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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ug 02. 2019

내 마음속의 해바라기

-바를레타 가는 멀고 먼  길 

우리는 언제쯤 재회하게 될까..?


지난 7월 9일, 나는 아침 일찍부터 짐을 챙겼다. 간밤에 챙겨둔 짐을 다시 지층으로 옮긴 것. 대략 새벽 4시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오전 6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하고 멀리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 시각 피렌체에서 만난 한 예술가 루이지 라노떼(Luigi Lanotte)가 집 앞에 도착했다. 피렌체에서 오전 8시경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뿔리아 주 바를레타(capoluogo insieme ad Andria e Trani della provincia di Barletta-Andria-Trani in Puglia.)까지 동행할 예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여행은 아내와 내게 매우 중요한 일정이 포함됐다. 한 예술가의 화풍에 이끌려 바를레타로 가는 길인데 바를레타는 루이지의 고향이었다. 아내는 루이지로부터 당신의 화풍을 닮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루이지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겨울이었는데 우연히 피렌체의 재래시장 산타 암부로지오를 다녀오다가 길 옆에 전시된 그의 작품을 보면서부터였다. 





아내의 마음에 쏙든 그림과 건강 적신호 


수채화를 그리는 아내의 호기심은 즉각 발동하여 "저 그림 너무 마음에 든다"며 작품 옆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감상했다. 그리고 그에게 "그림을 배울 수 있느냐"라고 물었는데 그는 쾌히 승낙하여 그림을 배울 수 있는 과정 등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림을 배우려면 바를레타로 가야 했다. 그리고 해가 바뀌면서 바를레타로 가는 일은 점점 더 미루게 됐다. 아내의 무릎관절에 이상 신호가 오면서부터 그림에 대한 열정이 한풀 꺾인 것이다. 


무엇보다 먼 길을 나서서 한곳에 집중해야 하는 그림 그리기는 체력이 뒷받침돼야만 했다. 따라서 한국의 지인(주치의)에게 한약을 제조하게 하고 딸내미를 시켜 약을 이탈리아로 부치게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약이 이탈리아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약은 택배 금지품목이어서 폐기 처분하겠다는 것. 그게 거의 3개월이 다 된 시점이었다. 


아내도 그랬지만 나 또한 화가 났다. 그러나 어디에 화풀이를 할 대상이 없었다. 여기에 물어보면 저기에 저기에 물어보면 그곳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는 한국에 비해 행정 능력이 거의 빵점이었다. 우리는 결국 힘든 결정을 해야만 했다. 아내가 혼자 한국으로 돌아가 현지에서 치료를 하고 바를레타에서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로마 공항에서 출국장으로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 때문에 한동안 먹먹했다.





바를레타로 가는 멀고 먼 길


피렌체에서 바를레타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10시간이었는데 이동 구간은 먼저 피렌체서 볼로냐까지 볼로냐에서 바를레타까지 이어지는 코스였다. 이날 루이지가 환승역 볼로냐에서 기차를 놓치는 실수를 했다.따라서 바를레타로 가는 다른 기차가 있는지 혹은 기차표를 바꿀 때 드는 비용은 얼마인지 등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루이지는 새로운 기차표 구매를 위해 빌렛떼리아로 향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저먼 치서 루이지가 바쁜 걸음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래서 그를 향해 머리 위로 동그라미(오케이 사인)를 그려 보였더니 루이지 역시 저 멀리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그리고 그가 내민 기차표는 2시간 후에 도착할 것이라 표시되었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우리는 마침내 바를레타로 가는 기차에 올랐는데 집을 옮길 때마다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피렌체에서 새벽부터 나른 짐의 부피는 큰 이민 가방과 여행용 가방 및 책을 담은 손수레까지 루이지가 없었다면 도무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짐이 아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루이지 때문에(?) 바를레타로 먼 길을 떠나는 것이므로 루이지는 기꺼이 나를 도와 집을 날랐다. 




우리가 탄 기차는 기차역이 있는 곳마다 모두 정차(완행)했기 때문에 매우 지루했다. 다행히 초행길이어서 창밖의 풍경이 위로가 됐다. 이탈리아 지도를 펴 놓고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피렌체에서 북상하여 볼로냐까지 도착하고 그곳에서 다시 뿔리아 주 바를레타로 이어지는 노선은 아무리 창밖 풍경이 아름다워도 지루했다. 밀라노에서부터 저 멀리 바리(Bari)까지 길게 이어지는 것. 

그런 한편 창밖으로 이어지는 풍경은 독특했다. 바를레타를  가는 방향을 기준으로 좌측으로 아드리아해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우측으로는 끝도 없어 보이는 평원이 길게 이어지는 것. 이탈리아의 또 다른 모습이 스멀스멀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것이다. 이때 내 눈을 의심할만한 아스라한 풍경이 나타났다. 평원에 넓게 재배되고 있는 해바라기였다. 해바라기를 보는 즉시 오래전에 본 영화 '해바라기'가 오버랩됐다. 




영화 해바라기와 내 마음속의 해바라기


글쓴이처럼 구닥다리 세대는 세계적 스타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며, 그녀가 감동적인 연기를 펼친 영화 해바라기(I Girasoli)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영화의 시작은 드 넓은 해바라기 밭을 배경으로 슬픈 멜로디(OST_I Girasoli-Henry Mancini)가 흐른다. 줄거리를 다시 회상해 보면 이러하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될 무렵 시골 처녀 지오바나 역(소피아 로렌)이 밀라노에 살았던 도시 총각 안토니오 역(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둘의 사랑은 너무 깊었던 나머지 안토니의 입대 날짜까지 연기하는 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결혼을 하면 입대 날짜를 미룰 수 있는 것. 세상사는 다 그런가 보다. 사랑에 빠지면 무슨 짓이든 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 하지만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은 건 잔머리로 해결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안토니오는 결국 군에 입대를 하고 전쟁터에 나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종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토니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혹시 전쟁터에서 죽었을까.. 불길한 생각이 든 지오바나는 이때부터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안토니오를 찾아 나선다. 그녀는 안토니오가 죽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며 있는 힘을 다해 안토니오를 찾고 있었다. 그런 한편, 안토니오는 전쟁터에서 중상을 입고 사망 직전에 한 처녀에게 구조된다. 그가 정신을 차려 눈을 떠 보니 곁에 한 처녀가 있는 것. 안토니오의 운명은 이렇게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것도 모른 지오바나는 어느 날 수소문 끝에 (비슷한 차림의) 안토니오의 소식을 듣고 그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녀는 수년간 그토록 찾아 헤매던 첫사랑의 남자를 마침내 만나게 된다. 


그 순간이라면 가슴이 설렘을 넘어 마구 고동쳐야 할 텐데 그녀의 얼굴은 파랗게 질리다시피 얼어붙었다. 안토니오를 만나기 전 수소문해 찾은 집에서 안토니오가 왜 낯선 곳에서 한 여성과 살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 모두 알게 된 직후였다. 당신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찾았던 첫사랑의 남자가 자기 품을 떠나 다른 여성과 살고 있었던 것. 그녀는 안토니오를 구조한 처녀였다. 안토니오 입장에서 보면 당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었겠지만, 그렇다 한들 지오바나의 입장은 또 무엇인가.



그녀는 안토니오를 만나자마자 물끄러미 한 번 바라본 직후 기차에 올라타고 만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에게 "왜 그랬느냐'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기차에 오른 그녀는 오열하고 만다. 무슨 연유 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가 왜 오열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온 즉시 그녀는 안토니오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또 허망하게 보낸 세월 등 자괴감에 빠져 한동안 우울하게 지낸다.  그녀는 당신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 


그녀는 운명을 되돌릴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찾지 못하고 이별하게 되는 것. 차라리 안토니오가 전쟁터에 죽었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해바라기처럼 당신만 바라보고 살아온 삶이 위안을 받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끝도 없이 이어진 해바라기 밭 아래는 2차 대전 당시 사망한 군인들이 묻힌 자리였다. 사진 몇 장을 앞에 놓고 영화 해바라기를 끼적거리고 잊자니 오래전에 본 영화의 줄거리가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아내 때문이었다. 


우리가 누구를 기다린다는 건 지오바나가 보여준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제 오후(1일) 아내와 통화를 하며 차도를 물었다. 다행인지 상태가 매우 호전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그럴 리가 없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려 영화가 만들어진 70년대로 돌아가면 당신의 소식을 까마득히 모를 뿐만 아니라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도 모를 일. 우리는 정말 행운아처럼 기적 속에서 매일을 살고 있다. 비록 바를레타까지 가는 길이 멀어 보여도, 그곳에서 아내와 다시 재회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GIRA SOLE_Regione Puglia
09 Luglio con Luigi Lanotte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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