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이 화려했던 이유
우리..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란다!!
작가노트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열고 하단 오른쪽에 위치한 시간을 보니 내 조국 대한민국의 시간은 오후로 접어들었다. 서기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아침 공기는 썰렁한 편이다. 수은주가 10도씨를 가리키고 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다. 공교롭게도 서울의 기온이 10도씨.. 이틀 전만 해도 영하권에 머물 것 같았던 서울의 날씨가 이곳과 비슷하다니 '이런 날도 있네' 싶다. 우리는 조국으로부터 이역만리 먼 곳에 와 있는데 전혀 거리감을 느낄 수 없다. 뱅기로 12시간은 날아와야 당도할 수 있는 이탈리아 반도.. 공항에서 다시 여러 시간을 보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장화 뒤꿈치로 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감이 느끼 지지 않는 것을 왜일까.. 이른 새벽에 눈을 떠 보니 오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물쩡 어물쩡.. 그때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조국은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성인이 된 지금 어머니와 연결된 탯줄로부터 자유로운 것 같았지만 여전히 조국이라는 탯줄은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면 탯줄을 항아리에 담아 묻어두곤 했다. 그곳을 안태 고향(安胎故鄕)이라고 한다. 나와 어머니를 연결해 주었던 곳. 어머니는 나를 잉태한 후 줄곧 나와 대화를 나누군 했지.. 아가야 아가야 우리 아가야.. 그 노래가 이역만리 먼 곳에서도 여전히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인연.. 사나 죽으나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의 끈이 새벽을 깨운 것이다. 이른 새벽잠에서 깨어나 맨 먼저 열어본 나의 사진첩.. 그 속에 내 삶의 타임라인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서울에 살 때 강남의 대모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눈에 띈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알록달록 울긋불긋.. 돌이켜 보면 나와 눈을 마주친 또 하나의 인연이 산기슭에 묻어났다. 우리 행성 어디를 가더라도 어느 곳에 살고 있더라도 잊히리 만무한 가을의 풍경 하나.. 그 속에 내 삶이 면경처럼 반듯하게 서 있었다. 누군가는 언제인가 건너야 할 다리.. 그때 뒤를 돌아다보면 내 모습이 면경에 남아 나를 빤히 들여다보겠지. 어느 날 대모산 산자락에서 만난 산머루의 알록달록한 색깔처럼 그렇게 익어가는 삶이고 싶다. 곧 첫눈이 오시고 소름 돋우는 서리 위에 나를 눕힐지언정 신의 그림자와 함께 나는 행복했었네라. 우리..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란다. 이른 새벽, 먼 나라 이탈리아서 만추의 안태 고향을 바라보고 있다.
Lo splendido autunno a Seoul, Corea del Sud_Dono della fata
il 25 Nov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