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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l 24. 2021

그녀가 일러준 발칙한 녀석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의 해돋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서기 2021년 7월 23일 오전 04시 30분,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어둠을 가르고 집을 나선다. 가로등 불빛이 노르스름 하게 기둥에 달라붙어 있다. 도심을 관통하는 동안 길냥이 들이 자동차 옆에서 나의 눈치를 본다. 녀석들은 아직도 밤중인데 웬일인가 싶은지 눈알에 불이 켜져 있다. 나는 짐짓 모른 채 하고 앞만 보며 걷는다. 이날은 해돋이 시간이 오전 05시 41분이었으므로 아드리아해가 보이는 언덕에 이르러도 여전히 하늘은 깜깜하다. 7월 23일..



이날 아침은 몸의 상태가 좋았던지 10분 더 빨리 일어나 길을 재촉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청소부 삽비나가 저만치 멀리서 휴지 등 오물을 줍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오전 5시가 되었음에도 길 위에는 새까만 어둠의 알갱이들이 내려앉아 있었다. 휴대폰을 열어 프레시를 켜고 바쁘게 걸았다. 너무 이른 시각이었는지 통행하는 차량은 단 두 대 뿐이었다. 바를레타 사구와 아드리아해를 가리는 도로 위는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더 빨리 걸었다.



오늘 아침의 몸 상태는 가뿐했다. 최근에 처음으로 하니와 함께 걸었던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 해변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그곳은 평소 목적지(반화점) 보다 대략 2.5킬로미터가 더 먼 곳이었다. 아울러 그곳의 바닷가 풍경은 바를레타의 바닷가보다 사뭇 달랐다. 인적이 드물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없는 곳. 평원과 바다가 잘 어우러지는 곳이다. 한적한 곳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고 싶은 분위기 넘치는 곳이었다. 하니가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기 전 우리는 이곳을 여러 번 찾았다.



나는 이미 경계를 너머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 해변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직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바닷가.. 저 멀리 수평선 위로 해돋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해돋이 시간이 늦어지고 집에서 떠나는 시간은 일정하므로 보다 먼 곳에서 해돋이를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적이 없는 바닷가..



나는 바닷가에서 누군가 살치 해 놓은 조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변에 꽂아둔 철근에 빨강 파랑의 천 조각을 걸어두었다. 음과 양.. 해님과 달님.. 높고 낮음.. 강하고 약함.. 사랑과 별리.. 행복과 불행.. 등등 서로 대비되는 현상들이 두 천 조각에 묻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



해변에는 노루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그리고 모래밭 깊숙한 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작품을 만들어 두었다. 그들의 존재감이 바닷가에 오롯이 남아있는 것이며, 밤 사이 인간들을 피해 남겨둔 흔적들이다.



어느덧 해돋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바닷가 생물들이 저마다 삶의 방편으로 흔적을 남긴 것처럼 나는 뷰파인더로 세상을 만나고 있다. 해돋이..



장엄한 해돋이.. 귀여운 해돋이.. 아름다운 해돋이.. 신비로운 해돋이.. 신비스러운 해돋이 앞에서 당신을 만나기 위한 몸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드리아해 바닷가에는 용왕님의 나라에서 숲을 이루던 파래가 뭍으로 소풍을 나왔다. 소풍..



나는 이날 아침 소풍을 나와 아무도 흔적을 남기지 않은 바닷가 사구 앞에서 요정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곳 나처럼 해님을 만날 것이며 장차 본향으로 돌아갈 꿈을 꿀 것이다. 



영상, BARLETTA,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그녀가 일러준 발칙한 녀석




오늘 아침 해돋이를 만난 직후 마르게리따 디 사보이아 해변을 느긋하게 걸었다. 그녀를 생각하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서는 길..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건강한 목소리가 들렸다. 반가웠다. 한국은 찜통더위인데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밝았다. 해가 두둥실 떠올랐지만 이곳 해변은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최근 바를레타의 아침 날씨는 영상 18도씨를 가리키고 있는데 한국의 수은주는 37도씨를 가리키고 있단다. 그런데 날씨보다 더 따끈한 소식은 잠시 후에 그녀의 증언으로 시작됐다.



그녀가 일러준 발칙한 녀석




수평선 위로 꽃단장한 발그레한 해님이 얼굴을 내밀었다. 괜히 기분 좋아하는 남자 사람 1인..



나는 언제인가부터 해님이 좋아졌다. 해님을 사랑하고 있다. 해님이 없으면 못 살 것 같다. 해님 때문에 행복해하는 것이다. 평생 이런 기분 처음이라고 재차 삼차 수차례 브런치에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인가 평범함을 잃게 되면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 진리를 해님이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은 그런 기분이 더욱더 진하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에게 전화를 하며 아드리아해의 파도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미주알고주알.. 전화기를 붙들면 그녀 곁에서 일어난 일들이 생중계되면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참 재밌는(?) 일이 그녀 곁에서 일어니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가까운 산으로 아침 운동을 나간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이상한 보고가 날아들었다. 매일 아침 산에서 만나는 이상한 남자가 한 사람 있다는 것이다. 나이도 지긋했다. 어쩌다 그 남자가 모자를 벗으면 속 알 머리가 없어 보이고 몇 올 안 되는 하얀 머리카락이 눈에 띈다고 했다.(그걸 왜 봐..? ㅜ ) 그 남자는 이른바 '노인네'였다. 대략 70세는 되어 보인다고 했다. 그 남자가 등산로 한편에 앉아 그녀를 기다린다는 거.. 오늘 아침 그 노인네가 그녀에게 말을 걸아왔다고 했다.



"당신이 올 때까지 1시간은 더 기다렸어요..^^"



"오모나(깜딱이야)!!.. 왜 그러세효!!ㅜ "


그녀는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못 본체 길을 계속 걸었다고 했다. 녀석은 그녀가 늘 혼자 산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관찰했을까.. 세상을 살다 보면 별 넘 다 본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그녀의 차림을 물어봤다. 빨간 바지에 어수룩한 아웃도어를 입었을 뿐이라고 했다. 정작 당신을 그리워히고 있는 남자 사람 1인은 이역만리에 있는데.. 1시간을 기다리면서 빨간 바지를 기다렸다고라고라.. 발칙한 녀석! 내가 한국에 없기 천만다행인 줄 알아야 할 것. 끝! 씩~^^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Un vecchio cattivo uomo
il 23 Lugl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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