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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11. 2021

날자 한 번만더 날자꾸나

#13 남반구 칠레의 북부 파타고니아 오르노피렌의 봄

밀물을 기다리며 애태우는 썰물의 현장..!!


   서기 2021년 5월 10일 저녁(현지시각), 노트북을 켜고 열어본 사진첩 속에는 북부 파타고니아의 오르느삐렌의 삼각주가 연초록으로 알록달록 물들어 있다. 썰물 때는 고기잡이 배들도 정중동의 모습으로 비스듬히 자빠져있다.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 뒤에는 안타까운 심정이 오롯이 묻어있다. 연초록의 해조류는 밀물이 들지 않으면 곧 말라죽을 것이며 작은 고기잡이 배 또한 쓸모를 잃게 된다. 그렇지만 이를 지켜보는 나는 이들이 애태우는 장면이 너무 아름다운 것이다. 세상은 이렇듯 늘 상대적이다. 누군가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랄까.



사진첩을 열어놓고 잠시 망설이다가 '날개 꺾인 천재'를 떠올렸다. 누구나 한 번쯤을 읽어봤거나 들어봤을 그 천재의 이름은 27살에 요절한 이상(李箱: 1910~1937)이다. 그의 소설 <날개>를 통해 무기력한 당신은 물론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의 자화상이 슬프게 묻어난다. 



이 작품의 배경은 일제 강점기의 서울의 거리에 18가구가 살고 있는 33번지 유곽(遊廓)이다. 유곽의 의미와 함께 배경에 등장하는 18이라는 숫자의 의미도 발칙하다. 왜 하필이면 18가구였을까.. 우리는 종종 일이 잘 안 풀리면 이 숫자를 떠올리며 내뱉는다. 그런 반면 하필이면 33번지였을까.. 



18가구에 살고 있던 작가 '나'는 다시 날고 싶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33의 의미는 희망을 상징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관세음보살은 자비로 중생을 괴로움을 구하는 보살이며, 33 관음(변화신)이라 말한다. 새해 보신각 타종을 33번 울리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18과 33.. 그냥 지나치면 별 것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발칙하고 슬픈 수이기도 하며 희망의 수이기도 한 것이다.. 



날개 속의 '나'는 어느 날 무심코 집으로 돌아와 안방 문을 열었는데 그는 못 볼 풍경을 보고 말았던 것이다. 당신의 아내가 외간 남자와 나쁜 짓(?)을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소설이기 망정이지 실제로 이런 일을 만난 남자 사람 1인이라면, 그 어떤 짓을 할지도 모를 불륜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볼 뿐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식민지 시대를 살고 있는 그에게 남은 것은 실업자 신세.. 그나마 그를 먹여 살리는 건 아내였기 때문이었다. 그저 술 시중이나 들 줄 알았던 아내는 몸까지 팔아 연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아내는 업무(?)를 위해 '나'를 볕이 들지 않는 안방 곁에 가두어 두고 아스피린을 먹이게 된다. 



온기가 없는 방에서 생활하며 감기가 든 그는 아스피린을 먹고 난 다음 곧 잠이 들곤 했다. 그때마다 그를 짓누르던 고통이 사라지고 편안하게 잠이 드는 것이다. 어떤 날은 안방과 격리된 얇은 합판으로 격리된 벽의 틈새로 아내의 업무를 숨죽이며 지켜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스피린이 필요했다. 아내는 밤낮으로 외출을 하고 밤에는 손님을 데려 오는 일이 예사였다.



침묵의 대가였을까.. 아내는 당신의 방에 들러 은화 한 잎씩 벙어리 저금통에 넣어 주는 것이다. 아내의 업무를 위한 배려였다. 그는 벙어리 저금통에 든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5원으로 바꾸어 아내에게 건넸다. 5원을 아내의 손에 쥐어 주던 날 아내의 방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아스피린으로 알고 먹은 약이 수면제 '아달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어느 건물 옥상에 올라간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못 볼 풍경이 그를 사지로 몰아간 것이랄까.. 그곳에서 그는 이렇게 외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식민시대와 자본주의의 모습이 아내의 방에서 연출되고 있던 조선의 슬픈 자화상이 이상으로부터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김유정과 친하게 지냈던 이상은 일본으로 건너가 문학활동을 했지만 아무도 그를 눈여겨 봐주지 않았다. 이상과 김유정은 서로 병고와 가난으로 고통을 겪자 동반 자살하기로 약속했으나 김유정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전한다. 이상은 1937년 동경 제대 부속 병원에서 폐결핵 악화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27세 때였다. 




간밤에 꿈을 꾸었다. 꿈속의 우리 집에는 친구들이 잔뜩 모여들었다. 곧 술잔치가 벌어질 모습이었다. 친구들 중에는 동창생들이 주로 나타났다. 아파트 거실은 좁아 보였다. 커다란 상이 거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친구들이 빙 둘러앉았다. 그리고 어떤 음식이 상 위에 차려질지 궁금해하며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음식 배달을 시키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아래층에서 집을 찾지 못하는 친구를 데리러 가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가운데 음식은 결코 상 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런 잠시 후 친구들은 외식을 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자고 했다. 꿈은 이런 식이다. 밑도 끝도 없고 앞 뒤 가리지도 않는다. 나는 술잔치가 금세 벌어질 그 순간에 친구들이 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을 앞에 두고 옹기종기 모인 장소에는 '거리 지키기'는 보이지도 않았다. 



꿈속에서 조차 코로나를 의식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일제강점기 시대와 비교해 보고 있는 것이다. 하니가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삶의 주체는 나였지만 나는 무기력한 1인일 뿐인 것이다. 소설 속의 '나'와 비교는 안 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터넷을 열어 코로나 현황을 살피는 일뿐인 것이다. 매일 출처불명의 아스피린을 먹고 잠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기적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늘 자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는 괄목할만하다. 신규 확진자 수(5.080명)와 사망자 수(198명)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Coronavirus Italia, il bollettino di oggi 10 maggio: 5.080 nuovi casi e 198 morti) 이탈리아 보건당국의 공격적인 코로나 검사가 역할을 한 것일까.. 하향세를 긋던 코로나 성적표가 마침내 하니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의 수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남미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Región de Los Lagos) 북부 파타고니아에 위치한 오르노삐렌의 삼각주에 봄이 찾아왔다. 봄은 주로 밀물에 갇혀있다가 썰물 때가 되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때 삼각주는 연초록빛 세상을 내놓는다. 밀물 때 숨죽이며 갇혀 지내다가 볕을 만나면서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색깔.. 그들만의 세상이 나의 뷰파인더에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페친의 작가 한 분이 나의 페북에 올려둔 당시의 풍경에 대해 "자연색 맞나요"라고 질문했다. 이렇게 대답했다.



자연의 색 맞나요?


네, 맞습니다. 제가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추상화는 따지고 보면 극사실주의와 별로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보다 정밀하게 그리는 것과 마음에 담아둔 실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차이라고나 할까요. 인간이 무엇을 상상하던지 근원은 자연으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행을 통해 그 모습을 숱하게 봐 왔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세상의 모습이자 자연으로부터 발현된 것이지요. 마음은 그런 것이더라고요. 저의 브런치에서는 이미 공개된 풍경입니다. 자연의 색 맞습니다. ^^


Sì, è giusto. C'è un motivo per cui mi piace il tuo lavoro. Penso che l'astrazione sia molto diversa dal realismo drammatico. Si tratta di una differenza tra disegnare oggetti più precisi e rappresentare le entità della mente così come sono. Credo che ciò che l'uomo immagina, è la natura. L'ho visto molto bene durante i miei viaggi. Il tuo lavoro è l'immagine del mondo e la natura. La mente era così. Il mio brunch è un paesaggio già aperto. Il colore della natura è giusto. ^^




우리는 가끔씩 평범한 사실 등에 대해 호기심을 보일 때가 있다. 당신이 보고 자란 환경이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불운의 천재 작가 이상도 김유정도 당신이 처한 어찌할 수 없는 환경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참 안타까운 일은 코로나 시대에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나의 의지와 의사와 무관하게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실.. 오르노삐렌 삼각주 위를 수놓은 연초록 해조류가 다시 밀물을 기다리는 것처럼 애태우는 시간들이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도 나아지고 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La Primavera dell Hornopiren nella Patagonia settentrionale del CILE
il 11  Magg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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