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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18. 2021

파도야 파도야 우짜면 좋노

-성깔 난 10월의 아드리아해 풍경

서기 2021년 10월 15일 오후,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풍경을 담았다.



   집을 나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바를레타 성(Castello di Barletta) 앞의 작은 원형극장.. 이날 오후는 인적이 드물다. 바닷가로 나가려면 공원을 가로질러간다. 우리는 가끔씩 이 공원에 나와 장의자에 앉아 망중한을 달랜다. 오래된 솔숲과 고풍 넘치는 바를레타 성과 잘 정돈된 공원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공원은 집을 나서면  200m 남짓한 곳에 위치해 있고 해가 뉘엿거리면 사람들로 붐빈다. 가족과 연인들이 삼삼오오 저녁 시간을 보내며 주말이면 밤이 늦도록 붐빈다. 대략 인구 10만 명의 도시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비는 것이다. 그들은 이 공원에서 머물거나 성 앞을 가로질러 두오모(Basilica Cattedrale Santa Maria Maggiore)로 이동하며 구도시를 가로지른다. 



두오모 곁에는 오래된 카페와 젤라떼리아(Gelateria)는 물론 분위기 좋은 리스또란떼가 구도시를 빙 둘러 감싸고 있다. 참 아름다운 도시이자 나는 이 도시를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부른다. 이런 분위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느 바닷가의 작은 어촌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반도는 장화 뒤꿈치 아래 아름답고 유서 깊은 도시를 숨겨놓고 있었다. 



우연한 일이었다.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를 만남이 3년 전 르네상스의 고도 퓌렌쩨(FIRENZE)서 생긴 것이다. 하니와 나는 퓌렌쩨의 오래된 재래시장 산타 암부로지오 재래시장(Mercato di Sant'Ambrogio)을 다녀오는 길에 한 예술가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의 이름은 루이지 라노떼(Luigi Lanotte).. 



털북숭이에 숱이 많은 곱슬머리를 한 그가 로지아 델 뻬쉐(Loggia del Pesce) 계단에서 난장을 펴 놓고 있었다. 수십 점의 그림이 계단에 놓여있고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거리를 지나면서 흘깃흘깃 루이지의 그림을 보며 지나쳤다. 우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면서 루이지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수채화를 그리던 하니의 눈에 루이지의 작품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루이지로부터 그림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한국인들에게 낯선 바닷가의 어느 도시 바를레타라는 곳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바를레타를 검색해 보니 이탈리아 반도 장화 뒤꿈치 바로 아래에 이 도시가 있었다. 바를레타.. 



이렇게 해서 우리는 어느 날 루이지와 상의를 한 끝에 바를레타로 이사를 결심했다. 루이지가 펴둔 난장의 작품을 만나면서 우리의 운명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맨 먼저 루이지와 함께 이 도시를 방문하여 집을 얻어보기로 했다. 그때가 서기 2019년 7월 9일이었다. 



루이지의 화실은 구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으며, 대략 열흘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집을 구했다. 그곳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 중심이었으며, 바를레타 성과 작은 원형극장으로부터 지근거리에 위치였다. 사람들의 운명은 알 수가 없다. 대한민국에서 살다가 인생 후반전을 이탈리아서 살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그것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지난 15일 그림 수업을 끝내고 그녀와 나는 바닷가로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10월에 접어들면서 바를레타 날씨는 전에 겪지 못했던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 사나흘 비가 오시더니 온도가 뚝 떨어진 것이다. 수업 때문에 바쁘기도 했지만 바닷가에는 바람이 바다를 거칠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화실에서 바라보이는 바닷가의 풍경은 바다가 게거품을 물고 사납게 넘실거렸다. 호수보다 더 고요하던 바다가 10월에 접어들면서 성깔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감기 기운에 한 며칠 아침운동을 나가지 못하다가 마음먹고 바닷가로 향하기로 했다. 그곳은 바를레타 항구를 감싸고 있는 방파제(Levante di Barletta)이며 가끔씩 운동을 나가던 곳이었다. 날씨가 더울 때 더위도 식힐 겸 다녀오던 이곳은, 시원한 바람이 불거나 밤바다의 경치가 분위기를 더해주는 곳이기도 했다. 집 앞 공원이 정적이라면 이곳은 보다 동적인 곳이랄까..



집 앞 공원을 지나 바닷가에 다다르자 카메라가 바람에 휘날릴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조용히 착하게 살아도.. 살면 살수록 옥죄어 오는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성깔을 더 부리게 되는 것일까.. 새색시처럼 다소곳하던 아드리아해는 더 닳을 곳도 없는 못된 적폐 세력들의 성깔을 닮았다. 우기에 접어든 바를레타의 바닷가..



그녀와 함께 바닷가에 나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풍경은 등대가 있는 풍경.. 바를레타 외항으로 이어지는 수평선 끄트머리에 등주(燈住, 야간 항로표지)가 서 있다. 좌측은 파란색 우측은 빨간색.. 이날 목적지는 우측에 위치한 등주까지 돌아오기로 했다. 거리는 대략 1km가 조금 넘는 거리이며 등주 바깥은 아드리아해가 넓게 펼쳐져 있는 곳이다.



방파제 입구에 들어서자 넓은 모래밭에 새싹들이 새파랗게 돋아났다. 한 며칠 비가 오시더니 풀꽃들이 고개를 내민 것이다. 머지않아 이곳은 풀꽃들의 대합창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 살기 시작하면서 목격된 풀꽃들의 삶은 매우 규칙적이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우기가 오시면 맨 먼저 이들이 새싹을 내놓는 것이다. 그와 함께 바다는 성깔을 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니가 방파제에 들어서며 빨간 등주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선은 바를레타 내항과 등대를 향해 있다. 또 등대 뒤에 감추어져(?) 있는 거무스름한 실루엣의 가르가노(Gargano) 반도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곳은 이탈리아 반도 장화 뒤꿈치에 해당하고 우리는 지난여름에 그곳을 다녀왔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녀는 등대 뒤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당시를 회상하고 있을까..



하나둘씩 바닷가 모래밭을 점령하고 있는 새싹들 너머로 아드리아해가 넘실넘실 울부짖는다. 나는 이곳 방파제 입구에 들어서면 아드리아해 너머 멀리 동방의 아름다운 나라 대한민국을 떠올리곤 했다. 그곳에 나의 유소년기의 추억과 모든 것이 박제되어 있었다. 어머니와 조국..



그리고 그리움의 흔적들이 날이면 날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움의 흔적들과 신의 그림자..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은 내 사전에서 지워졌다. 오히려 그리움들이 더욱 애잔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 바닷가..



지난 8월 11일 그녀가 이탈리아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기 전까지 그리움은 절정에 다다랐다. 어쩌면 내 앞에서 성깔을 부리고 있는 아드리아해의 모습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불쑥 끼어드는 것이다. 성깔을 부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당신의 마음을 그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알아차렸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동백꽃 속 점순이의 마음을 그 녀석이 알아차렸다면..



아드리아해는 이렇게 울부짖으며 성깔을 부리지 않았을 텐데..



파도야 파도야 우짜면 좋노..?!!



지난해 이맘때 나 홀로 방파제를 서성일 때 마음은 아드리아해의 파도를 닮았던가.. 홀로 걷던 그 길을 따라 한 여자 사람이 바람을 가르며 등주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나는 울부짖는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며 파도의 사유를 묻고 있는 것이다. 



정중동의 마음을 뒤흔드는 앙칼진 바다 한가운데로 그리움의 흔적이 오롯이 묻어난다. 바람 불어 더 좋은 날.. 아드리아해는 우기를 핑게로 두 사람을 불러냈다. 내가 그 바다를 향해 불렀던 노래가 엊그제 일 같은데.. 꿈같은 일이 기적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러운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그대만을 기다리리 내 사랑 영원히 기다리리.. <계속>


Una vista sull'Adriatico in ottobre_Dimmi cosa vuoi fare?
il 17 Otto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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