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내리의 겨울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낙엽 아래 삐죽 고개를 내민 녀석들이 무다. 무이다. 잎은 시들고 초라한 뿌리만 겨우 남아 초겨울의 햇살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9년 전의 일이다. 하니와 함께 서울 강남에서 남양주의 능내리로 스케치 여행을 자주 다녔다. 그녀가 스케치를 하는 동안 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경치를 카메라에 담는다. 무가 자리 잡은 곳은 능내리의 강어귀 한쪽에 위치한 텃밭이며 그곳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행잎이 텃밭으로 강어귀로 우수수 바람에 날리곤 했다.
녀석들이 아직도 이곳에 남은 이유는 볼품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쓸모까지 덩달아 없었을 것이다. 버려진 듯한 무밭에 파릇한 새씩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생명이 움트고 있는 이런 풍경이 너무 좋다. 무밭에서 무가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무 심으면 무가 나는 것일까.. 어느 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집에서 사진첩을 열어보니 재밌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언어유희(言語遊戱)..
한 때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같은 불가의 언어에 귀를 기울였다. 좀 더 정확을 기하기 위해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등재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그곳에는 "『반야심경』에서 물질과 공 또는 공과 물질의 관계를 표현한 불교교리"라고 써 두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그러나 내용은 쉬운 듯 여전히 어렵다. 물질과 공 또는 공과 물질의 관계.. 이 내용을 이렇게 해석해 두었다.
"이 세상에 있어 물질적 현상에는 실체가 없는 것이며, 실체가 없기 때문에 바로 물질적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물질적 현상을 떠나 있지는 않다. 또, 물질적 현상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부터 떠나서 물질적 현상인 것이 아니다. 이리하여 물질적 현상이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대개 실체가 없다는 것은 물질적 현상인 것이다.”
설명을 잘해 놓아도 여전히 쉽지 않은 불교의 교리이다. 이 내용을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밑도 끝도 없을 것이다. 나중에는 나(自我)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의 존재조차 불분명해질 것이다. 물질적 현상의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다시 "실체가 없기 때문에 물질적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체(實體).. 서양 철학에서 '세상의 근원'이나 '궁극적인 본질'을 의미하는 게 실체란다. 좀 더 쉽게 접근할 수는 없을까.. 무를 심을 때는 무를 잘라서 감자나 고구마처럼 심지 않는다. 씨앗을 파종하게 된다. 무에서 무가 생기는 게 아니라 무 씨에서 무가 탄생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무가 생길 리 없다. 무는 안드로메다 너머에서 우리 행성까지 날아온 게 아니다.
우리 인간을 이루는 몸이 자연에서 섭취한 음식물을 먹고 자랄지언정, 우리는 작은 씨앗으로부터 발현되었다. 그 씨앗도 무에서 창조될 리 없다면 유(有)에서 유가 창조되지 않았을까.. 우리 행성에는 멸종된 동물들이 부지기 수이며, 인간 때문에 죽어간 동물들까지 합하면 지난 50년 동안 4000종에 달한다고 한다. 무에서 무가 태어날지언정 무에서 유가 태어나기 불가능한 구조가 우리 행성에 살고 있는 생명들이다. 화 수 목 금 토.. 우리 행성을 이루고 있는 물질과 분자 등이 육안으로 식별되는 물질을 만들지라도.. 생명은 여전히 신의 몫이다. 나는 이날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L'ombra di Dio e il cavolo come lui anche noi_Neungnae-ri COREA
il 17 Dicembre 2021, La Dis 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