. 그곳은 내가 꿈꾸는 그곳이라 뭐라나..
아무튼 친근감이 든다는 건 소중한 거야. 내가 나의 브런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도 소통의 결과며 이웃들이 만든 기록이야. 친근감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거야. 매일 혼자만의 독백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코로나만큼 끔찍한 일이다. 나는 동구 밖에서 마을을 가로질러 마침내 화우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동안 탱자나무 울타리도 만났고 삐죽하게 새 순을 내놓은 두릅나무도 만났다. 동네 어귀의 돌 틈바구니에서는 여러 무리의 보랏빛 제비꽃도 만났다. 도시에서 만날 수 없거나 잊고 살았던 풍경들.. 어느 봄날 수채화 여행을 떠나 봄의 요정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입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파장으로 가능한 소통.. 그들은 한결같이 나를 좋아했다. (흠.. 좋아했을 걸..! ^^)
"(와글와글)와~아더찌다. ㅋ 안넝하떼요. 아더찌? ^^"
"그래, 반갑구나 아가들아. 안넝? ^^"
나의 브런치는 서기 2019년 3월 31일에 내가 너무 좋아했던 노랫말의 실체란 제목으로 데뷔를 했다. 처녀 발행한 포스트에는 '좋아요'가 달랑 두 개였다. 댓글도 없었다. 다만 누군가 공유(17화)를 해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햇수로 두 해가 흘렀다. 만 2년이 되던 때가 코로나가 득실대던 금년(2021년) 3월 31일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63일을 빼야 한다. 피렌체서 바를레타로 둥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까 22개월 동안 발행한 글이 999회였던 것이다. 따라서 대략 매일 1.5개의 글을 발행한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쓸 때 마음가짐은 글 발행 수를 하루에 하나로 목표로 삼았다. 목표를 초과달성했던 것이다. (쓰담쓰담) 매 끼니를 챙기듯 사는 동안 하니와 나의 삶을 죽을 때까지 기록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기록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오늘 마침내 브런치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999회 글을 발행하며 자축하게 된 것이다.(토닥토닥~) 알파와 오메가(Alfa e Omega).. 나의 시작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웃분들과 브런치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깊은 감사드린다. 꾸벅~
안녕 999, 너는 처음이자 마지막
Quando arriva la primavera nella valle del monte JIRISAN
il 22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