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이탈리아인들의 건강 장수 비결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즐길까..?
얼마 전의 일이다. 나는 한 예술가 루이지 라노떼(39세, Luigi lanotte_'루이지'라 부른다)와 함께 이탈리아 남부 지방 뿔리아 주의 바를레타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관련 브런치 글에 바를레타의 일면을 소개해 드린 바 있다. 다시 한번 더 바를레타가 위치한 곳을 설명하자면, 이탈리아의 지도(장화 모양)의 구두 뒤꿈치에 해당하는 곳으로, 대략 인구 10만 명이 살고 있는 항구도시이다. 내가 루이지와 함께 이 도시로 여행을 떠나게 된 건 순전히 루이지 때문이었다.
그는 피렌체에 있는 한 유명 아카데미를 다닌 예술가로 '순수미술'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내와 함께 피렌체의 오래된 재래시장 산타 암부로지오를 다녀오는 길에 그를 만났다. 그는 정기적으로 고향 바를레타를 떠나 피렌체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내다 팔기도 하고 현장에서 직접 (아크릴)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그런 그의 그림이 피렌체에서 단연 돋보이는 화풍으로 아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수채화를 그리고 있던 아내는 피렌체의 롯지아 델 뻬쉐(Loggia del Pesce) 계단에 늘어놓은 루이지의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든 것이다. 그동안 피렌체 곳곳에서 아내의 마음에 드는 그림은 물론 화가들을 수소문했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아내의 눈에 루이지의 독특한 화풍이 눈길을 사로잡은 것. 따라서 즉석에서 그림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루이지는 자기 고향 바를레타의 스튜디오에서 수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내의 그림 수업을 위해 내린 중요한 선택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너무 멀었다. 한 주에 한두 번의 수업을 위해 그 먼길을 다닐 수 없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피렌체에 둥지를 튼 우리가 그림 때문에 둥지를 바꿔야 하는 일이 생긴 것. 그래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아내와 의논 끝에 결정을 했다. 루이지를 따라 그의 고향에서 그림 수업을 받기로 한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자 힘든 결정이었다. 아예 피렌체에서 바를레타로 이사를 가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런 결정을 루이지한테 말하자 루이지는 너무 기뻐하며 좋아했다. 자기 그림을 좋아하는 열렬한 팬이 생긴 것. 따라서 루이지의 일정에 맞추어 짐을 챙기고 바를레타행 기차에 올라탓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은 기찻길 위에서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서두른 끝에 피렌체에서 볼로냐까지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오전 8시에 출발한 기차는 볼로냐에서 환승한 다음 바를레타까지 대략 10시간은 달려야 했다.
하지만 볼로냐에서 우리가 환승해야 할 기차를 놓쳐 다시 기차표를 바꾸어 타니 12시간이 소요됐다. 정말 지루했다. 하지만 간간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그나마 위안이 됐다고나 할까.
기차는 우리나라의 동해남부선을 타고 바닷가를 달리는 것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쪽으로 아드리아해(Il mare Adriatico)가 기차를 따라다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비옥한 평야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같은 풍경은 바를레타에 도착할 때까지 길게 이어졌다. 초행길에 만난 이탈리아 장화(?) 뒷부분의 풍경이 주로 이러했다. 루이지가 사는 도시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의 부모님들까지..
♡스텔라의 가지 올리브유 식초 절임 리체타
위 자료 사진은 스텔라가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며 내놓은 가지 올리브유 식초 절임(Melanzane sott'olio)의 모습이다. 이탈리아의 전통 음식으로 만드는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가지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물과 비노 비앙꼬 식초를 배합하여 끓인 물에 가지를 넣어 데친 후 끄집어 내어 물기를 말린다. 그 다음 가지를 담을 적당한 크기의 병을 깨끗히 세척한 후 끓는 물에 소독을 한 후 병을 거꾸로 세워 물기를 말린다. 그리고 준비된 가지(물기가 제거된)를 병에 담고 올리브유(엑스트라버진)를 가득 채운다. 마지막으로 병뚜껑을 잘 닫은 다음 준비된 끓는 물(냄비)에 올려놓고 대략 10분 이상 끓인다. 이렇게 하면 병 속은 진공상태로 변하게 되는데 건냉한 곳에 보관하며 대략 6개월까지 보관이 가능하단다. 또 먹기 위해 병뚜껑을 열었으면 냉장고에 넣어두되 올리브유 아래 잠기도록 하고 일주일 내에 모두 먹도록 할 것. 이렇게 준비된 가지 올리브유 식초 절임은 빵에 통째로 올려먹거나 쁘레째몰로와 함께 다져서 먹는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꽤 까다로운 리체타인데 문득 우리나라의 각종 절임이 생각났다. 절임과 다른 게 있다면 소금을 사용하지 않아 짜지않다는 것.
현지인이 대접한 이탈리아 남부지방 음식
바를레타에 도착한 이후 루이지와 그의 부모님과 만남은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맨 처음 점심을 초대받은 이후로 여러 번 저녁을 함께 먹곤 했다. 루이지의 어머니 스텔라(Stella_'스텔라'라 부른다)와 아버지 프랑코(Franco Lanotte_'프랑코'라 부른다)는 글쓴이의 또래로 매우 친절했다.
특히 프랑코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복싱을 했는데 마치 마이크 타이슨을 연상시킬 정도의 듬직한 체구였다. 떡 벌어진 어깨에 굵직한 목둘레 하며 콧방울이 굵직하여 남자다운 풍모가 물씬 풍겼다.
또 스텔라는 여간 부지런한 게 아니었다. 루이지의 스튜디오에 들르면 주방은 물론 집안 대청소를 했는데 먼지 한 톨 없을 정도로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처음엔 그런 모습이 손님 때문으로 생각했지만 타고난 성품이 그랬다.
그런 어느 날 루이지한테로 전화가 왔다. 함께 점심을 먹자는 전갈이었다. 스텔라와 프랑코가 사는 곳은 루이지의 스튜디오가 있는 시내 중심으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프랑코는 자기 집 근처에 올리브 과수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은 집수리였지만 일거리가 없을 때는 짬짬이 과수원을 돌보곤 했다.
♡프랑코가 이날 특별히 나를 위해 바를레타에서 가까운 트라니로 이동하여 싱싱한 갑오징어(La seppia, Sepia officinalis )와 홍합(Cozze)을 사 왔다. 이틀 전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바를레타에서 싱싱한 해물을 날 것으로(Crudo)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프랑코가 즉각 실행에 들어간 것이다. 이날 갑오징어와 홍합은 레몬즙을 뿌린 후 나 혼자만 주로 다 먹었다. 피렌체의 중앙시장에서도 이 같은 해물이 있지만 신선도가 떨어져 날 것으로 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격도 턱없이 비쌌다. 위 자료 사진 오른쪽은 프랑코가 내놓은 뿔리아 산 비노 비앙꼬.. 날 것을 안주 삼아 한 병을 내가 거의 다 마셨지 아마도..^^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최고의 명품에 빠져들다
프랑코의 말에 따르면 포도 수확이 한창인 가을이 되면 일손이 부족해 포도 따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가을이 되면 일손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는데 그러자며 흔쾌히 대답은 했지만 포도밭의 사정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점심에 내놓은 비노 비앙꼬를 통해서 질 좋은 포도주가 뿔리아 주에서 재배되는 것을 단박에 알게 됐다.
프랑코의 자랑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최고의 포도 품종에 이탈리아의 포도 원산지는 뿔리아 주며 이곳은 포도나무가 토스카나 등지로 전파되었다며 목에 힘주어 자랑하고 나선 것. 뿔리아 주 전체가 포도나 올리브를 재배하는데 이곳의 토양과 기후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올 때 창밖에 끝없이 펼쳐진 과수원의 나무들이 주로 포도원과 올리브 과수원이었던 것. 따라서 베네토 주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 뿔리아 주였다.
♡스텔라가 만들어낸 꼬째(Cozze, Mytilus coruscus, 홍합) 스파게티.. 우리가 밥을 잘 짓는 것처럼 스텔라는 물론 루이지 조차도 스파게티 요리를 기막히게 했다. 특히 스파게티 면발은 그야말로 알덴떼(Al dente)로 입안에서 씹히는 식감이 기막힌다. 거기에 홍합 국물로 만들어낸 살사는 스파게티에 착 달라붙어 바다향기가 가득한 것. 거기에 쁘레째몰로(Il prezzemolo)가 간간히 씹히며 입안은 천국으로 변한다.
프랑코가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 뿔리아 산 포도 품종은 우바 디 뜨로이아(Uva di Troia)와 네그로 아마로(Negro Amaro)였다. 우바 디 뜨로이아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소아시아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 품종으로 포도송이가 큰 반면에 알맹이가 넓고 또 한 종은 포도 알맹이가 적다고 했다.
또 네그로 아마로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그리스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했다. 포도 특유의 검은색(Negro)과 쓴맛(Amaro)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 품종은 생산량이 높아 뿔리아 주 전체가 포도밭으로 변하는데 일등 공신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가을이 돼야 이들 정체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될 것 같다. (기회가 닿으면 따로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말고기 살시챠
그리고 이날 식탁에 등장한 말고기 살시차(Salsiccia di Carne di cavallo) 때문에 눈이 휘동그래 졌다. 오븐에 잘 구워낸 살시챠를 처음 봤을 땐 그저 돼지고기로 만든 것 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프랑코가 자꾸만 "말고기를 먹어봤느냐"는 물음 때문에 "아니"라고 대답하자 접시를 가리키며 말고기 살시챠라고 했다. 말고기는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전통 음식으로 즐겨먹는다고 했는데, 나는 살시챠를 보는 순간 별로 친근하지 못했던 '말대가리'가 먼저 생각났다. ㅜ
말고기는 들어봤어도 말에 대한 선입견은 식용으로 선뜻 다가오지 않은 것이다. 말도 개나 고양이처럼 사람들에게 친근한 애완용(?)인데 돼지나 소처럼 식용으로 습관이 되지않았기 때문일까. 말고기 관련 자료를 살펴보니 세계인이 즐겨먹는 육류였다. 말고기 생산량은 2017년 기준 중국과 카자흐스탄이 1.2위를 차지한 가운데 이탈리아는 말고기 생산 국가 중 16번째로 등재되어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는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난생 처음 먹어본 말고기 맛은 어땠을까.. 정말 맛있었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맛을 음미해 보니 입안에서 육즙이 톡톡 터지면서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했다. 누구나 말고기 맛을 보는 순간 단번에 반하고 말 것 같은데.. 글쎄다. 한국에서 온 촌놈은 평생을 통해 말고기를 처음 맛보며 그저 '최고'라며 먹기 바빳으니 프랑코가 빙그레 웃을 수 밖에..
이날 프랑코는 "한 모금 마셔보라며" 정말 귀한 술을 내 놓았다. 와인으로 만든 이 술은 독주로 알콜 도수가 매우 높아 입술에 살짝 닿기만 해도 불이 활활 타오르는 듯 했다. 우리나라 안동소주처럼 만든 증류식 소주였다. 다만 술을 빚는 내용물만 달랐을 뿐이었다. 벌건 대낮이 아니었다면 말고기 살시챠와 함깨 병을 마저 비웠을지도 모르겠다. ^^
Cucina Italiana_Barletta PUGLIA
Insieme Luigi lanotte e suoi Fami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