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바를레타의 12월 풍경
붓다는 왜 산타 클로스를 껴안았을까..?!
서기 2021년 12월 11일 오전(현지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며칠 전 우리 동네에서 건져온 사진첩을 열었다. 그곳에는 가부좌를 튼 붓다 이미지 앞 테이블 위에 빨간 옷을 입은 산타 클로스 캐릭터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산타 클로스가 놓인 곳은 '붓다 센터'의 안내원들이 근무하는 테이블 위로.. 바깥에서 센터 안으로 들여다봤을 때 붓다가 산타 클로스를 껴안고(?) 있는 모습이다. 아기 예수 탄생을 알리는 12월의 성탄 트리가 도시를 점령한 가운데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자 이 도시에서 처음 접하는 광경이었다.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두 이미지는 어쩌면 불교와 기독교가 대립하는 문화를 치유한 형태라고나 할까.. 종교와 이념은 인류문화사를 통틀어 생명을 앗아가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나름의 절대자를 내세워 서로 니가 잘았다. 내가 더 위대하다'는 등으로 싸움을 일삼아 왔던 것으로,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목회자들이 편 가르기에 열을 올린 경우이기도 하다. 수입된 두 종교가 자리다툼을 하며 민족을 두쪽으로 쪼개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우리나라 일부 개신교의 아집은 눈물겨울 지경이다. 그들은 세상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님'이 "니네들이 믿는 특정 교주 보다 더 우월하다"며 목청을 돋우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내세운 카피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해괴망측한 피켓을 들고 거리를 배회하는 것이랄까.. 또 그들 집단내에서는 믿음의 시험대로 삼아 신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일이 왕왕 있었다. 어느덧 그들은 정치 패거리들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어쭙잖은 풍경을 보고 자란 내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 우리 동네에서 발견되었고, 12월이 오시면 으레이 등장하는 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였다. 그는 마치 아기 예수의 전도자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한국은 물론 극동 아시아 지역에서 산타 할아버지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컸다.
그는 성탄 전야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준다고 했으며, 크리스마스 캐럴 속에는 흰 눈 사이로 사슴이 이끄는 썰매를 타고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 굴뚝으로 들어와 선물을 주고 간다는 것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그는 누가 착한 애인지 나쁜 애인지 안다는 것. 그리하여 적지 않은 나쁜 애(?)들이 선물을 받기 위해 착한 아이가 되었던 것일까..
이탈리아서 살고 있는 나는 기독교에 심취했던 1인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의 작은 깨달음 속에서 절대자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분이 형태 불문 출처불명의 하나님이었다. 그토록 애타게 찾던 그분이 어느 날 내 가슴에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으로 안긴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 삶은 (사진으로)아름다움을 찾고 즐기는데 생애 전부를 보낸 것 같다. 먹고사는 일이 아니라면 짬짬이 아름다움을 찾아 생활 주변으로 국내로 국외로 세계여행을 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나의 취미가 신앙심을 보다 더 굳건히 만든 것이다.
특정 종교를 앞세워 전도를 하는 일에 있어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일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그 어떤 형태의 종교나 이념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언정, 동일한 공간 내에서 시간을 맞이하고 보내는 것이다. 삶과 죽음 혹은 희로애락이 하나의 공간에서 해돋이와 해넘이처럼 순환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가 붓다가 더 낫고 예수가 더 나으며, 산타 클로스가 아기 예수의 길을 밝히는 전도처럼 생각하는 등의 행위는.. 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얼마나 한심하고 웃긴 일인지 모른다.
아니 전혀 그런 생각이나 행동이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젤 잘났다'라고 우기는 건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며칠 전 우리 동네의 붓다 센터 앞을 지나다가 만난 풍경이 눈에 도드라지는 것이다. 붓다가 산타 클로스와 함께 있는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개체로 생각도 다르고 모습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그렇다고 한들 조물주 보시기에 서로 다른 사람들인가..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 있다고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인가.. 안드로메다 등 다른 별에서 왔으면 조물주의 손으로부터 벗어난 개체들인가..
인류문화사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걸출한 성자들이 등장했다. 그중에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도 있다. 그의 이름은 네덜란드 아름 신터클라스(Sinterklaas)에서 비롯되었으며, 미라(Myra, 오늘날 터키의 뎀레(Demre))의 주교였던 성 니꼴라스(san Nicola)가 세명의 아이들을 다시 만나서 살아나게 한 데서 '아이들의 보호자'로 여기게 된 것이라 한다.
미라는 현재 터키에 위치한 동로마제국의 지방인 리치아(Licia)의 도시였다. 산타 할아버지의 첫 번째 캐릭터는 4세기경에 등장한 성 니꼴라스였던 것이다. 유럽에서는(특히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체코, 슬로베니아, 그리고 이탈리아의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주교의 옷을 입고 있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In Europa (in particolare nei Paesi Bassi, in Belgio, Austria, Svizzera, Germania, Repubblica Ceca, Slovenia, ed in alcune parti d'Italia) viene ancora rappresentato con abiti vescovili.
성 니꼴라스가 죽자 그의 유물 일부는 오늘날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의 주도 바리(BARI)로 옮겨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를레타에서 50km 떨어진 곳이며 자동차로 3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재밌는 사실은 성 니꼴라의 유물이 바리로 옮겨진 후 어부들로부터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그들이 1807년에 미라로부터 훔친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종교적 신념 이상 기적을 일으키고 싶었던 일이 생겼을까..
미라에 남았던 유물 일부는 나중에 베네찌아 사람들에게 발견되었고, 그곳 성 니꼴라 수도원( abbazia di san Nicolò a Lido di Venezia)으로 옮겨졌으며, 신자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성 니꼴라스의 행적은 선원, 상인, 궁수, 어린이, 매춘부, 약사, 변호사, 서약자, 죄수들을 우러러보게 했다. 그들에게 기적이 팔요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때때로 성인들을 추앙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네덜란드에서는 해마다 12월 5일(성인의 날 전야제)이 되면 성 니꼴라스를 기념하고.. 벨기에, 폴란드, 룩셈부르크, 북부 프랑스에서도 같은 축제가 열린다. 이러한 기념행사가 이어지면서 신화와 산타클로스의 이름을 다양한 형태로 남아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산타 클로스 혹은 산 니꼴라를 밥보 나딸레(Babbo Natale)라 부른다. 어느 날 양볼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밥보 나딸레가 웃음 짓는 모습이 붓다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산스크리트어 붓다(佛陀, 불타)는 '깨달은 자' 혹은 '눈을 뜬 자'라는 뜻이며, 불교에서는 '진리를 깨달은 성인'을 일컫는다. 우리는 가끔 상식 밖의 행동을 통해 상식을 되찾았을 때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하는지 모를 일이다. 매 순간 매 시각 시도 때도 없이 기적을 체험하는 놀라운 일이 우리 곁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밥보 나딸레는 이렇게 노래했지..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데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애인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밥보 나딸레는 거짓말을 호흡처럼 일삼는 어른이들에게도 일침을 가한다. 그들은 이미 나락에 떨어진 신세이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언제 어디에 가 있더라도 붓다가 산타를 껴안은 것처럼 산타가 붓다 앞에서 기쁜 것처럼.. 12월만큼이라도 매일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il Nostro viaggio in Italia_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Il 11 Dic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