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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21. 2021

여행자들이 빠뜨린 피렌체의 명소

-중세가 현대를 입다


죽기 전에 꼭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 피렌체..!!



   빗방울이 오락가락하시던 만추의 어느 날 나는 뽀르따 로마나(Porta Romana) 중심에 위치한 삐아짜 산토 스피리토(Piazza Santo Spirito) 광장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 광장은 곁에 있는 바실리까 디 산토 스피리토(Basilica di Santo Spirito)로 발현되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내게 이 광장은 낯설지 않다.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이곳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가까운 곳에서 방을 얻어 리스또란떼로 출퇴근을 했다. 그리고 짬짬이 근처를 돌아보며 망중한을 달랜 곳이다. 이곳은 시내 중심 피렌체(피렌체(Firenze)라 쓰고 '퓌렌쩨'로 고쳐 쓰기로 한다.)로부터 멀지 않지만 시내 중심에 있는 유명한 건축물들이 조각품 등으로부터 밀려나 관광객들 대부분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 우리나라 관광객을 만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었다. 한두 사람을 만났던가..



그러나 내겐 이곳 퓌렌쩨의 구도시 뽀르따 로마나는 물론 광장은 너무 친숙한 곳이다. 퓌렌쩨서 살다가 바를레타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나는 이곳에 위치한 한 어학당을 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살던 산 로렌쬬 성당 옆 메디치가 예배당(Cappelle Medicee) 앞에서 길을 나서고, 시내를 가로질러 뽄떼 산타 뜨리니따(Ponte Santa Trinita) 다리를 건너서 거의 직진을 하고 골목 한 두 개를 돌아서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이때부터 이탈리아어 수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배운 이탈리아어를 현지에서 이탈리아 선생님으로부터 다시 배우는 것. 이런 과정이 죽기 전에 꼭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 퓌렌쩨 때문이었다. 인생 후반전에 시작한 이민 절차는 한 때 초주검으로 내몰았지만 거뜬히 견뎌내고 있었다. 



물론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별 거 아니었다. 아무튼 맨 처음 이탈리아에 발을 들여놓은 곳이 요리학교가 위치한 빠르마(Parma)의 렛지아 디 꼴로르노(Reggia di Colorno)라면, 본격적인 활동과 둥지를 튼 곳은 이곳 퓌렌쩨였다. 내가 즐겨 부르는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는 특별한 영감을 주는 도시였다. 



특히 맨 처음 작은 둥지를 틀게된 뽀르따 로마나는 매우 흥미로운 곳이었다. 곳곳에서 애술품을 만드는 장인(匠人)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보떼가(가게, bottega)에 진열해 둔 작품들은 흥미진진했다. 그래서 리스또란떼에서 휴식이 주어지면 숙소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집을 나서는 한편, 언급한 삐아짜 산토 스피리토 광장까지 천천히 걸어서 이곳저곳을 기웃 거리는 것이다. 그때 만난 풍경들이 포스트에 등장하고 있고, 만추의 어느 날(정확히 11월 10일) 집에서부터 뽄떼 베끼오까지 천천히 걸으면서 눈에 띈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곳에는 퓌렌쩨 시내 중심에서 만날 수 없는 매우 이질적인 풍경이다. 마치 중세의 시간이 그대로 박제된 듯한 풍경이 보다 세련미 넘치는 사내 중심과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건물들도 그렇고 인적도 드문 곳. 그런 골목 곳곳에 장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오래된 가게와 현대의 패션용품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것이다.



빨리 걸을 필요도 없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진열장 앞에 서서 상품들을 살펴보는 재미 때문에 여성들이 괜히 백화점을 서성거리는 이유를 알게 됐다. 시쳇말로 눈팅만으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집에서 어학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만나게 되는 낯익은 살바또레 풰르라가모(페라가모, Salvatore Ferragamo) 본사가 위치한 뷔아 델 빠리오네(Via del Parione)는 유명 브랜드가 즐비한 곳이다. 매일 아침 그 거리를 지나 뽄떼 뜨리나 따를 건너면, 마침내 우리가 꿈꾸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곳은 단테가 베아뜨리체를 만난 장소로 알려져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뽄떼 베끼오 다리에서부터 이곳까지 데이트를 즐기며, 아르노 강 난간 곳곳에 사랑의 증표로 자물쇠를 꼭꼭 꽁꽁 묶어 두는 것이다.(흠..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 



그러나 당시 나는 그렇게 튀는 장소보다 뽀르따 로마나의 뒷골목이 훨씬 더 흥미로웠다. 연식이 연식인 만큼 현대인들이 즐기는 유행에 치우치지 않고 미켈란젤로 당시 혹은 중세의 향기가 오래도록 묻어나는 골목과 건축물 등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퓌렌쩨의 진정한 향기가 오래된 장롱 속에 숨어있는 듯한 묘한 골목길..



그 골목길에 들어서면 지금은 볼 수 없는 오래된 풍경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유년기 때 본 어머니와 누님은 장롱 앞 면경 앞에서 분칠을 다독거리고 있었지.. 



수 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사람들이 복고풍에 목말라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사대를 맞이한 인류는 머지않아 세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탓인지.. 문화예술은 여전히 시간 저편 르네상스 시대 혹은 바로크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죽기 전에 꼭 한 번 퓌렌쩨서 살아보고 싶었던 이유도 그런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평생을 한국에서 누릴 것만큼 적당히 누려보고, 못 볼 꼬락서니 아름다운 모습 등을 학습했으면 그만됐지.. 다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살아야 할까.. 싶은 생각 등이 어느 날 작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랄까..



그래서 뽀르따 로마나 구석구석을 돌아보면 시내 중심에서 느끼지 못하던 그리움 같은 게 넌지시 묻어나는 것이다. 오래된 보떼가 속에는 고급진 옷과 액세서리는 물론 이곳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생필품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내가 묵었던 숙소 조차 그들이 사용하는 가구나 집기 등은 나름 규모를 갖추고 있었으며 오래된 물건들이 많았다. 그들은 가족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다시 사용하는가 하면 어떤 물건들은 이웃과 나누어 쓰고 있었다.



하니 보다 내가 먼저 이곳에 도착해서 둥지를 짓고(?) 있는 동안 한국의 서울에서는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었다. 서울 강남에서 재개발 공사를 하게 되면 별 희한한 일들이 다 벌어진다. 가족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배인 생활용품 등이 통째로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것이다. 대체로 모두 멀쩡한 것들이다. 그중에는 냉장고는 물론 티브이와 가전제품 그리고 가구 등이 마구 버려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사용하던 학용품 등 추억의 소품이 모조리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것. 재활용은 꿈도 꾸지 못하는 재개발 현장이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 발을 들여놓은 직후 만난 이들의 생활습관은 나를 민망하게 만들 정도였다. 정반대의 생활문화가 습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나게 된 장인들의 가게에는 나무 한 조각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수집된 골동품들은 휴일 날 여러분들을 즐검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현대에 살고 있지만 그들 선조들이 만들었고 사용했던 오래된 물건들을 내 것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부를 거머쥐는 일이 있어도 바뀌지 않는 오래된 습관.. 중세 때부터 이어져온 그들이 선진문화가 아닌가 싶었다. 물론 이들에게도 나쁜 습관이 적지 않았다. 



나는 오래된 옛 도시의 골목을 걸을 때마다 부비트랩(?)에 늘 신경 써야만 했다. 마차 한 대가 다닐 정도의 좁은 옛길 옆으로 나 있는 인도 위에는 개똥들이 즐비했다. 피하고 또 피해도 언제인가 한 번은 밟게 된다. 되었다. 그리하여 비가 오시면 도시가 반들거리는 재밌는(?) 풍경이 연출되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따리를 챙겨 퓌렌체에 발을 디딜 때쯤 그런 현상이 단박에 사라지며 나를 즐겁게 했다. 시장이 바뀌면서 개똥을 방치하는 주인들에게 벌금을 부과하니 도시가 깨끗하게 변모된 것이다. 반려견을 사랑하는 권리는 의무가 반드시 필요했다. 



아무튼 퓌렌쩨의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중세풍의 보떼가는 물론 오래된 집들과 주변의 공원 등은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에게 전혀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뽀르따 로마나에는 빨라쬬 피티(Palazzo Pitti) 궁전과 유서 깊고 아름다운 지아르디노 보볼리(Giardino di Boboli) 공원이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또 뽀르따 로마나 입구에서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길게 이어지는 언덕길을 걸으면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게 될 것이다.



언덕 위까지 걸어서 가거나 버스를 타고 뷔알레 갈릴레오(Viale Galileo)에 내리면 120년된 퓌렌체의 명소 샬레 폰따나(Chalet Fontana) 리스또란떼를 만날 수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한 리스또란떼로 주변의 경관은 토스카나 주의 경관을 그대로 옮겨둔 듯 아름다운 곳이다. 다시금 생각해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뽀르따 로마나 바스 정거장에서부터 네 번째 정거장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리스또란떼 바로 앞의 오래된 돌담길을 걸으면 퓌렌체를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골목에는 까사 디 오또네 로사이(Casa di Ottone Rosai)가 있다. 그 길 이름은 뷔아 산 레오나르도(La casa d' Ottone in via San Leonardo) 이 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뽀르따 산 지오르지오(Porta San Giorgio)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골목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가면 그 유명한 뽄떼 베끼오(Ponte vecchio)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구도시 한 바퀴를 도는 동안 그동안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보지 못한 볼거리들이 복주머니 꽤듯 가슴 가득할 것이다. 물론 퓌렌체 관광을 1박 2일로 잡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맨 처음 만났던 삐아짜 산토 스피리토로 돌아가 볼까.. 조금은 복잡해 보이지만 사내 중심에서 아르노 강을 건너자마자 좌측으로 이동하면 그곳에서부터 뽄떼 베까오까지 이어지는 뷔아 데 바르디(Via de' bardl)를 만나게 된다. 보석 세공품과 마스크 등 장인들이 만든 예술품들과 오래된 골동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아무 때나 어느 곳이나 "들어가도 될까요?_Posso entrare(뽀소 엔뜨라레)?"라고 물으면 당장 "들어오세요!_Prego(쁘레고)!"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탈리아에 발을 처음 들여놓은 이후 이런 방법으로 아무 가게나 누구에게나 접근하여 이탈리아어를 시험해 보곤 했다. 간단한 소통으로 어휘를 점차 늘리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낯선 이탈리아는 언제인가부터 남의 나라 같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고, 오히려 그동안 만나지 못한 대한민국이 점차 낯설어 보인다고나 할까..



요즘은 코로나 시대.. 세계인들이 잠시 긴장을 늦춘 결과 때문인지 여전히 감염병이 창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마저도 곧 지나가리니.. 녀석들이 사그라들면 여행기간을 좀 더 늘려 퓌렌체 곳곳은 물론 이탈리아 전역을 버킷리스트에 담아보시길 강추해 드린다. 특히 퓌렌쩨에 가시면 뽀르따 로마나 지역의 골목 곳곳을 천천히 돌아보시기 바란다. 마치 중세의 옷을 입은 현대인을 만나 것처럼 시간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만추의 어느 날 나는 숙소에서부터 뽄떼 베끼오까지 천천히 걸어서 이동하며 시간여행을 하고 있었다.


Quando vai lì, tutti si innamorano del tramonto_FIRENZE
il 20 Nov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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