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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07. 2021

꽃구경에 숨겨진 비밀

#5 지리산 계곡 함양 산자락에 봄이 오시면

어머니는 그런 분이시다..!!


나의 등에 업힌 어머니(자운영과 어머니) 중에서



집에서 가까운 원동 들에는 자운영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에 어머니께선 당신의 몸과 사투를 벌이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거동이 불편해진 어머니를 등에 업고 자운영 꽃밭을 함께 거닐고 싶었다. 어머니께선 손을 흔드셨으나 내가 등을 내밀어 어머니를 업었다. 그리고 벌판 가득 핀 논둑을 따라 어머니와 꽃구경을 나간 것이다. 



내가 어머니를 등에 업은 건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머니는 등에 업혀 모르실 테지만 자운영 꽃밭을 거니는 내내 눈시울은 자운영꽃을 닮았다. 어머니는 좋아하시며 중얼중얼하셨다. 따로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리 없다. 당신께서는 "아들아, 고맙구나"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어머니의 몸무게가 천근도 더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무게는 내가 지은 불효 막급한 죄업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를 등에 한 번 업어본 얼마 후 어머니는 파란만장한 삶을 접으시고 77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어가셨다. 나는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다. 급히 어머니를 모신 장례식장에서 만난 어머니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차가운 이마에 입술을 대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올렸다. 


꽃구경에 숨겨진 비밀




참 곱기도 하지.. 



봄날이 오는 듯 저만치 사라진 어느 날 산벚 잎이 날려 연지를 덮었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그저 된 게 아니었다. 그렇게 떠들썩하던 봄날은 가고 어느덧 5월 초순에 접어든 것이다. 



장사익의 노래 '꽃구경'에 업힌 어머니


서기 2021년 5월 7일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열어본 사진첩 속에는 산벚꽃 잎이 연지를 덮고 있다. 지난 여정(자운영과 어머니)에 화우들과 함께 지리산 자락으로 스케치 여행을 다녀오다가, 함양 상림숲 곁에 있는 연지에서 자운영꽃을 만나 불쑥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그땐 나의 등에 업힌 어머니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업어본 어머니.. 글을 쓰는 동안 노트북 모니터가 흐릿했다. 그때 포스트에 삽입한 노래는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세상에..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꽃구경

-장사익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하신데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신데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꽃구경을 부른 장사익(張思翼, 1949년~)은 대한민국의 음악가 겸 국악 연주가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심금을 울리는 특유한 창법 때문에 당신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파게 만든다. 그의 목소리에 숨겨진 창법은 한(恨)의 문화로 이름 지어진 우리 민족의 애환을 잘 녹여내고 있다. 꽃구경은 그중 하나이다. 참으로 슬프디 슬픈 노래이자 오래전 살다가신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노랫말을 자세히 한 번 더 들어보면 기가 막힌다.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아들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꽃구경 가자고 하니 어머니는 좋아하신다. 생전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을 것이다. 세상이 온통 꽃으로 뒤덮인 어느 봄날 어머니는 얼마나 좋아했을까..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를 리 없다. 생전 하지 않던 짓을 아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산기슭에 다다르자 혹시나 했던 일이 벌어지고 만다. 꽃구경이 아니라 점점 더 깊은 산중으로 걸어가는 아들..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진다. 늙고 병든 당신을 등에 업고 고려장(高麗葬)을 하러 가는 것이다. 고려장은 고려 시대에 늙고 병든 사람을 지게에 지고 산에 가서 버렸다는 슬픈 전설이다. 꽃구경의 노랫말에 업힌 어머니는 체념을 하고 만다. 그리고 아들이 돌아가는 길을 잃을까 봐 솔잎을 따다가 한 움큼씩 숲길에 흩뿌리는 것이다. 그러자 아들이 울먹이며 이렇게 말한다.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하신데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신데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길이 걱정이구나. 네가 길을 잃을까 걱정이구나.


아들 등에 업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곧 산중에 버려질 어머니는 당신 걱정보다 아들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시다. 새끼를 위해 목숨까지 내주시는 그런 위대한 분이시다. 어느 봄날 스케치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만난 함양 상림숲 곁 연지에는 산벚꽃이 휘날리고 있었다. 연지에는 연밥 모두를 토해낸 빈 쭉정이가 돌미나리와 자운영꽃과 함께 있었다. 


Quando arriva la primavera nella valle del monte JIRISAN
il 07 Magg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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