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간으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어느 날 내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내가 사는 곳은 동태평양의 많은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칠레라는 나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중심에서 외딴곳에 산다. 그곳은 안데스 자락의 깊은 골짜기이자 인적이 매우 드문 곳. 어쩌다 우리 집 앞을 지나는 사람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이웃 몇 사람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생전 처음 보는 생김새의 두 사람이 우리 집 앞을 지나쳤다. 사람들은 이럴 두고 부부라고 불렀는데 참 다정해 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왜 이 낯선 골짜기를 두리번거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집 안에서 코를 골고 있는 주인 비온디(가명) 부부의 삶을 통해서 인간의 겉모습은 달라도 하는 일은 별로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가까운 라스 꼰데스로 비온디와 함께 쇼핑을 나가면 그곳에서 많은 인간들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나를 닮은 녀석들이 가슴 줄에 매달려 그들의 주인과 함께 쇼핑에 동참하고 있었다. 또 아이들은 마냥 신나서 날뛰며 엄마의 꾸지람을 듣기도 했는데 내가 비온디로부터 듣느 꾸지람과 비교가 안 됐다. 어쩌다 내가 인간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들은 왜 이모양인가'하고 꾸짖으며 "가만있어!"하고 말했다.
그러면 꼼짝 못 하고 그 자리에 냉큼 주저앉아 죽는시늉을 하곤 했는데 백화점에서 본 아이들은 달랐다. 비욘디뿐만 아니라 그곳에 쇼핑을 나온 아줌마들은 아이들이 잘못을 해도 "예야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다. 이렇게 해 보렴"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곧잘 따라 했다. 엄마는 그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볼에 뽀뽀를 하고 가슴에 꼭 품어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개 인생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한 번쯤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인간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멀리 안데스 자락을 보며 상념에 젖었다 만난 부부의 나라에 태어나면 어떨까 싶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 나라에 가면 저 멀리 지구촌 곳곳을 여행 다닐 수도 있고 전혀 낯선 골짜기를 방문하며 여행의 묘미가 어떤 것인지도 알겠지.
또 우리가 먹는 다 말라 터진 개밥이 아니라 근사하게 접시 위에 올려진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서 비욘디가 내게 행했던 손짓을 따라 애완동물을 마음대로 부려먹고 싶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인간세상에 존재하는 근사한 자동차를 운전해 내가 가 보고 싶은 곳곳을 가 보고 싶었다. 나는 그동안 비욘디가 매 준 목줄 때문에 안데스 골짜기만 바라보고 살았던 게 아닌가. 참 한심했다. 이런 개 같은 삶이 어디 또 있을까.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을 비욘디가 알아챘는지 산티아고 시내에 사는 한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통화 내용에 따르면 산티아고가 서울보다 삶의 질이 훨씬 낫다고 핬다. 그런데 훨씬 낫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과연 내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바람직한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2019년 기준 한국이란 나라에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두 가지 유형을 선택해야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흙수저 혹은 금수저로 구별했다. 이를 테면 금수저란 부잣집에서 태어나는 것이고 흙수저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는 운명 같은 것. 이건 하늘이 내린 운명이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그다음부터 일어나는 차마 믿기지 않은 사실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젖을 떼고 대략 4년 만에 유아원 같은 데를 다니고 부모로부터 떨어져 지낸단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유치원이란 곳을 들어가는가 하면, 유치원 생활이 끝날 때쯤이면 학교에 입학하고 이 과정은 무려 20년 가까이 이어진다고 한다.
개 나이 10년을 감안하면 무려 140년을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고 하므로 이때부터 고민이 생겼다. 과연 인간으로 태어나는 게 옳은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좋은 지 좋을지, 그냥 개 같은 삶을 연명하는 게 좋은 지 등에 대해 개 헷갈리므로 여러분들의 조언을 기다린다. 과연 내 삶은 이대로가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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