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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28. 2021

비 오시는 만추의 아르노 강변에서

-여행자들이 잘 안 가는 피렌체의 명소 


당신은 어떤 꿈을 꾸고 사시는가..?!



미켈란젤로의 도시 퓌렌쩨에 날이 밝았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아르노 강 옆으로 뽀르따 산 니꼴라(Porta San Niccolò)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아래로 아르노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고 수중보가 좌측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윽고 강 건너에 아침햇살이 발그레 드리워졌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언덕 위에 바르디니 정원(Giardino Bardini)이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붉은 색조로 칠해둔 호텔 실라 뒤편으로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가는 길이 숨겨져(?) 있다.



이런 풍경은 거의 매일 아침에 만나는 것으로 죽기 전에 꼭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에서 일상이 됐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곧바로 집 앞 메디치 예배당(Cappelle Medicee)을 지나 퓌렌쩨 두오모(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앞으로 걸어서 시내를 관통한 다음 아르노 강변으로 향하곤 했다. 



지금 보고 계시는 풍경은 아르노 강을 건너기 전의 풍경이다. 시내를 관통하여 뽄떼 베끼오 앞까지 혹은 근처에 당도하면 강변을 따라 또르레 델라 제까(Torre della Zecca) 쪽으로 계속 걷게 된다. 오른쪽으로 아르노 강이 흐르고 있다. 제까 탑은 아르노 강을 향해 있으며 퓌렌체 공국의 도시 성벽(외부를 관찰할 수 있는 전망대) 중 하나였다. 


La torre prima della demolizione delle mura, dipinta da Fabio Borbottoni nell'Ottocento


16세기 초 이 건물은 수도원과 병원이 가까웠으므로 프란체스코 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 탑은 이곳 삐아베 광장(piazza Piave)과 치르꼰발라찌오네 도로(tradale dei viali di Circonvallazione)에 갇혀있는 형국이 됐다. 이 탑의 본래 모습은 첨부의 모습(출처: 위키피디아)과 같다. 위 자료는 퐈비오 보르보또니(Fabio Borbottoni)라는 화가가 16세기 초에 그린 그림이다. 그는 당시 퓌렌쩨 공국의 건축물 다수를 그린 화가였다. 링크를 열어보면 오늘날과 다른 퓌렌쩨의 옛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탑 뒤로 보이는 언덕에 미켈란젤로 광장이 생길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겠지..



비 오시는 만추의 아르노 강변에서




시내를 관통하여 아르노 강(Fiume arno) 가에 다가서면 우리가 좋아했던 풍경이 나타난다.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퓌렌쩨를 방문했지만 거의 대부분 이곳을 찾아내지 못하거나 그냥 지나치고 만다. 수중보에 갇힌 강물은 강변의 건축물을 강물에 비추는데 주변의 풍광은 한 폭의 서양화를 연상케 한다. 또르레 델라 제까로부터 5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이때부터 시선은 강 건너의 건축물과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솟아있는 숲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정확히 이맘때(11월 11일)의 아르노 강가의 풍경이다.



퓌렌쩨에 사는 동안 아이러니하게 생각한 게 있다면 나뭇잎들이 오래도록 가지에 매달려있다는 사실이다. 웬만해선 바람이 불지 않는 곳. 아르노 강가의 나무들은 잎을 오래도록 붙들고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낙엽을 천천히 내려놓는 듯한 묘한 풍경이 산책길에 나선 우리 걸음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강을 따라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뽄떼 산 니꼴로(Ponte san niccolò firenze)를 건너 다시 강 하류 쪽으로 걸어가게 될 것이다. 이때 다리 근처서 만나는 풍경이 포스트에 등장하는 비에 젖은 만추의 모습이다.



하니는 저만치 앞서 걷고 나는 뽄떼 산 니꼴로 다리 위에서 아르노 강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이태리포플러'라고 부르는 나무가 묘한 색감을 연출하고 있다. 자료를 들추어 보니 이태리포플러는 쌍떡잎식물 버드나무목 버드나무과의 낙엽교목이라고 한다. 



학명은 <Populus canadensis>이다. 또는 <Populus euramericana>라고도 부른다. 산기슭 이하의 기름진 땅에서 잘 자란다. 높이 약 30m, 나비 약 80cm이다. 나무껍질은 은빛을 띤 흰색이며, 가지는 둥글고 털이 없다. 잎은 삼각형이고 어린잎은 붉은빛이 돌다가 녹색으로 되고, 잎자루는 납작하며 빨간색이고 잎몸 길이의 3/4 정도이다. 꽃은 암수딴그루로서 4월에 녹색으로 피고 유이꽃차례로 빽빽하게 달리며 암술머리는 2개이다. 열매는 2개로 갈라지는 삭과(蒴果)이고 5월에 익으며 끝이 좁아지면서 뒤로 젖혀진다. 번식은 꺾꽂이로 한다고 되어있다. 



서울에 살 때 강남의 대모산 기슭에서 자라던 나무가 이곳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나무가 봄철에 꽃가루를 날려 눈병을 일으킨다는 등의 이유로 아름드리나무가 어느 날 싹둑 잘려나간 것을 목격했다. 그러나 이곳 아르노 강변에서 이 나무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 풍경을 연출하게 될까.. 나는 다리 위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플라타너스와 버드나무의 조합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도 저렇게 어우렁 더우렁 어울려 살아가면 어디 덧나나..



만추의 어느 날.. 비가 부슬부슬 오시는 날 먼 나라 퓌렌쩨의 어느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꿈을 꾸는 듯하다. 수중보에 갇힌 강물 위로 점점이 박힌 빗방울들과 만추에도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숲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강 건너에 또 하나의 탑이 보인다. 탑 이름은 뽀르따 산 니꼴로(Porta San Niccolò)..



뽀르따 산 니꼴로도 한 때 퓌렌쩨 공국의 성벽이었다. 아르노 강을 사이에 두고 또르레 델라 제까와 두 탑이 마주 바라보고 있다. 이 탑은 오늘날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쉽게 관찰되고 있고, 강변 쥬세뻬 뽀지(piazza Giuseppe Poggi) 광장에 위치해 있다. 

퓌렌쩨 공국의 동쪽을 지키는 탑이었다. 현재 이 탑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곁에서 올려다보면 대단한 건축물이자 주변과 너무 잘 어울리는 탑이다. 그럴 리가 없지만 아르노 강변에 이 탑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퐈비오 보르보또니가 그린 뽀르따 산 니꼴로의 옛 모습은 위와 같다. 뒤로 보이는 언덕에 지금은 미켈란젤로의 광장이 건설됐다. 최소한 500년 전의 풍경을 마주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이 탑은 미켈란젤로가 태어나기 전 1324년에 지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이 탑은 본래의 높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전한다.



나는 아르노 강과 주변 풍경과 너무 잘 어울리는 오래된 탑과 이탈리아 버드나무와 플라타너스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을 다리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다.



주변의 풍경을 보면 만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직도 푸른 잎들이 비에 젖어 묘한 실루엣을 자아내고 있다.



잠시 후 우리는 저곳을 지나 뽄떼 알레 그라지에(Ponte alle Grazie)를 지나게 될 것이다. 자료사진 우측으로 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여전히 비는 오시고 있고 꿈같은 풍경들이 뷰파인더를 붙들고 놔주지 않는다.



다리 중간쯤에 도착했다. 시선은 여전히 강 하구 쪽으로 고정되어 있다. 미켈란젤로가 뛰어놀았던 도시.. 당신의 영감이 세상 사람들을 일깨운 환상의 도시가 비에 젖어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왔을 때쯤에 만날 수 있는 풍경.. 가마우지와 수달이 가끔씩 등장하는 풀숲에 알록달록 울긋불긋..



죽기 전에 딱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 퓌렌쩨..



퓌렌쩨서 가장 많이 발품을 판 곳이 이곳이라면 믿기실까..



강을 건너자마자 맨 먼저 보이기 시작한 퓌렌쩨 두오모와 종탑 등.. 이곳은 도시 전체가 르네상스 시대의 유몰로 가득 찬 곳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의 역사를 휘감고 돌고 도는 아르노 강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드물다.



나무만 바라보던 숲 속에서 벗어나 숲을 바라보는 관조 법.. 강변을 지키고 있는 숲은 겨울이 다가와도 쉽게 잎을 떨구지 않는다. 봄이 오실 때쯤 자세히 관찰하면 해묵은 잎을 내려놓고 새 잎을 내놓는다.



지난 8월 말 돌로미티를 다녀오면서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본 퓌렌체는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지는 건 사람들의 마음뿐이겠지..



그녀가 우산을 받쳐 들고 저만치 앞서 걷고 있다. 비에 젖은 만추의 어느 날 아침부터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에 지나친 또르레 델라 제까가 이탈리아 버드나무 사이로 보인다. 앙증맞은 이파리들이 비에 촉촉이 젖었다. 색깔도 곱지.. 아가들아 아가들아 우리 아가야..



미켈란젤로의 도시에 살면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 건 몇 되지 않는다. 수많은 유물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란 생각은 이 도시에 살면서부터 많이 바뀌게 되었다. 나는 수많은 기록과 유물들 중에서 유독 미켈란젤로를 건진 것이다.



그가 나의 삶의 기준이 되었으며 퓌렌체가 우리를 이곳에 부른 이유가 되었다고나 할까..



사노라면 사람들이 만든 무수한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자칭 타칭 최고라 여기는 작품들 속에서 만나지 못하는 것을 찾아낸 불세출의 영웅이자 예술가인 미켈란젤로.. 그는 대리석 덩어리 속에 갇힌 천사를 구출해냈다. 그곳에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이 빼곡히 묻어난 것이다.


뒤로 보이는 다리가 뽄떼 알레 그라찌에(Ponte alle Grazie)이다. 조금 전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들..


우리가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 퓌렌쩨.. 이 도시에 신의 그림자가 깃드는 계절은 흔치않다. 비 오시는 만추의 어느 날 우리 앞에 등장한 아르노 강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아르노 강은 무심하게 흐르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누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들.. 미켈란젤로에게 아르노 강이 없었다면 그의 영감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코로나 시대가 마무리되면 일정을 길게 잡고 퓌렌쩨에 들러 아르노 강변을 산책해 보시길 강추해 드린다. 만약, 그때가 알록달록한 단풍이 물들고 비 오시는 만추라면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다. 반드시..


La città che volevo vivere prima di morire_FIRENZE
il 27 Nov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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