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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05. 2021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춘향제(春香祭)에서 만난 살풀이춤

슬프도록 아름다운 살풀이춤에 빠져들다!!



   서기 2021년 6월 4일 저녁나절(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사진첩을 열었다. 그곳에는 해마다 남원에서 열리는 춘향제의 모습이 오롯이 남아있었다. 한국에 살면서 춘향제를 다녀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동참자는 나를 포함 K대학 출판부에 있는 아우님과 우리 문화재를 연구하는 모 신문사 편집국장이었던 형님이었다. 

비가 오신 다음날이어서 광한루의 연지는 흙탕물로 변해 있었지만 방장정(方丈亭)을 둘러싼 숲은 짙은 녹음으로 변해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춘향제의 이모저모를 담은 사진첩을 열어 본 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까닭을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일종의 그리움이라고나 할까..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하니와 통화를 끝으로 춘향제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늦어도 7월 중에는 백신 접종을 끝마칠 것이며, 그때쯤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어느덧 그 시간이 반년을 훌쩍 더 넘기고 있는 것이다. 기다림.. 그 끄트머리에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문화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만난 춘향제 행사 중에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장면이 있었다. 춘향제(春香祭)에서 만난 살풀이춤이었다. 살풀이춤을 만나려면 일부러 공연장을 찾아 나서야 했지만, 이날은 취재차 곁에서 그 장면을 지켜봤다. 하얀 소복(素服)에 하얀 천이 광한루원에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살풀이춤.. 



영상, 남원 춘향제에서 만난 살풀이춤_FESTA DI CHUNHYANG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살풀이춤은 살풀이 가락에 맞추어 추는 춤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해의 나쁜 운을 풀기 위해 벌였던 굿판에서 무당이 나쁜 기운(액厄 또는 살煞)을 풀기 위해 추는 즉흥적인 춤을 말한다. 다른 이름으로 '도살풀이 춤’ 또는 '허튼춤’이라고도 한다. 이날 살풀이춤은 춘향의 넋을 기리고자 추는 춤이었다.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회자되는 남원의 광한루.. 그곳에서 잊힌 우리 문화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세월 참 많이 변했다. 한 때 우리 선조님들의 가슴에 오롯이 새겨졌던 살풀이춤이 외래 귀신(?)이 등장하면서부터 점차 이 땅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살풀이춤을 연구한 첨부한 논문(살풀이춤의 미적 특징)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종교학에서는 이 세상을 성과 속의 이분 체계로 나누어 본다. 신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리는 왕과, 왕의 통치권을 받들어 정사를 베푸는 관은 '성'의 세계에 속한다. 또 신령을 매개하는 무당 같은 제사자도 '성'의 세계에 속한다. '성'의 세계에 속하는 사람이 사는 집(왕궁, 관가, 신당 등)이나 그들이 입는 옷(용포, 관복, 무당 옷)은 울긋불긋한 인공 색으로 구별하여 공경하거나 경원하거나 두려워했다. 천명사상이 지배하던 중세에는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나면, 임금이나 문무백관이 빛깔 있는 옷을 벗고 하얀 소복 차림을 했는데, 이는 성계(聖界)에 대한 속계(俗界)의 공경이나 두려 움을 나타내기 위한 방편으로써의 백의(白衣)의 개연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속'의 공간이나, '속'의 시간에서는 '성'과 구별하기 위한 채색을 배제한 자연색을 취했다.


살풀이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 첨부한 논문을 따라 가 보시기 바란다.  우리 문화를 더 잘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얄팍한 신앙심으로 선무당이 되어 사람 잡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어떤 종교에서는 미신=적으로 간주하는 한편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일로 가르치는 일이 일어난 지 꽤 오래됐다. 나는 이날 살풀이 춤에 대한 느낌을 나의 블로그에 이렇게 기록해 두고 있었다.


(등장)사뿐 사~뿐...


춘향제향이 거행되는 행사장은 숨소리 하나 안 들린다. 버선발은 허공에 뜬 듯 치맛자락은 나비의 날갯짓을 닮았다.


살풀이 가락과 장단에 맞춘 살풀이 춤사위...


춘향의 넋이 환생한 것일까...


참 고운 맵씨의 춤꾼이 

사부작사부작 흔들어대는 흰 수건이

영혼의 깨우는 듯, 

그녀가 올려다보면 

하늘을...

내려다보면 땅을...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살풀이장단에 맞추어 형식 없이 즉흥적으로 보여주는 살풀이춤...


그녀의 춤사위를 보고 있자니 

가슴속 깊숙한 곳에 웅크린 트라우마가 눈 녹듯 사라질 듯하다.


내 속에서 우는 아이...

내 속에서 아파 울던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치유되는 과정을 보는 듯한

참 아름답고 고귀한 춤사위가 

춘향제향을 수놓고 있는 것이다.


춘향이 환생하고

나비가 되어

나풀나풀 흐느적이는 곳


살풀이춤이 진행되는 동안 

광한루원은 숨이 멎고

하얀 천이 춤사위를 따라

영혼이 자유롭게 춤을 춘다.


누가 당신의 자유를 구속하는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도 구속하면 안 될 자유로운 영혼.. 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눈멀었던 시간들...


한 남자를 죽도록 사랑하고.. 


한 여인을 죽도록 사랑한 광한루의 사랑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에 열광하는 동안

성춘향과 이몽룡은 우리로부터 너무 먼 데 있었지..


돌아오라!...

돌아와 주오!...

나의 사랑 나의 민족 나의 조국이여!...



이날 행사를 지켜보고 계신 제주와 어르신 등이 금줄 바깥에서 살풀이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도 이분들과 관란객들은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성춘향과 이몽룡의 아름다운 사랑을 가슴에 품지 않았을까.. 사랑가(판소리 춘향가 中)를 열어보니 사랑놀음이 자지러진다.


[아니리] 이애 춘향아  우리 업고도 한번 놀아 보자.  도련님도 참, 건넌방 어머니가 아시면  어쩔려고 그러시요.  얘야 너희 어머니께서는  소싯적에 우리보다 훨씬  더 했다고 허드라. 그러니 잔말말고  없고도 한번 놀아 보자. [중중모리]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이히 내사랑이로다.  아매도 내 사랑아.  네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 봉지 떼뜨리고  강능백청을 따르르르 부어  씨는 발라 버리고  붉은점 움푹 떠  반간진수로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당동지지루지허니 외가지  단참외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시금털털 개살구  작은 이도령 서는디 먹으랴느냐.  저리가거라 뒷태를 보자  이리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아매도 내사랑아. [아니리] 이애 춘향아  나도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날 좀 업어다오.  아니 도련님은  저를 가벼워 업었지만  저는 도련님이 무거워서  어찌 업는단 말이요.  그러기에 내가 널 다려  날 무겁게 업어 달라더냐.  내 양팔만 네 어께위에 얹어놓고  징검징검 걸어다니다 보면  그 속에 좋은 뜻이 있느니라. [중중모리] 둥둥둥 내낭군  오호 둥둥 내낭군  도련님을 업고 보니.  좋을 호 자가 절로나  부용작약의 모란화  탐화봉접이 좋을씨고  소상통정칠백리  일생 보아도 좋을 호로구나  둥둥둥 오호 둥둥 내낭군.  사랑 사랑 사랑 내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사랑이야  이히 내사랑이로다  설마 둥둥 내사랑이야.  달아달아 밝은달아  네 아무리 바쁘어도  중천에 멈춰있어  내일 날 오지 말고  백년여일 이 밤 같이  이모양 이대로  늙지 말게 허여다오  사랑이로구나 내사랑이야  오호 둥둥 내사랑..



이 행사를 오작교 너머 방장정에서 지켜보는 시민들도 있었다. 오작교.. 오작교(烏鵲橋)는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다리라는 뜻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해마다 칠석(七夕)이 돌아오시면 견우와 직녀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다가 해후(邂逅)하는 것이다. 직녀는 하니.. 견우는 나..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던 코로나가 춘향제향의 살풀이로 저만치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서 모여라 까마귀들아 까치들아..!  


La nostra è una buona cosa_Festival di Chunhyang, Namwon COREA
il 04 Giugn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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