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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Jul 29. 2021

나를 애태우시는 그님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의 해돋이

그님과 눈을 마주치면서 그제사 나는 씩 웃으며 돌아섰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그님..?!!



   서기 2021년 7월 28일 오전 04시 30분, 어김없이 아침운동이 시작됐다. 이날 해돋이 시간은 05시 46분이었다. 매일 1분씩 늦추어지는 해돋이 시간 때문에 가로등이 켜져 있는 산책로를 벗어나면 깜깜하다. 바를레타의 사구에 길에 심어진 가로수길에 조그만 빛들이 스며들 때쯤이면 오전 05시를 지난다. 카메라 프레시를 작동하지 않아도 될 시간.. 그때부터 나의 시선은 바다로 향해있다. 



가끔씩 바를레타 평원 위에 솟아있는 달님을 바라본다. 달님 곁에는 샛별이 반짝이고 있다. 목적지 왼쪽에는 달님이 얼마 후 오른쪽으로 해님이 얼굴을 내밀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지금 시간은 오후 3시를 지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수은주는 조금 전 37도씨를 가리키고 있다가 36도씨로 떨어졌다.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기 때문에 온 몸에 땀이 쏭 글 쏭 글.. 이런 느낌을 좋아할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새벽 4시에 눈을 뜨고 일어나면 맨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바닷가로 나가는 일이다. 도시는 여전히 뜨거운 바람을 안고 있지만 종려나무 가로수길 2.5km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호흡이 달라진다.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이 잠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기분이 좋이 지는 것이다. 



이날 나의 해돋이 포인트를 먼저 점령한 사람들의 표정이 바닷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들은 간밤에 즐겁게 퍼마신 흔적과 함께 캠핑카를 곁에 두고 각자 자리를 펴 놓고 단꿈을 꾸었다. 내가 그들 곁으로 다가가는 것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까치발로 모래밭을 지나 나의 뷰포인트로 이동했다. 살금살금 걸음을 옮기면서 "참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 곧 해돋이가 시작될 것이므로, 자주 애용하던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뷰파인더를 들여다봤다. 이미 해돋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해님은 짙은 해무에 가려 얼굴을 내밀 수가 없었다.  어느덧 15분.. 그리고 20분이 지날 때쯤 해님과 눈이 마주쳤다.




영상,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Un giorno stanco dell'attesa_나를 애태우시는 그님



*영상은 꽤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일부러 편집을 하지 않았다. 서기 2021년 7월 28일 아침에 빼꼼히 얼굴을 내민 해님을 보려면 타임라인에서 9분은 인내해야 할 것이다. 9분 이상.. 3초도 참지 못하는 유저들에게 9분은 영겁의 세월이다. 씩~^^



나를 애태우시는 그님




당신을 기다린 시간은 거의 20분이나 되었다. 해돋이를 관찰하면서부터 해님이 하늘로 둥실 떠오르는 시간은 엄청난 속도였다. 지구가 그렇게 빨리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로부터 영원까지 이어질 규칙적인 움직임.. 그러나 내가 매일 만나는 해님은 전혀 달랐다. 하루도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특히 오늘 아침처럼 해무 뒤에 숨어서(?) 나를 애태울 때는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있었다. 요즘 그런 때를 506070세대라 부른다. 나는 용케도 그 세대의 사람으로 인터넷 세상에서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기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1인이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이른바 '흙수저' 집안이었다. 우리 집 인들 달랐을까.. 



6, 25 전쟁이 끝난 후 내 고향 부산 곳곳에는 피란민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 집 근처에도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이북에서 피난을 나온 사람들이 곳곳에서 모여 살고 있었다. 그중에 죽마지우도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이북의 사투리를 그때 듣게 되었다. 나와 매우 친한 친구의 어머니는 '아바이' 혹은 '애미나이' 같은 말을 자주 내뱉었다. 당신이 그 말을 뱉을 때는 조금은 상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투박해 보였다. 



이맘때 우리는 작당하여 가까운 산기슭으로 멱을 감으러 다녔다. 계곡의 물을 너무 맑아 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는데.. 한참을 놀다 보면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그럴 때면 아이들 모두 따뜻하게 데워진 너럭바위 위로 올라가 쫄아든 꽈리고추를 널곤 했다. 이런 일은 복숭아밭에서 서리를 일삼던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 친구들과 격이 달랐던 이른바 '금수저' 집안의 친구였다. 녀석은 우리와 달리 분이와 숙이와 옥이와 잘 어울려 다니는 녀석으로, 우리가 맛보지 못했던 눈깔사탕(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했다. 


줄줄이 사탕이든 막대사탕이든 지가 좋아서 빨아대는데.. 손가락만 빨고 있던 주위의 친구들한테는 매우 자극적이었다. 달짝지근한 사탕을 한 번이라도 빨아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이때 벌어지고 있었다. 



그 녀석은 곁에서 껄떡대고 있는 친구에게 "한 번만 빨아보라"며 건네는 것이다. 녀석의 침이 잔뜩 묻어있는 눈깔사탕.. 그걸 한 손으로 내밀어 친구 입에 넣어주면 날름날름.. 혀를 핥아 맛을 보는 것이다. 



그 시간이 몇 초나 될까.. 녀석은 친구의 입에서 빼낸 사탕을 다시 자기 입에 넣고 오물오물 쪽쪽.. 그리고 다른 친구에게 나누어 빨게 하는 것이다. 곁에 있던 녀석들이 맛을 본 눈깔사탕.. 



녀석은 친구들을 애태우는 재미로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내가 매일 아침 만나는 해돋이.. 



오늘따라 해님은 내 앞에서 내 카메라 앞에서 눈깔사탕을 건네던 그 친구처럼 나의 애간장을 태우는 것이다. 



그런 잠시 후 수평선 너머에서 이번에는 베네치아 가면을 쓰고 얼굴을 내밀었다. 해님과 내가 처음으로(?) 눈을 맞추는 시간이자 기나긴 기다림 끝에 만난 진풍경이었다. 무릇 사랑하는 사람의 기다림도 이와 같을까.. 기다림도 길어지면 그리움으로 변할 것이며 장차 애간장을 태울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해님으로부터 애태움을 배우고 있다는 거 알랑가 몰라.. 씩~ ^^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Un giorno stanco dell'attesa
il 28 Lugl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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