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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20. 2021

어느 농부의 걸작(傑作)

-전설의 바다 아드리아해의 해돋이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



   서기 2021년 10월 19일 저녁나절(현지시각) 꺼내본 사진첩 속에서 어느 농부의 걸작(傑作)을 만나게 된다. 직선과 곡선 그리고 주변의 풍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 이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사구(砂丘)에 형성된 바를레타 평원의 모습이다.



사진이 촬영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한 달 전이다.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기 전 아침운동을 하면서 만난 풍경이다. 평원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마른풀과 평원의 강자 도꼬마리(창이자, 蒼耳子)가 거의 전부이다. 곧 씨앗이 여물면 잠시 동안 이 평원은 비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메마른 평원..



바를레타 평원은 아드리아해로부터 가깝게는 수 십 미터 길게는 100미터 남짓 바다로부터 떨어져 있다. 나지막한 사구 너머로 농지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아침운동을 시작하면 늘 마주치는 풍경이며 연중 만나는 평원이다.



우기가 시작되기 전 농부들은 트랙터를 몰고 와 곧 시작될 우기에 맞추어 밭을 일군다. 잡초가 사라진 밭이랑이는 부드러운 흙으로 드러나고 비가 오시면 각종 채소들이 파릇파릇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때부터 이듬해까지 바를레타 사구는 풍족하고 아름다운 신의 그림자가 연출된다.



직선과 곡선..



흔히들 직선은 인간계가 만들어낸 것이며, 곡선은 자연계가 연출한 것을 말한다. 인간의 욕망이 끝을 모르고 달리는 형태로 나타난 직선과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곡선으로 나타난다. 자연계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나무(숲)도 도시에 솟아있는 건축물과 다른 직선의 형태일 뿐 곡선의 집합이다. 그래서 직선이 빼곡한 도시의 아파트에 살면 어느 순간부터 곡선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도시를 떠나 자연 속으로 몸을 맡기면 그때부터 스트레스가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치유를 경험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죽기 전에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르네상스의 고도 퓌렌쩨(FIRENZE)는 우리에게 특별한 감흥을 느끼게 만들었다. 퓌렌쩨 두오모(Duomo di Firenze)의 높이가 114.5m인 것을 감안해도 전혀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퓌립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가 만든 둥근 돔이 직선을 삼킨 모습 때문이랄까.. 



붉은 기와를 머리에 인 퓌렌쩨 시내의 건축물들 다수는 대략 5층짜리 아파트 높이와 비슷하다. 최근에 지은 외곽의 신식 아파트와 달리 미켈란젤로 광장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퓌렌쩨는 굽이치는 아르노 강과 어우어지며 기막힌 조합을 이루는 것이다. 밀집된 아파트촌과 사뭇 다른 풍경이 우리를 꼬드겼는지 모를 일이다. 도시 속에 깃든 스토리텔링은 고사하고 오래된 도시의 겉모습만으로도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 만 해도 가장 높은 건축물은 바를레타 두오모(Basilica Cattedrale Santa Maria Maggiore)이다. 구도시에 지어진 대부분의 건축물은 5층(우리나라 기준) 내외로 위압감을 주는 수십층높이의 아파트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운동을 나서서 만나는 바를레타 사구 너머의 평원이 사람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곳에 농부들이 만든 걸작이 기다리고 있는 것. 직선인 듯 구불구불한 곡선 위로 머지않아 파릇한 새싹들이 돋아날 것이다. 


코로나 19를 피해 잠시 한국에 가 있던 하니가 바를레타로 다시 돌아오면서 맨 먼저 한 일이 아침운동이었다. 그때 자연스럽게 만나는 풍경이 농부들이 만든 걸작이자, 그녀의 소원인 그림 수업을 이어나가는 것. 그녀는 요즘 디세뇨(Disegno, 드로잉)에 빠져들었다. 



하얀 도화지 위에 까르본치노(Carboncino, 목탄)로 그려나가는 디세뇨는 곡선이 없다. 직선을 다듬어 곡선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재밌고 행복하단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재미도 솔솔 하다.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현장..



그곳이 화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지천에 널린 신의 그림자..



조물주가 빚어낸 천지만물 중에서 최후에 만든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



그들은 태생적으로 곡선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일까..



아침운동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지상 최대의 농부의 걸작..



그곳에 신의 그림자가 오롯이 드러나 있다.


L'alba del leggendario Mare Adriatico_Capolavoro contadino
il 21 Sett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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