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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ug 06. 2019

시속 250km 창밖 풍경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는 기찻길 풍경

우리네 삶의 속도도 이런 것이겠지..!


오래 전의 일이다. 정말 까마득히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글쓴이가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작은 꿈이 하나 있었다. 방학이 되면 아니 어떤 기회가 다가오면 반드시 기차를 타 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냥 기차를 타 보는 게 아니라 고향 부산에서 서울까지 왕복을 해 보는 것. 요즘은 별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무슨 연유로, 아무런 까닭도 없이, 수학여행도 아니고 서울까지 갔다 돌아와..? 


만약 이런 생각을 어머니께 말했다면 어머니께선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게 아니라 아무런 말씀도 없이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며 "네가 제정신인가?" 싶은 표정을 지으시며 "어여(어서) 닦고 묵을(먹을) 준비나 해.. "라고 말씀하셨을 것. 당시 7남매가 살고있던 우리집 경제사정이나 사회적 풍토에서 나처럼 발칙한 상상을 한 아이들도 드물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의 출처는 다름 아닌 학교 교육 때문이었던 것. 학교에서 돌아와 친구들 혹은 형들과 함께 백지도를 펴 놓고 보면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내가 사는 동네의 위치로부터 저만치 떨어진 다른 동네 혹은 사람들이 너무 궁금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이란 곳은 호기심 이상의 꿈같은 세상이었다. 어느 날 서울에서 전학을 온 친구의 말투는 분명 우리나라 말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다른 나머지 나에겐 충격이었다. 





부산 말씨.. 그러니까 갱상도 말씨는 너무 무뚝뚝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속내는 전혀 다르지만, 말의 억양이나 속도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은 천박스럽게 느낄 정도랄까. 그런데 우리 집 뒤뜰 바로 곁으로 이사 온 한 '서울네기'의 말은 말끝마다 끄트머리를 살짝 들어 올리는데 매우 고급스러운 말투였다. 서울과 부산의 차이는 말투부터 달랐다.. 


신기했다. 그때부터 엄마 혹은 어무이 아부지하고 부르던 조금은 멋쩍고 투박해 보이던 존칭을 깍듯이 바꾸었다. 그게 어느덧 사춘기 때부터였다.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머님께 처음 '어머니"라고 부르자 어머니는 놀라운 표정을 애써 감추시며 너무 좋아하셨다. 당신께서 낳은 자식이 당신을 향해 깍듯한(?) 존칭을 사용하는 곳은 나라님이 살고 있었던 구중궁궐밖에 더 있었을까.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는 기찻길 풍경


어제(5일), 나는 아침 일찍부터 로마행 준비를 했다. 우선 간밤에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부터 혹시라도 실수를 할까 봐 한국에 가 있는 아내와 통화를 하여 첫차를 놓치지 않기 위한 조치를 이중삼중 해 놓았다. 컴 앞에 놓인 알람시계를 오전 5시에 맞추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아내에게 오전 5시경에 전화를 해 달라고 요청해 놓았다. 그리고 로마에서 보낼 시간을 위해 도시락 준비에 들어갔다. 


볼 일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도 아껴야겠지만 무엇보다 길거리에서 사 먹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간단히 장을 봐 오는 즉시 도시락을 만들었는데.. 글쎄다. 저녁 늦게 만들기 시작한 도시락 때문이었는지 잠자리에 들었는 데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자꾸만 오래 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나를 잠 못 들게 만드는 것. 기차를 처음 타 보는 것도 아닌데 오래전에 꿈꾸고 실행했던 일이 생각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꿈꾸었던 먼 여행은 한 동네에 살던 죽마고우와 함께 실행을 한 것이다. 대략 열여섯 살 때의 일이었다. 부산역을 출발한 기차는 느릿느릿 역이란 역은 다 정차했으며 서울 용산역까지 가는데 이틀은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름하여 완행이자 완행열차의 이름은 '비둘기호"였다. 하지만 당시엔 느린 열차가 좋았다. 




기차가 이름 모를 역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짐 보따리를 주섬주섬 꽤 차고 내렸는데 무엇보다 기차 안의 풍경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무시로 기차 칸 복도를 따라다니던 작은 수레 위에는 삶은 달걀과 사이다 오징어 등 주전부리가 실려있었는데 나는 무엇 보다 사이다가 좋았다. 어쩌다 소풍 갈 때 어머니께서 한 병 사다주시면 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김밥이나 주먹밥 혹은 삶은 고구마와 함께 마시던 톡 쏘는 사이다 맛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기차에 몸을 실은 후 볼 수밖에 없는 창밖의 풍경은 기차여행의 백미랄까. 기차가 느릿느릿 혹은 빠르게 움직일 때 창밖 풍경은 덩달아 이동속도에 따라 저만치 사라지는 것. 어떤 때는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었지만 볼 수가 없었다. 차창의 프레임에 갇힌 풍경은 시도 때도 없이 바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어제 로마의 우리 대사관에서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창 밖 풍경도 다를 바 없었다. 기차는 시간당 25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엄청난 속도로 비둘기호 보다 빛의 속도만큼이나 빨랐지만, 창밖의 풍경은 여전히 느릿느릿한 풍경들. 우리네 삶의 속도가 제 아무리 빨라도 세상은 여전할 것인데 시간을 지내놓고 보니 까마득히 멀어져 있는 것이다. 요즘은 KTX를 타고 단 몇 시간 만에 부산에서 서울에 도착할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꿈같은 일이었다. 



삶의 무게는 여전할 망정 속도는 너무도 빨라진 것이다. 피렌체에서 로마 혹은 로마에서 피렌체로 이어지는 기찻길 풍경은 특별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기찻길 풍경과 사뭇 다르다. 



토스카나(Toscana) 주와 라찌오(Lazio) 주 및 움브리아(Umbria) 주를 거쳐 지나는 피렌체_로마 노선의 풍경은 이탈리아 농촌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같은 반도 국가이지만 상대적으로 산이 적은 이탈리아의 농촌 모습은 광대한 평원을 보는 듯한 모습인 것. 또 차창 밖은 오래전에 마주쳤던 우리네 기찻길 풍경과 닮았지만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이 같은 풍경은 이탈리아 남부로 가면 더더욱 도드라진다. 무엇보다 잘 정리 정돈된 농토를 통해서 이탈리아가 슬로푸드 강국이란 느낌을 강하게 받는 것. 



하지만 그런 게 무슨 대수인가. (나는 어쩌자고 오래 전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일까..) 시속 250킬로미터로 달리는 기차여행을 하지 못해도, 어쩌다 나를 나무라시거나 칭찬하시던 어머니가 곁에 있었으면, 느려 터진 완행열차가 백배 천배도 더 나을 텐데..!




Da Roma a Firenze sulla ferrovia
05 Agosto Ambasciata della CORE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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