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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23. 2021

돌로미티서 만난 여우 이야기

-돌로미티, 친퀘 또르리 사진 모음


비몽사몽간에 처음 만난 재밌는 돌로미티 여우 이야기..!


Foto da https://www.unifimagazine.it/(돌로미티 여우 사진 출처)


    서기 2021년 12월 22일 이른 새벽(현지시각),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하니와 함께한 돌로미티 사진첩을 열어놓고 회상에 잠겼다. 생전 처음 말로만 듣던 여우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돌로미티 여우를 만난 때는 우리가 돌로미티의 명소 친퀘 또르리를 다녀온 직후였으며 한밤중이었다. 이날 우리는 친퀘 또르리를 다녀온 직후 꼬르띠나 담빼쬬에 들러 장을 봐 왔다. 



시내서 주전부리와 쇠고기와 뷔노 로쏘(Vino rosso, 적포도주)를 챙겨 다시 빠쏘 디 퐐싸레고 근처에 위치한 친퀘 또르리 주차장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였다. 그곳은 옥수 같은 맑은 물이 쉼 없이 흐르는 계곡으로 야영에 제격이었다. 장을 보고 돌아온 직후부터 쇠고기 요리에 들어갔다. 점심을 챙겨 먹을 요량이었다. 쇠고기 요리는 뷔노 로쏘와 조미간장에 조린 조림으로 흰쌀밥과 함께 먹으면 기막힌 맛을 낸다. 



그런데 이 요리 과정을 숲 속에서 돌로미티 여우가 훔쳐보고 있었을까.. 이날 저녁 비몽사몽간에 돌로미티의 여우를 만나 실랑이를 벌이게 된 것이다. 여우 같은 녀석.. 아니 틀림없이 여우였던 녀석은 기다란 꼬리에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나와 눈이 맞딱 뜨으렷다. 마치 생떽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어린 왕자의 출현과 흡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나 쇠고기 한 점만 주세요..!"



비몽사몽간에 나를 깨운 건 들릴락 말락 한 미세한 소리였다.


"달.. 그.. 닥.. 사.. 부.. 작..!(들릴락 말락..)"


나는 자동차 옆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고 하니는 차박을 하고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 낀 날씨로 사방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했다. 야영 텐트는 자동차 바로 곁에 쳐 두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단박에 자동차 문을 열 수 있는 위치였다. 나는 잠결에 귀를 기울여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서 소리가 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며 텐트를 열어젖혔다. (지익~: 지퍼여는 소리 자체 효과음)



분명히 누군가 가까이에 있는 인기척이라 판단하고 확인에 들어간 것이다. 텐트를 열어젖히자마자 속으로 흠칫 놀라고 말았다. 텐트에서 1m도 떨어지지 않은 지근거리(바로 곁)에 여우 한 마리가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머리카락이 쭈뼛했다. 나는 그 즉시 짧고 단호하게 그러나 소리를 낮추어 이렇게 말했다.


"저리 가..!"



녀석은 들은 체 만 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저리 가"라며 손짓을 했다. 그랬더니 녀석이 주춤하면서 한 걸음 물러서는 듯했다. 산중에서 만난 야생동물치고는 착했다. 아님 무엇에 매우 집착한 듯한 표정.. 그리고 뭉기적 거리며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녀석은 언제부터 우리 곁에서 서성거린 것일까..



비몽사몽간에 다시 한번 더 손짓을 한 후 텐트를 걸어 잠갔다.(지익~) 만약 달빛이 훤하게 비추었다면 텐트 밖 녀석의 실루엣이 나타났을 정도로 녀석은 여전히 지근거리에 있었다. 텐트의 지퍼 틈새로 보니 녀석은 여전히 나 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도망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녀석을 못 본채 하고 다시 머리를 뉘었다. 이때부터 녀석이 자꾸만 신경 쓰이는 것이다. 다시 비몽사몽간에 들릴락 말락 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달.. 그.. 닥.. 사.. 부.. 작..!(들릴락 말락.. 들릴락 말락..)"



나는 누운 채로 다시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지근거리에 있다고 해도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는데 들릴락 말락 사부작 거리는 소리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그제야 소리의 출처를 알아냈다. 녀석이 노리는 건 쇠고기 조림이었을 것이다. 쇠고기 조림이 산중에 기막힌 냄새를 풍겼을 것이며, 녀석은 어둠이 오시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조림이 든 팬에 뚜껑을 질 덮고 자동차 아래에 둔 것이다. 당시 산중의 날씨는 냉장고보다 썰렁했으므로 야외에 보관하는 게 더 나았다. 또 혹시나 산짐승들이 달려들 걸 고려해서 자동차 하부와 팬 높이를 적절하게 조절해 두었던 것이다. 누군가 엎드려 손으로 뚜껑을 열지 않으면 불가능할 정도로 잘 꼬불쳐 두었다. 



만약 여우란 녀석이 뚜껑을 열려는 시도가 있었다면, 그 즉시 발각되어 멀리 쫓겨나갈 정도로 조림을 담은 팬은 바로 곁에 두었다. 그런데 여전히 아주 미세한 사부작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조림의 상태를 확인해 보기로 작정하고 텐트의 지퍼를 열었다. 산중은 진공상태로 변한 듯 지익~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녀석은 조금 전에 서 있던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헉! 이럴 수가..ㅜ) 



녀석은 여전히 먼저 서 있던 제자리서 나와 눈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우짓(?)을 하는 녀석에게 손짓을 하며 텐트 밖으로 나왔다. 녀석은 나의 일거수일투족 모두를 꽤 차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자리에서 부스럭 거리며 일어나는 동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던 것이다. (여우 같은 녀석.. 아니 이런 여우 새끼 봤나..ㅜ)



텐트 밖으로 나오자마자 맨 먼저 잘 꼬불쳐 두었던 팬을 살펴봤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뚜껑을 꼭꼭 잘 닫고 자동차 하부와 틈새가 거의 나지 않도록 보관해 둔 팬 뚜껑이 열려있는 게 아닌가.. 놀라운 일이었다. 그동안 사부작 거린 소리의 정체는 녀석의 짓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팬 뚜껑이 열리도록 가까이(바로 곁에) 접근하는 녀석의 발자국 소리는 왜 듣지 못했으며, 뚜껑을 열 때 생길 수 있는 잡음은 왜 들을 수 없었을까.. 



놀라운 일이었다. 포스트를 끼적거리면서 서두에 삽입해 둔 돌로미티 여우 사진은 물론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여우 설화를 펼쳐본 것도 이 때문이었다. 돌로미티 여우.. 그러니까 '유럽의 붉은여우'로 불리는 녀석의 조상은 하나로 알려졌다. 한 연구자(Bartolini Lucenti)에 따르면, 지난 100년 동안 세 종의 다른 여우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첫 번째 여우는 1913년에 도메니꼬 델 깜빠나(Domenico Del Campana)로부터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는 180만 년 전의 화석 덕분에 가능했다. 이 종은 박물관에 보관된 현재의 붉은여우 보다 약간 작았으며, 고생물학자들에 의해 후자의 조상 중 하나로 알려졌다. 1930년대 헝가리에서 발견된 두 종의 여우는 150만 년 전에서 80만 년 전에 유럽에서 살았던 종으로 'Vulpes praeglatis와 Vulpes praecorsac'라는 종(種)이다. 



나는 이들의 기록 중에서 유럽의 붉은여우가 언제부터 이 땅에 출현했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니까 여우는 우리가 계수하기 힘든 까마득한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살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는 대략 300만 년 전부터 이 땅에 태어나고 40만 년 전에서 25만 년 전에 진화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화석으로 나타난 녀석들의 정체를 살펴보면 같거나 비슷한 시기에 우리 행성 한 모퉁이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과 다른 동물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면, 두 개체의 습성은 오래전부터 학습되고 DNA 속에 또렷이 오롯이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녀석의 생존 본능 속에는 먹잇감과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물들의 습성에 반응하는 매우 탁월한 관찰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만약 그러하지 않았다면 그 오랜 시간 동안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게 아닌가.. 



나는 어느 날 돌로미티의 명소 친퀘 또르리에서 만난 녀석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여우 같은 녀석.. (아니 똑똑한 녀석 같으니라고!) 다만, 녀석은 성공 직전에 깨어난 한 인간 때문에 '쇠고기 조림 절도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녀석은 소리를 죽여가며 팬 뚜껑을 여는데 성공했지만 조림 한 덩어리를 훔치는데 실패한 것이다. 나는 조림이 든 팬을 자동차 뒷트렁트에 넣고 문을 닫았다. 그런데 녀석은 한 수 위였다. 내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동안 녀석은 다른 꾀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우 설화에 따르면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 구미호가 등장한다. 내가 생전 처음 만난 여우는 꼬리가 하나였다. 분명 하나이다. 그런데 꼬리가 아홉이라나 말이 되나.. 문헌(나무 위키)에 등장하는 여우 설화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현대에서는 대통령 선거의 큰 이슈에 등장하기도 했다. 



먼저 최근의 이슈를 살펴보면 인간의 이름을 차용한 여우였다. 사람들이 그녀를 여우로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부터 주얼리 혹은 쥴리로 불리던 그녀는 이름을 바꾸었으며, 이후 얼굴 전체를 뜯어고쳤다. 본래의 모습 대부분은 사라졌다. 그런 그녀가 다시 세상에 등장할 때는 무수한 허위경력이 뒤따라 다녔다.

논란의 배경에 개망나니(검사)가 있었다. 그녀의 남자였다. 주얼리는 그 녀석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으며 사람들은 그들을 일러 본부장(본인, 부인, 장모)이라 불렀다. 장모까지 숱한 의혹에 둘러싸였던 것이다. 이 무지렁이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까지 이들에 대해서 전 국민 다수가 잘 모르고 있었다. 새까맣게 속아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꾀가 많고 사악한  등 보통사람들과 다른 여자 사람을 일러 여우 혹은 '여시'라고 부른다. 성격도 이랬다 저랬다 마음대로 변해 걷잡을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비까지 '여우비'라고 불렀을까.. 여우 요괴를 일러 '매구'라 불렀던 것도 상대적으로 여간 똑똑하지 않았으면 불리지 않았을 명칭이었다. 그러니까 혼자만 똑똑했던 개망나니는 한 구미호의 농간에 빠져들어 정신을 차리지 못한 가 어느 날 대중 앞에 등장하며 조롱거리가 되었을까..



여우 설화 중에 '여우구슬'이라는 게 있다. 여우구슬은 이것을 삼킨 뒤 하늘을 보면 하늘의 이치를, 땅을 보면 땅의 이치를, 사람을 보면 사람의 이치를 알게 되는 투시력 비슷한 힘을 소유자에게 부여하는 물건이다. 하지만 대개는 하늘을 보려다 땅이나 사람을 보는 것으로 그쳐 천기를 아는 것은 좌절되고 "사람들이 땅의 일은 잘 알아도 하늘의 일은 잘 모르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로 끝을 맺는다. 전국적으로 분포한 이 설화는 "인지(人智)의 한계" 또는 "구미호와 여의주", "여우 입 속의 보배 구슬"이라고도 한다. 



여우 설화를 잘 정리해 둔 나무 위키의 글을 차용한 데는 나의 어리숙함도 포함되었다. 나는 녀석의 꼼수에따라 쇠고기 조림에만 신경 쓴 탓에 뒷트렁크에 조림을 감추어 두었다. 그러나 정작 주전부리용 과자(코콜릿 웨하스)는 신경 쓰지 못했다. 텐트 밖에 나와 팬을 정리하는 동안 녀석은 잠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텐트 속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나 싶었는데 다시금 사부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가 이내 사라졌다.


"사.. 부.. 작..!(들릴락 말락.. 들릴락 말락..)"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가 날이 밝아 잠에서 깨어났다. 간밤의 일이 마치 꿈속에서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텐트 바깥으로 나와 텐트 옆 자동차 밑을 들여다보았다. 팬이 있던 자리는 레인지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주전부리용 과자가 없어진 것을 그제야 눈치를 챈 것이다. 쇠고기 조림에 정신을 판 사이 녀석은 주전부리 과자를 탐하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이 사라진 주차장에는 굵은 모래가 깔려있었는데 녀석이 오간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고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그날 밤 돌로미티 여우와 벌인 신경전은 결국 녀석의 몫으로 돌아갔다. 나는 이튿날 감행한 빠쏘 누볼라우(Passo Nuvolau) 산행에서 내려다본 친퀘 또르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녀석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틀 동안 이곳에서 일어난 꿈같은 일이었다. 다음 여정은 친퀘 또르리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빠쏘 누볼라우 쉼터로 오르는 여정이다. <계속>



Le Dolomiti che ho riscoperto con mia moglie_Le Cinque Torri
il 22 Dicembre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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