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Jun 11. 2021

원시인들이 즐겨먹던 요리

-양념에 길들여진 현대인을 위한 삼겹살 구이

원시인과 현대인들의 밥상,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요즘 집 앞 현관에 놓아기르는 멘따(Mentha)가 처음과 달리 부쩍 키가 자랐다. 얼마 전에 허리춤까지 자랐던 녀석들이 가슴높이에 이른 것이다. 그 사이 바닥에서 놀던 아이들은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더니 어느 날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앙상하고 가느다란 줄기만 내놓고 있는 것이다. 녀석들은 오며 가며 나와 눈을 마주치며 좋아라 했었다. 

그때가 봄부터 유월이 다가오실 때까지 였으며 오늘 남아있던 친구들은 앙증맞은 꽃봉오리를 내놓고 있다. 봄에는 토실토실 파릇파릇하던 녀석들이 몰라보게 변한 것이다. 아마도 멀지 않은 시간에 작별을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어서 기록을 남겼다. 그동안 나와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자 입맛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식재료였다. 그리고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이틀 전에 먹었던 삼겹살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이곳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삼겹살 가격은 1kg에 7유로로 착하디 착하다. 우리 돈으로 대략 9천 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므로, 우리나라의 삼겹살 마니아들은 "이게 뭥미?"하는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이날 바를레타 재래시장 앞에 위치한 단골 마첼레리아(Macelleria, 정육점)에서 삼겹살 두께를 두껍게(대략 2~2.5cm 정도) 썰어달라고 주문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원시인들이 즐겨멱던 요리를 만들 참이었다. 이 요리를 잘 이해하기 위해 하니와 함께 했던 남미 파타고니아 여행의 자료를 먼저 살피는 게 순서인 것 같다.



원시인들이 즐겨먹던 요리




천연색으로 붉게 물든 평원과 언덕들이 펼쳐진 이곳은 남미 아르헨티나의 산타크루즈에 위치한 뻬리또 모레노(Perito Moreno (Santa Cruz)) 인근의 풍경이다. 어느 날 우리는 택시를 빌려 타고 뻬리또 모레노에서 꾸에바 데 라스 마노스(Cueva de las Manos, 원시인이 그린 손바다가 그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때 택시 안에서 바깥으로 펼쳐진 풍경을 기록해 두지 않았더라면 곤란한 일을 당했을 것이다. 원시인들이 그린 손바닥 그림은 대략 9,300년 전부터 13,000년 전에(vissuto fra i 9.300 e i 13.000 anni fa) 그려졌던 것이므로 이 기록이 없었다면 자칫 설명이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달리는 차 속에서 바라본 풍경들은 이동할 때마다 비현실적인 풍경을 내놓고 나의 뷰파인더를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시인들이 살았던 리오 삐뚜라스(Il Rio Pinturas) 강을 둘러싼 계곡의 동굴에서 발견된 손바닥 그림의 안료(顔料, Pigmento)가, 택시 안에서 바깥으로 펼쳐진 풍경에서 채취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구릉지대에서 나타난 붉은 색소로 보아 철분이 많이 섞인 흙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다른 색소들은 그에 걸맞은 미네랄 성분이 침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원시인들이 살았던 동굴에서 바라본 리오 삐뚜라스 계곡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들은 날만 새면 이곳을 바라봤을 것이며 잠들 때까지 계곡에서 눈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집이 있어 절이 있어..!! 오직 그들의 삶 가운데서 위안을 주는 풍경은 이 계곡이 유일한 것이다. 



남자 사람들은 사냥을 나가고 동굴에 남겨진 여자 사람은 아이들과 함께 동굴에서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고 현지 가이드가 설명을 했다. 그때 그려진 그림이 그 유명한 손바닥 그림인 것이다. 위 자료사진 우측이 원시인들이 살았던 동굴이며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방책으로 막아두었다. 이곳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며, 원시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세계의 몇 안 되는 곳이다. 



그들은 잡아온 동물들을 불에 구워 먹었는데 이때 고깃덩어리로부터 흘러나온 기름에 채집해 온 붉은 흙(미네랄)을 섞어서 물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입안에 물감을 품고 구멍이 뚫린 뼛조각 사이로 분무(스프레이)를 하며 손바닥 그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손바닥 그림을 완성했는데 동굴 벽면에 가득했다. 통과~!(여행기에서 보다 상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양념에 길들여진 현대인을 위한 삼겹살 구이




삼겹살 구이를 앞에 두고 설명이 장황한 이유를 눈치채셨는지 모르겠다. 남미의 평원에는 비꾸냐(Vicugna), 라마(Lama glama) 등 낙타과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들이 원시인들의 표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녀석들을 사냥하려면 동굴집에서부터 멀리 이동해야 했을 것이며, 어떤 때는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았을 것이다. 녀석들은 여간 날쌘 동물이 아니어서 원시인들이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누..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면 먼 거리를 죽도록 고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 그들이 발견한 게 미네랄이었으며 짭짤한 소금이었던 것. 그들은 식재료를 자연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요즘처럼 향신료나 후추가 있어.. 김치가 있어.. 냄비가 있어.. 고추장이 있어.. 쌀이나 밀가루가 있었겠어..ㅜ 



그들은 오직 소금 하나(혹은 미네랄 성분 섭취)로 고깃덩이를 먹었을 것으로 쉽게 짐작된다. 지금 보고 계신 삼겹살 구이는 최소한 9300년 전에 먹었던 원시인들의 음식을 생각하며, 이탈리아 요리 철학을 덧입힌 것이다. 삼겹살은 프라이팬에 적당히 잘 굽고 그 위에 소금만 적당하게 흩뿌린 것이다. 그게 전부이다. 



삼겹살을 이처럼 요리하면 어떤 맛이 날까.. 이게 현대 이탈리아 요리가 추구하고 있는 요리 철학이자 미식가들을 불러 모으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여기에 갖은양념을 바르면.. 본래의 삼겹살 맛은 양념을 처바르거나 주물러댄 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념을 먹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현대인의 입맛은 그렇게 양념이나 향신료 맛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시라 온통 양념 투성이인 것을 알 수 있다. 



마무리한다. 삼겹살을 두껍게 썬 이유는 계곡이나 평원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거기에 집 현관에서 자라고 있는 멘따로 장식했다. 녀석을 먹기도 하지만 원시인들이 살았던 까마득한 옛날을 추억하는데 그만이다. 곧 먼 여행에 접어들 멘따를 기억하며 동시에, 오래전 척박한 환경에서 살았던 인류의 매우 단출한 식단을 생각하는 것이다. 손바닥 그림이 그려진 동굴의 벽에는 아이들과 함께 놀았던 엄마와 사냥을 나간 아빠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있다. 있었다.


Un piatto che gli uomini primitivi amavano_BARLETTA
il 10 Giugn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사진 한 장에 담은 주방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