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05. 2021

피렌체, 봄비 오시던 날

#10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의 봄맞이

어린이 날 집콕하시는 어른이들께..!!



   브런치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풍경은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Fiume arno)의 폰떼 알라 까라이아(Ponte Alla Carraia) 곁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그리고 첫 번째 등장하는 풍경은 끼에사 디 산 프렛디아노 체스뗄로 교회(Chiesa di San Frediano in Cestello)이다. 우리가 피렌체서 살 때 자주 다닌 곳이다. 집에서 가까울 뿐만 아니라 피렌체의 여러 곳을 즐기는 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피렌체를 휘감고 도는 아르노 강에서 강폭이 가장 넓은 곳이며 수중보가 곁에 있다. 피렌체의 다른 장소도 아름답지만 강물에 비친 이곳의 반영이 유독 시선을 끄는 곳이기도 하다. 반영은 주로 아침저녁에 그 모습을 드러내 놓는데 비가 오시는 날은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 중세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3년 전 이맘때 비가 부슬부슬 오시던 날 나는 아르노 강가를 찾았다. 곧 해넘이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강물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이곳은 곧 수위가 매우 줄어들 것이며, 수중보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을씨년스럽게 흉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인간이 만든 건축자재 중 콘크리트는 콜로세움을 만드는 등 가장 쓸모가 많았지만, 피렌체의 아르노 강 위에서는 실용적 가치 외에 심미적 기능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로 물을 가두어 놓은 이맘때 단 한차례 피렌체를 찾은 관광객을 위해 기분 좋은 봉사를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살았던 메디치 예배당(Cappelle Medicee) 바로 앞에서부터 이곳까지 천천히 걸어서 이동한 다음 곧 아르노 강 저편으로 사라질 태양의 해넘이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태양은 먹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먹구름 뒤에 가린 태양은 호시탐탐 구름의 빈자리를 노리며 실낱같은 빛을 아르노 강 위로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강가 석축에 뿌리내린 야생 무화과 나뭇잎에 빗방울이 묻어난다. 이날 내리시던 봄비의 양이 마침맞게 그려져 있다. 우산을 받쳐 들고 천천히 천천히.. 길을 걸으며 해넘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르노 강 상류에 많은 비가 내려 강물이 많이도 불었다. 저 멀리 뽄떼 베끼오(Ponte Vecchio) 다리와 그 너머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이 보인다. 아치를 그리고 있는 좌측의 다리가 조금 전에 지나온 폰떼 알라 까라이아(Ponte Alla Carraia) 다리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피렌체를 빛내주는 몇 개의 다리 중 하나이다.



먹구름이 잔뜩 낀 봄비 오시던 날 하니는 집콕을 하고 어른이 1인이 저녁 산책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는 이런 광경을 볼 수가 없다. 비록 내가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수식으로 바를레타를 미화하고 있지만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에 비길 수가 있겠는가.. 


오늘 자(5일 아침, 현지시각),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는 어제에 이어 하향세를 기록하고 있다. 신규 확진자 수(9.116명)와 사망자 수(305명)의 추이를 보면 눈에 띄게 달라진 성적표이다. 며칠 전(2021.5.1(토))에 주 이탈리아 한국대사관에서 메일이 날아왔다. 



적색경보 발령을 받은 스위스 접경 발레 다오스타(Valle d'Aosta) 주만 제외하면, 대부분 황색이나 노란색 경보이다. 눈에 띄는 건 내가 살고 있는 뿔리아 주도 어느덧 황색경보 발령(Zona Arancione (Orange Zone)이 내려진 것이다. 사르데냐 시칠리아도 같은 경보에 처했다. 이런 통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싸돌아 다니지 말고 집콕하시라"는 말이다. 시방.. 집콕하면서 피렌체의 봄비 오시던 날을 열어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침내 아르노 강의 수중보가 있는 폰떼 아메리고 베스푸치(Ponte Amerigo Vespucci ) 다리 곁까지 진출했다. 우리가 학교에서 학습한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이탈리아의 탐험가이며 출생지가 피렌체이다. 그는 1497년에 첫 탐험을 나섰으며 1499년에 그들이 처음 만난 신대륙의 북위 15°지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오늘날 브라질에 도착했다. 남북미를 가리키는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그의 이름 '아메리고'에서 딴 것이라 전한다. 



그런 그를 기리기 위해 피렌체 곳곳에는 그의 이름을 딴 다리와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한 것이다. 말라리아(Malaria) 또는 학질(瘧疾)은 학질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으로, 매년 2억에서 3억 명의 사람이 감염되고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위험한 질병이라고 말한다. 



말라리아는 이탈리아어로 나쁜(또는 미친)의 뜻을 가진 'Mal'과 공기를 뜻하는 'aria'가 결합한 용어이다. 문제는 나쁜 공기가 아니라 병을 전염하는 매개체가 모기라는 점이다. 말라리아는 그 작은 생명체를 타고 인간을 괴롭히는 것이다. 이 전염병은 주로 더운 지방에서 발명하는 것으로,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사망 원인이 말라리아라 함으로 그의 탐험 여정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유럽은 말라리아 발생지역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지역이기 때문이다. 



나는 꽤 자주 아메리고 베스푸치 다리를 건너 다녔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이곳의 한 리스또란떼와 가까운 곳(Porta romana)에 나의 숙소가 있었기 때문이며, 근처의 경관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수중보는 계절에 따라 서로 다른 풍경을 보이는데 봄비가 장맛비처럼 오실 때는 앙증맞은 풀꽃들이 뷰파인더를 유혹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 좋은 것도 없고 다 나쁜 법도 없는 것일까.. 



나는 머지않은 시간에 해가 저물면 하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곳에는 저녁을 지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가 이제나 저제나 시간을 계수할 것이다. 나는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가야 한다. 우리는 사는 동안 누구에게나 되돌아갈 곳이 있어서 평안을 느끼는 것이다. 



만약 돌아갈 길이나 집이 없다면 상실감은 크게 도드라지거나 아예 체념을 하는 방랑자처럼 살아갈 것이다. 아니.. 오히려 방랑자는 당신의 삶을 즐길 것이다. 이때만 해도 우리가 살았던 메디치 예배당까지 걸어만 가면 됐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니는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고 나 혼자 이른 아침에 바를레타의 집에서 브런치를 열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때 만난 풍경들이 봄비 오시는 아르노 강의 5월 초의 모습인 것이다. 나는 뽄떼 아메리고 베스푸치 다리 곁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아메리고 베스푸치.. 그는 어느 날 말라리아로 사망에 이르렀다. 그는 전염병에 감염되어 죽음에 이른 것인데..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멀쩡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그저 귀중한 시간을 쪼개어 우리네 삶을 돌아볼 뿐이다.



세상에는 나와 같은 어른이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어쩌면 코로나 시대가 더 반가울지도 모를 일이다. 남들 모두 손에 손에 손잡고 아이들과 놀러 다닐 때 집콕하고 있는 건 이유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언제인가 성장을 할 테고.. 다시 그 아이들이 성장하면 어른이가 되어 아이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때 돌아갈 곳이 없다면 뒤돌아 볼 추억이라도 있어야겠지.. 나의 마음은 아로노 강가를 서성이고 있다. 


La primavera fiorentina del Rinascimento_FIRENZE
il 05 Magg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와 누나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