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06. 2021

어떤 유혹(誘惑)

-식물계의 보석 산수국

식물의 팔색조에 빠지다!!



   서기 2021년 6월 5일 저녁나절(현지시각),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자동차 소리와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뒤섞여 왁자지껄 하다. 코로나 시대의 주말 풍경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끌벅쩍한 것이다. 오늘자 이탈리아 코로나 성적표를 보니 신규 확진자 수(2.436명)와 사망자 수(57명)가 나아지고 있는 가운데(Coronavirus Italia, il bollettino di oggi 5 giugno: 2.436 i nuovi casi di Covid e 57 i morti).. 코로나 19가 창궐할 때와 매우 다른 모습이다. 



특히 사망자 수는 눈여겨봐야 할 정도이다. 이 같은 통계치를 다 알고 있는 시민들의 외출이었을까.. 시민들은 통계에 드러난 수에 현혹된 것 같은 표정들이다. 하루 수만 명에 이르던 확진자 수와 수백수천 명에 이르던 사망자 수가 대략 두어 달만에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마구 유혹하는 것이다. 



유혹(誘惑).. 유혹이라는 말이 좋게 사용될 때도 있는 것이랄까. 시민들이 거리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가운데 나는 서울에 살 때 만난 산수국 꽃에 유혹당하고 있는 것이다.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산수국의 보석같이 영롱한 꽃잎 색깔에서 황홀경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누구나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산수국의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식물계의 팔색조라 불러야 마땅한 산수국은 서울 강남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 한편에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기뻐하다가 노발대발하면서 슬퍼 하는 등 만남의 인연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때 당신의 눈에 띈 사람이 평생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고, 원수처럼 지낼 수도 있다. 그리고 떨어지면 무슨 일이라도 날 듯 찰거머리처럼 붙어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신의 그림자에 포근이 안겨서 행복을 말하고, 미움의 고통을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불행을 말하게 될 것이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행불행을 말하는 가운데.. 6월 어느 날 사람들의 눈을 피해(?) 형형색색 천태만상의 꽃봉오리를 내놓고 나를 기다린 것이라면 과장되었을까..



산수국(山水菊_Hydrangea Serrata)은 진짜 꽃과 가짜 꽃이 함께 어우러져 벌 나비를 헷갈리게 유혹하는 식물이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로 한방에서는 토상산(土常山)이란 약재명으로 알려졌다. 쓰임새도 많아서 관상용, 식용, 약용, 차, 밀원용으로 쓰인다. 여름 한 철, 서울 강남에 위치한 대모산 자락과 인근에서 소리 소문 없이 피고 지던 청보랏빛 산수국의 꽃잎은 신비스러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꽃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산수국의 꽃 색깔은 다양하다. 한국의 자원식물 이야기에 따르면, 처음에 흰색으로 피었다가 푸른색이나 분홍색으로 변한다. 꽃 색깔이 다양한 이유는 꽃 색소가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이란다. 꽃이 피기 시작할 때는 연녹색이 도는 흰색으로 시작하여, 꽃이 피는 동안 안토시아닌이 합성되면서 푸른색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꽃이 활짝 필 때는 붉은색이 된다. 그런가 하면 꽃의 색깔은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산성 토양에서는 알루미늄이 이온화되어 뿌리에 흡수되면 안토시아닌과 결합하여 푸른색을 나타낸다. 그러나 알칼리성인 흙에서는 알루미늄이 부족해 안토시아닌과 결합이 안 돼 꽃 색깔은 붉은색이 된다는 것. 


식물의 세계를 화학방정식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이들의 성격을 참조하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를 유혹하여 황홀경이 빠뜨릴 목적이라면.. 그런 유혹쯤은 기분 좋게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꽃에는 항상 꽃말과 전설 등이 꼽사리 끼어 따라다닌다. 수국의 꽃말은 "변덕, 고집, 당신은 차갑다, 변하기 쉬운 마음"이란다. 인간계와 식물계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전설은 또 어떻고.. 산수국에는 슬픈 전설이 서려 있었다. 


"옛날 어느 마을의 꽃을 좋아하는 처녀는 고을 원님의 아들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원님의 아들은 처녀에게 꽃나무 한 그루를 선물했다. 그런데 이 꽃나무가 처음엔 연자주색 꽃이 피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이상하게도 하늘색으로 변했고, 나중엔 연분홍이 되었다. 이런 현상이 불길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원님의 아들이 죽고 말았다. 그 뒤로 혼인만 하면 신랑들이 죽어 나가 다섯 명이나 죽고 말았다. 이에 처녀는 꽃을 원망할 마음도 없이 그대로 집을 떠났다. 처녀가 떠난 집은 비바람에 허물어지고 잡초가 무성했지만 해마다 그 꽃은 다시 피어났는데 그것이 산수국이다."



그래서 그럴까.. 나의 뷰파인더에 담긴 산수국은 오래되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아파트 단지 한편에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일부러 산수국을 피해 다닐 리는 없는데.. 전설에 따르면 한 번 만나는 순간 유혹에 넘어가고 황홀경에 빠져드는 마법을 가진 꽃이 아닌가.. 마치 메두사(Medusa (mitologia))의 얼굴 같은 생김새로 사람을 현혹하는 것이다. 



모처럼 시민들의 활기찬 모습이 느껴지는 주말이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니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신을 꼬드긴 그 무엇인가를 만났을 게 틀림없다. 코로나 시대에 열어본 산수국의 요염한 자태가 그리움을 만든다. 그녀도 한 때는 이런 모습이었지.. 지금까지..! ^^


I fiori che sbocciano in questi giorni_Hydrangea macrophylla
il 05 Giugn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