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와 함께 다시 찾은 돌로미티 여행
우리는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을까..
저만치 등 뒤에서 우리를 살피던 앞산이 얼굴을 내밀 차례가 되었다. 친퀘 또르리가 저만치 앞에서 손짓을 한다. 우리는 곧 그곳에 도착할 것이며 그들이 품고 있던 슬픈 이야기는 물론 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늘 아침..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온 하니의 두 번째 그림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영상, DOLOMITI, VERSO CINQUE TORRI_돌로미티, 신의 그림자 가득한 땅
지난 9월 23일 자 포스트 돌로미티, 친퀘 또르리로 가는 길 끄트머리에 하니의 두 번째 그림 수업 소식을 실었다. 돌로미티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온 직후 그녀의 두 번째 그림 수업이 시작되었다.
독자분들이나 이웃분들께서는 기억하실 것이다. 지난해 10월 23일, 하니는 이탈리아에 창궐하는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피신해 있었다. 당시 그녀의 몸상태는 위태로워 보였다. 감기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두려움이 생겼던 것이다.
당시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나는 왕복 3000km가 넘는 머나먼 길을 운전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티에서부터 독일의 프랑크 푸르트 국제공항까지.. 그녀와 함께 먼 여행길에 올랐던 것이다. 평생 잊히려야 잊을 수 없는 멀고 먼 자동차 길..
우리는 하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독일에 도착한 이후 그녀가 출국장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10개월 동안 떨어져 지냈다. 그 직후 다시 바를레타로 혼자 돌아오는 시간은 우울이 극도에 달했다. 돌아오는 길에 망중한을 달랜 스위스의 어느 호숫가에는 갈대숲이 갈 비에 촉촉이 젖어있었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호숫가에 잠시 자동차를 주차해 두고 바라본 호수 위에는 고니들이 짝지어 노닐고 있었다. 나는 혼자.. 혼자가 되는 일은 별로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땐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쓸쓸했을까..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신의 그림자가 함께한 덕분에 나는 불과 얼마 전에 그녀를 로마의 피우미치노 국제공항 제3 터미널 2번 출구에서 그녀와 재회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바를레타로 돌아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못다 한 숙제(?) 때문이었으며, 그 숙제는 죽을 때까지 그려보고 싶은 '당신만의 작품 때문이었다. 그동안 그녀가 그린 작품들은 그녀의 성에 차지 않았으며, 그녀가 발견한 사상루각(沙上樓閣)이 당신의 작품 속에 묻어난 것이었다.
사상 루각.. 여름 한 철 바닷가에 쌓아 올린 성처럼 그녀를 허물어 뜨린 작품들은 이른바 생명이 없는 것들이거나 허상에 불과했다. 작품들은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였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가장한 허상..
그녀가 이탈리아로 돌아온 직후 맨 먼저 한 일이 그림 수업의 재개였다. 바를레타로 이사를 온 직후 겨우 시작한 그림 수업은 코로나 때문에 미루어 두었고, 10개월 만에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오래 쉰 탓이었는지.. 정밀 소묘(disegno)의 감이 많이 떨어진 듯 보였다.
소묘는 대상의 형체, 비례. 원근. 명암. 양감(量感). 질감(質感). 동세(動勢) 등을 관찰하여 단색선으로 형태를 창조해내는 과정이다. 신의 그림자가 마침내 그녀의 손에 묻어났을까..
지난해, 그녀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Luigi Lanotte)로부터 지도받은 소묘는, 그동안 그녀가 그렸던 작품들보다 훌륭했다고 자평했다. 작품은 마치 살아있는 듯 생명이 넘쳤으며, 대상 보다 더욱 아름다웠으며 대상의 형체가 거의 완벽해 보였다.
조물주가 만든 최후의 작품 '한 여자 사람'의 눈에 띈 대상의 형체가 드러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보낸 직후 마침내 신의 그림자를 조우한 것이라는 기쁨이 함께한 것이다.
그녀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온 직후 우리가 계획한 일은 돌로미티를 다시 여행하는 일이었다. 긴 비행시간의 여독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침운동을 시작했으며, 거리를 점차 늘리는 동안 그녀의 바람이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다.
우리는 돌로미티에 다시 발을 디딘 후 흡족해 했다.
사노라면 감동에 젖을 때가 흔치 않다. 당신을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이 드물다. 문명사회에서 사노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곳은 신의 그림자로부터 턱 없이 멀어진 곳이랄까..
그녀는 돌로미티의 명소 친퀘 또르리가 얼굴을 내민 봉우리까지 진출했다.
작은 목표라 할지라도 그 목표들이 하나둘씩 쌓이면 커다란 궤적을 이루게 된다. 우리네 삶이 그랬지..
나 또한 어느덧 그녀의 발자취를 쫓아 친퀘 또르리가 줄지어 서 있던 봉우리에 발을 들여놓고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우리가 앞산이라고 불렀던 장엄한 봉우리 또퐈나 디 로쎄스(Tofana di Rozes (3225 m))가 눈높이에 도달해 있었다.
우리가 떠나온 친퀘 또르리의 승강기 주차장이 계곡 속으로 파묻혔다.
우리기 이곳까지 진출할 때까지 신의 그림자는 우리와 함께 했다. 당신께서 주단처럼 깔아놓으신 신의 그림자를 따라 친퀘 또르리를 바라볼 수 있는 봉우리까지 이동한 것이다.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
그녀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곳곳에 신의 그림자가 함께 했던 그 기억들..
그녀가 그토록 그려내고 싶었던 신의 그림자가 돌로미티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신의 그림자가 빼곡한 땅.. 그녀와 나는 이곳에서 신의 그림자로 환생한 사람들의 흔적을 만나게 됐다. <계속>
Le Dolomiti che ho riscoperto con mia moglie_Le Cinque Torri Dolomiti
il 26 Sett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