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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1. 2021

잃어버린 고향과 기시감(旣視感)

#2 지리산 계곡 함양 산자락에 봄이 오시면

언제쯤 이곳에 와 본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때가 언제였을까..?!!



관련 포스트(수채화 여행,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중에서



대한민국이 좁아터진 것 같아도 갈 곳은 넘쳐난다. 특히 봄가을이 오시면 전국 방방곡곡의 산과 강 그리고 바닷가는 금수강산의 유명세를 그대로 닮았다. 비록 일제의 수탈이나 전쟁의 흔적이 남았다고 하지만 갈 데는 천지 빼까리인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탈리아에서 느끼는 향수 중에는 이런 풍경이 지배적이다. 지구촌에서 가장 많은 인류문화유산을 가진 이탈리아에 이런 풍경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피렌체서 살 때는 피에솔레(Fiesole)의 작은 골짜기를 흐르는 냇가에서 한국의 봄에 느꼈던 향수를 달래곤 했다. 



그리움을 살살 달랠 뿐이었지.. 울음을 뚝 그치듯 마음에서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한 주일이 새로 시작되는 월요일 오후에 코로나 시대를 달래줄 수 있는 수채화 여행 필름을 찾아 나선 것이다. 
포스트를 준비하는 동안 하니로부터 메신저가 울렸다. 카톡이 까똑까똑 하고 울려야 했지만 피렌체서 그 소중했던 나의 아이폰을 잃어버린 것이다. 처음으로 가슴 아픈 고백을 한다.ㅜ 하니는 내게 "지금 머해"하고 물었다. 그래서 "응, 우리가 다녀왔던 함양의 수채화 여행 풍경을 보고 있어욤"하고 말했다. 그랬더니 " 내 그림 거기(사진첩)에 있는지 좀 봐조욤"하고 말했다. 그때가 그리운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남긴 작품은 기록해 두지 않았다. 당신의 추억이 삼박자를 고루 갖추간 했지만, 지금 그녀와 내게 하니씩 빈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이탈리아에 그녀는 한국에.. 그래서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없다고 했던가.. 어이쿠야!! ㅜ 



나는 화우들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 앞에는 유소년 기를 뚜렷하게 기억해 내는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한 풍경은 봄볕에 졸고 있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어느 산골짜기에 다다르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속이 훤히 다 비치는 맑은 물과.. 



여울목 근처 바위 위에서 분홍빛 꽃을 내놓았던 진달래꽃.. 



지리산 자락 함양의 봄은 나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대나무 숲으로 데려갔다. 대숲은 맑고 향기로운 냄새로 나를 품어주곤 했다. 봄햇살은 자지러지고 나는 대나무를 붙들고 어찌할 줄 모른다. 



대숲 곁에는 도랑물이 졸졸졸.. 시냇물가의 갈대가 바람에 서걱서걱.. 나는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따라 시냇가를 따라 낯선 동네를 배화하고 있는 것이다. 참 희한한 일이다. 언제쯤 이곳에 와 본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때가 언제였을까..



잃어버린 고향과 기시감(旣視感)




   서기 2021년 4월 20일 저녁나절(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화우들과 함께 어느 봄날을 보냈던 사진첩을 열어보고 있다. 요즘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게 있다. 입버릇에는 "참 희한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사진첩을 열면 그곳에 과거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인류문화사가 시작된 이래 각종 문자들과 그림 등 기록들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지만, 인터넷 시대에 전혀 견줄 바 못된다.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되는 인터넷 세상은 과거의 그 어떤 문화와 역사 내지 유명 인물까지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 혜택을 누리는 1인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할 일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 돌아가신 부모님이 나와 우리의 모습을 보신다면 "얘야, 귀신도 화들짝 놀라 자빠질 세상이구나"하고 말씀하실 것 같다. 



브런치를 열어놓고 글을 끼적거리다 보니 내 속에서 부모님의 나지막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어머니 잘 계시지요?"라고 속으로 물으면 "오냐, 잘 있단다."라고 대답하신다. 어머니 곁에서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시고 아버지께선 근엄한 표정으로 씩 웃으신다. 



어른들을 일깨우신 내가 대견스러운 것이다. 비록 육신은 자연계를 등졌지만, 정신체는 내 속에 거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 때나 생각만 하면 그 즉시 나타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참 희한한 세상이다. 그 느낌을 기록할 수 있는 세상이자 나의 브런치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첩 속에는 언제쯤 이곳에 와 본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때가 언제였을까.. 싶은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지리산 자락 함양의 한 시냇가에서 막 새싹을 내놓기 시작한 느티나무 고목과.. 나지막한 쓰레트 지붕과 기와지붕을 머리에 인 작은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 희한한 일이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 자꾸만 내 옷자락을 잡아끄는 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을 사람들은 기시감(旣視感, 데자뷔,  Déjà Vu )이라고 표현했다. 기시감이란, 처음 보는 대상이나, 처음 겪는 일을 마치 이전에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을 말한다고 정의해 놓고 있다. 그러니까 당시 내가 겪고 있던 느낌은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이란 말일까..



기시감(데자뷔)에 대해 위키피디아를 통해 한 발 더 들어가 볼까.. 


데자뷔는 프랑스어로 "이미 본” 이란 뜻으로 최초의 경험인데도 불구하고, 과거에 이와 같은 경험을 경험한 것 같은 착각을 일컫는 말이다. 인간의 뇌는 일상생활에서 엄청난 양의 기억을 저장하는데, 이 엄청난 양의 기억을 저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일상생활에서의 기억을 간략하게 저장하는데, 간략하게 저장된 엄청난 양의 정보는 비슷한 기억이더라도 인간의 뇌는 같은 기억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견해가 있다. 보통 데자뷔 현상을 겪은 사람들은 대부분 꿈속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이것을 데자뷔 현상이라고 한다.



참 똑똑해진 세상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남긴 오감의 기록을 뇌 속의 압축(ZIP) 폴더에 저장했다가 필요하면 파일을 압축하거나 해제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기시감에 대한 기록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 보인다. 물론 나의 생각이다.



내가 살고 있는 현세대에서는 그럴 수 있을 거 같지만 까마득히 오래 전의 기시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싶은 것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풍경이나 이곳을 바라보며 느낀 어른들에 대한 생각이 그런 것이다. 나의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기억은 그렇다 쳐도 오래 전의 일이 소환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는 이틀 전에 발행한 브런치의 글(수채화 여행,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에 남긴 이웃분들의 생각(댓글)에 동조하고 나섰다.



자유로운 콩새 Apr 20. 2021


그동안 작가님의 포스팅을 통하여 감상했던 작품들은 하나같이 황홀하고 우아했습니다. 우아~~ 하는 탄성과 함께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에 입을 담을 수 없었죠. 오늘 아침의 포스팅을 보는 순간 아름답다는 느낌보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울컥한 감정과 함께 "아. 이곳이 내 집"이라는 익숙함과 따뜻함과 편안함이 소름 돋게 마음을 감싸주네요. 그야말로 "정취~~"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우리의 것"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비교해주시니 내 나라의 것이 주는 또 다른 소중함을 알게 되네요. 멋진 교육이고. 멋진 애국인 듯합니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작가님^^



Sarahkang Apr 20. 2021


아 작가님도 그런 느낌이 있으시군요. 저도 캐나다를 동에서 서로. 가로질러가면서 절경을 보면 탄성은 나오기는 하지요. 감동도 느껴지고요. 집에 돌아와 컴 모니터 속에서 보여주는 한국 기행 프로를 보면 장엄하고 거대한 자연을 볼 때와 다른 느낌으로 눈물이 돌지요. 작가님 의 작품 속 경치.. 눈물 나요.



안신영 Apr 20. 2021


우리의 풍경이 오밀조밀한 정겨움이 묻어나지요. 정말 그림 같은 곳이네요. 말 그대로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저 기와집은 정자가 맞나요? 기가 막힌 곳에 자리했네요. 작가님께서도 좋은 자리 찾아서 스케치할 수 있도록.... 안목은 말해서 무엇하리~~~ 작가님~ 매일 사진첩 들여다보시느라 피곤 치는 않으신지요? 잠시 그곳도 무릉도원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언뜻 듭니다. 선계 같습니다. 검사합이다. 오늘도 행복합니다~



관련 브런치에 댓글을 내려주신 이웃분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왔다. 자유로운 콩새 님은 북조선에서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오신 분이고, Sarahkang 님은 서울에서 태어난 후 현재 캐나다에서 살고 계신 분이다. 그리고 안신영 님은 현재 서울에 살고 있고 시댁이었던 부산을 오가시던 분이셨다. 그런 분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전혀 만나보지도 못한 장소를 보며 기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질성을 느끼는 기시감은 이런 것이란 말인가.. 


요즘은 유전자 정보까지 변형(DNA ricombinante (재조합 DNA))시키는 시대가 됐다. 인간의 유전자는 물론 동물이나 식물의 유전자까지 조작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하거나 정체성을 바꾸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간이 조물주의 역할을 하고 싶은 신개념의 바벨탑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재조합된 생물체에도 기시감이 전달될까 싶은 생각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과 현생과 미래 생이 겹쳐 보인다. 전생에 지은 업보를 금생에 돌려받고, 다시 금생에 지은 업보를 미래 생에 되돌려 받는 윤회의 사슬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현재 이탈리아에 살고 있지만 한국의 지리산  골짜기를 생각하는 것도 전생에 지은 업보 때문일까.. 



그 업보 속에 기시감이 압축 폴더처럼 감추어진 것일까 싶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물론 이웃분들이 한 마음으로 아스라한 감정을 가지게 된 것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잃어 비린 고향을 그리워하고 장차 만나게 될 본향을 꿈꾸는 것일까.. 



화우들로부터 점점 멀어진 나는 돌담길 앞에서 자꾸만 서성거렸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언제쯤 이곳에 와 본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때가 언제였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유소년기의 기억을 더듬는 한편 돌담길을 돌아서면 당장이라도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올 것 같고, 할머니가 손자를 맞이하며 두 팔을 벌려 가슴에 품고 싶은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부엌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하얗고 까만 치마저고리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어머니의 환영이 나타나는 것이다. 집 앞에는 우물과 빨래터가 있었지만 이 마을에는 봄볕만 내리쬐고 있었으며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꿈속에서 본 듯한 풍경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나는 돌담길을 돌아서기 전에 꽤 오랫동안 담벼락 아래서 뭉기적이며 서성거렸다. 언제쯤 이곳에 와 본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때가 언제였을까 싶은 생각을 하며 행복했던 유소년기를 자꾸만 떠올리는 것이다. 



서기 2021년 4월 20일 저녁나절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꽤 긴 시간 동안 포스트를 작성할 수 있는 배경에는 코로나 시대가 한몫 거들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지구촌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거나 공포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코로나비루스가 기시감을 일깨운 것이다. 이런 현상을 놓고 '코로나 덕분'이라면 돌들이 날아들겠지.. 얄미운 녀석 ㅜ 



오늘 자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신규 확진자 수(12.074명)와 사망자 수(390명)가 이틀 전 보다 조금 더 올라간 것이다. (Covid Italia, bollettino di oggi 20 aprile: 12.074 nuovi casi e 390 morti: Campania (1.750 contagi), Lombardia (1.670) e Puglia (1.180) Giù ricoveri e terapie intensive) 



미생물의 정체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코로나 또한 기시감을 가지고 있다면 여간 큰일이 아니다. 세상 모든 만물에 기시감이 깃들어 그들의 과거를 기억해 낼 것이다. 그게 천지신명의 조화인가.. 아무튼 초현대 사회에서 이들을 기억해 내고 기록하는 일 또한 놀라운 일이자, 기시감의 또 다른 연습이 시작되는 건 아닌지.. 

누가 그랬는가 '우리 만남은 우연은 아니야'라고 말이다.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하니의 목소리를 참조하면 기분 좋게 체념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 때문에 재회가 점점 더 늦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까이꺼 갈 데까지 가 보라지..!  <계속>


Quando arriva la primavera nella valle del monte JIRISAN
il 20 April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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