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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15. 2021

만추(晩秋)의 꼴로르노 궁전

-차마 잊을 수 없는 요리학교의 늦가을 풍경


생애 단 한 번의 순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서기 2021년 11월 14일 일요일(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사진첩을 열어 꽤 오래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다. 그곳은 내가 다시 태어난 곳이자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후 늘 떠올리게 되는 차마 잊을 수 없는 장소이며, 요리학교(아래 자료사진)가 위치한 렛지아 디 꼴로르노(Reggia di Colorno) 궁전이다. 



이곳 바를레타는 하루 종일 가을비가 보슬보슬 오락가락하신다. 노트북을 연 시간은 한밤중이다. 새벽 1시가 넘어서고 있는 야심한 시각. 한국은 오전 9시를 지나고 있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천둥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고 잠시 상념에 젖었다. 나의 생애 기록된 타임라인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뚜렷한 기억들이 여러 장면 스쳐 지나갔다. 


기억은 참 희한하다. 나쁜 일 보다 좋았던 일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좋았던 일은 물론 나빴던 일과 슬펐던 일 등 희로애락이 뒤섞여있다. 우리 인간의 메커니즘은 참 재밌다. 망각의 기능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나쁜 기억들은 모두 지우고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상념 속에는 우리 행성을 몇 바퀴 돌던 여행의 추억이 오롯이 남아있었다. 나는 많은 기억들 중에 유난히 나의 성격을 형성해 준 유소년 기와 청년기를 떠올리는 버릇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유소년기 때 추억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나 할까..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기억을 할 수 있는 데까지 더듬어 보면 대략 세 살까지는 기억이 오롯이 묻어나는 것이다. 어머니 품에서 자라던 시간은 물론 현관문을 열고 뒷마당을 나서면 졸졸졸 흐르던 개울은 물론 누렁이가 꼬랑지를 흔들어대던 풍경까지 생각이 나는 것. 그리고 머리가 다 큰 다음의 일들은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있었다. 


그 가운데 이탈리아에서 보낸 시간들은 그 어떤 경우의 수가 작용할지라도 절대로 지울 수 없는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날.. 그러니까 정확히 11월 14일, 나는 피렌체서 요리학교가 위치한 빠르마(PARMA)의 꼴로르노로 향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날이었다. 보슬비가 소환한 아름다운 추억인 셈이다. 그 여정 전부를 담아두었다. 이랬지..



만추(晩秋) 꼴로르노 궁전 가는 길





맨 먼저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서부터 빠르마까지 이동했다. 빠르마 역 구내에서 꼴로르노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비나리오(Binario, 플랫폼)를 서성이며 기록을 남겼다. 주변은 안개가 자욱했다.



마침내 7번 비나리오에 꼴로르노 행 기차가 도착했다. 요리학교가 위치한 꼴로르노(Colorno)는 인구 9천 명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여서 기차의 차량은 서너 칸으로 운용되고 있다. 다른 기차에 비하면 생김새도 그렇고 시설도 별로인 기차랄까..



빠르마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복장을 보면 이날 날씨를 짐작할 수 있다.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 남아있어서 비나리오 서성이며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탈리아는 기차 노선이 매우 발달해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다른 독특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 마침내 기차가 비나리오를 지나 꼴로르노로 향했다.


빠르마에서 꼴로르노로 이동하는 노선은 창밖으로 농촌 풍경이 길게 이어진다. 안개비가 날리기 시작하는 만추의 벌판은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헌팅한 장소처럼 변하게 된다.



나는 어느덧 스스로 나의 다큐를 찍는 영화감독 겸 주인공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빠르마에서 꼴로르노까지 거리는 대략 20km로 시간은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비록 짧은 구간이지만 기차 창 밖으로 사라지는 풍경은 이국적이다 못해 시간을 박제해 둔 듯하다.



지금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오래된 건물들이 차창밖으로 사라지면서 등장하는 묘한 시간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갖가지 꿈을 꾸게 된다. 태어나고 자라서 장차 무엇이 되고 싶어 하고 그를 통해 당신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유소년기 혹은 청년기 때 잘 모르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뒤죽박죽 된 당신의 삶을 보게 될 것이다. 전혀 예상 밖의 일들이 무지갯빛 꿈들을 새까맣게 지우고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 


어떤 사람들은 출생이 금수저 집안이어서 흙수저 보다 더 나을지 모르겠다만 그 마저도 나중에는 누가 금수저인지 흙수저 이었는지 모르게 될 것이다. 시간은 금을 쥐었다고 해서 더 나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흙수저는 물론 무수저(?)라 할지라도 지천명의 터널을 지나면 다 거기서 거기랄까..



사람들은 이때부터 노후대책을 세우게 된다. 전투처럼 치열하게 지냈던 삶을 잘 갈무리하고 싶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중년 장년 노년의 시간들.. 어떤 사람들은 번잡한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산으로 외딴섬으로 등등 조용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숱하다. 그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어떤 사람들은 노년기에도 여전히 노동을 해야 생명을 유지할 만큼 열악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노후대책 조차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 것. 나를 태운 꼴로르노 행 기차가 꼴로르노역에 도착했을 때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가차는 곧 나를 내려놓고 빗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빠르마행 기차가 비나리오로 들어오고 있었다. 지난봄에는 붉은빛 꽃양귀비가 철로변에 빼곡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짧은 기차여행이 시사하는 바 크다고나 할까.. 우리도 언제인가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를 것이다.  



나는 늦깎이로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아들 딸 같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감행했다. 일종의 노후대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 네 시작은 미미했지만 나중에는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무색할 정도였다. 



지천명을 지나 이순을 코 앞에서 바라보는 시간에 요리사 복장을 하고 꾸치나(Cucina, 주방)에서 일하는 일은 심히 힘든 일이었다. 중노동이었다. 청춘들도 혀를 내두르는 마당에 안 청춘인들 오죽했을까..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물러설 자리도 없었다. 그럴 리가 없지만 그때 포기를 선택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꼴로르노 기차역에서부터 요리학교까지 천천히 걸으며 만추의 레지아 디 꼴로르노 궁전의 담벼락을 보고 있었다. 그곳에 가을비에 젖은 나무들이 울긋불긋한 나뭇잎을 달고 있었다. 참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찻길 옆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는 꼴로르노 궁전의 담벼락이 너무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도 아니면 모'로 덤벼든 초보 요리사에게 여유를 보여준 것이다. 감동한 하늘이 내려주신 만추의 가을비..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신 것처럼 나는 시방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 살고 있다. 사진첩을 열어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니 긴가민가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유 중에는 죽기 전에 꼭 한 번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서 살아보고 싶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그곳에서 뜨랏또리아(Trattoria,경양식)를 경영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하늘이 우리에게 허락한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우리에게 보다 여유로운 삶을 준비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 우리 곁에서 날마다 일어났다.



까치발을 딛고 꼴로르노 궁전 안 숲을 살피니 더 익을 데 없는 풍경들이 가슴에 와락 안긴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그것도 모자라 잠이 든 후에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잠들었던 시간들..



그 어둡고 긴 언어의 장벽을 삽질로 괭이질로 뚫고 또 밀쳐낸 결과.. 작은 구멍이 보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터널이 생겼다. 아무도 넘보지 못했던 일이 안 청춘의 도전이 성취해 낸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성취욕들이 있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쌓아둔 성취욕의 끄트머리에는 별의별 종목들이 다 있다. 하지만 그들이 누리던 삶의 끝자락은 생각만큼 화려하지 않다는 것을 매일 매 순간 만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풍경을 두고 "잠시 소풍을 다녀간다'라고 말한다. 인생은 소풍이란 말인가..



학교 앞 공원에 도토리들이 빼곡하다.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알차게 여문 도토리들.. 이곳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녀석들의 곁에서 꽤 오랫동안 서성거렸다. 유소년기의 버릇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까운 산에서 줍거나 따온 도토리들이 어머니의 손에 쥐어지면 마법이 작용한다. 



도토리들을 잘 말린 후 빻아서 여러 날 물에 불려 떫은맛을 제거하고, 다시 말리기를 되풀이한 후 빻으면 도토리묵을 만들 수 있는 가루가 되는 것이다. 그 가루를 풀 죽을 쑤어 식히면 탱글탱글 맛있는 도토리묵이 되는 것. 양념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숲 속의 요정들이 입안에서 춤을 춘다. 어린 녀석은 맛있다고 노래를 한다. 



그 모습을 즈음이 지켜보던 어머니의 얼굴이 환하게 변한다. 미소 가득한 얼굴.. 나의 기억 속에서 어머니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지금은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며 대견해하실까..



만추(晩秋) 꼴로르노 궁전




나는 관련 포스트에서 요리학교가 위치한 렛지아 디 꼴로르노를 <다시 태어난 곳>이라 말했다. 세상에는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적지않지만 절대 바꿀 수 없는 게 있다. 어머니와 조국.. 그래서 나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요리학교를 다시 태어나게 만든 장소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가을비가 오실 때 맨 먼저 가 보고 싶었던 장소..



꼴르르노 궁전에 만추가 깃들며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세상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어떤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기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진다. 먼 길을 돌아 내가 다시 태어난 장소에 발을 들여놓자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알현한 듯 행복하다. 무념무상..



내게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지.. 하니는 한국에서 노심초사로 시간을 보냈으며 당신의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림으로 일관한 인내의 시간들.. 하늘은 우리 몰래 또 다른 선물을 예비해 놓고 있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그저 앞만 보며 지나온 시간들.. 만약, 내일 당신 앞에 이런 풍경이 찾아온다면 행복해할까.. 우리가 보낸 수많은 시간들이 꼴로르노 궁전의 잘 다듬어진 터널 숲의 이파리가 되어 비에 젖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화자찬이 시간들.. 다독다독..!



면류관이란 이런 것일까.. 서기 2021년 11월 14일.. 한 밤중에 열어본 사진첩 속에는 차마 잊을 수 없는 만추의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봐도 아름다운 풍경들이 가슴에 다가올 때까지 하늘은 또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



포기하면 안 돼.. 절대로.. 누구 마음대로..!



얼마 전 하니와 함께 돌로미티 여행을 다녀오면서 꼴로르노 궁전을 함께 찾았다. 감개무량했다. 



"너무 아름다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ALMA La Suola Internazionale di Cucina Italiana_Reggia di Colorno
il 14 Nov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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